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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pr 27. 2022

1박 2일 시댁 방문(이라 쓰고 먹고 먹고 먹었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79│2022.04.23-24

아버님의 생신을 맞아 시댁으로 향한다. 시댁은 서울에서 차로 5시간 걸리는 전라남도 장흥에 있다. 남편은 장흥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성인이 될 때까지 딱 한 번 이사해봤다고 한다. 지금 집의 앞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것이 전부다. 태어나서 지역을 크게 두 번 옮기고, 그 안에서도 여러 번의 동네를 옮겼던 나는 그 사실이 꽤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댁에 갈 때마다 그 집에서 보낸 남편의 시간들이 늘 함께 한다.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장흥이란 곳을 잘 알지 못했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갈 때는 너무 멀어서 내려가는 내내 놀랐다. (그 당시 서울고속터미널에서 장흥까지 한 번에 가는 고속버스가 없었다. 어딘가를 들렸다. 그래서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주한 장흥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여름이었는데, 모든 것이 푸르렀다. 이런 곳이라면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내려와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가끔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가 지치게 느껴질 때면 장흥의 푸르름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에 찍었던 집 앞마당. 이번에는 푸르름 대신 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 내려가다가 아버님의 생신을 맞아 오랜만에 장흥에 간다. 장흥은 차로 5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안 막혔을 때 기준이다. 결혼 후 첫 추석 때는 시간 때를 잘 못 맞춰 10시간이 걸렸다.) 당일치기는 불가하다. 보통 하룻밤 이상을 자고 온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잠자리에 든다. 새벽에 일어나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늦잠이라도 자버리면 너무 막혀 아예 못 갈 수도 있다. 토요일 새벽 3시 잠에서 깬다. 이것저것 챙기고, 씻고 차에 오르니 새벽 4시다. 장흥을 향해 출발한다. 보통은 운전을 번갈아가면서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에 타자마자 내가 잠들었다. 일어나니 장흥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다. 어떻게 이렇게 한 번을 안 깨고 올 수 있었는지 남편에게 미안하다. 남편은 중간에 휴게소를 두 번 들렸다고 한다. 장흥에 도착하니 아침 9시 정도였다. 


도착하자마자 아침밥을 먹는다. 어머님이 손수 기른 나물들로 밥상이 가득 찼다. 보통의 나라면 아침을 잘 먹지 않지만, 어머님의 밥상을 포기할 수 없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진다. 


아침을 먹자마자 다 함께 장흥 토요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나는 장 보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맛있는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다. 정도 넘친다. 장흥에 와서 처음 먹게 된 음식이 있다. 바로 생고기다. 육회를 좋아해서 육회는 종종 먹었었는데, 생고기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날 잡은 소를 별도의 양념 없이 그냥 먹는 것인데, 육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오늘도 역시 소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생고기를 샀다. 이 뿐만 아니다. 장어, 갑오징어, 노랑가오리, 키조개, 게 등을 넘치게 샀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불을 피우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점심 메뉴는 장어구이와 생고기다. 시댁에 올 때마다 한 번은 늘 이렇게 마당에서 여유롭게 무엇인가를 구워 먹는다. 구워 먹지 않을 때는 삶아 먹기도 한다. 이 자체로 너무 큰 행복이다. 

작년 겨울에 아버님이 끓여 주신 옻오리 백숙

아버님 생신 기념인데 내가 더 신나서 먹는다. 점심을 먹고 집 앞 우드랜드로 향한다. 꽤 크고 정말 잘해놓았는데, 아직 안 유명한 것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덕분에 더 쾌적하게 편백나무숲을 만끽했다.


집에 오자마자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다. 저녁 상 역시 푸짐하다. 아까 장 봐온 갑오징어 숙회, 키조개 미역국, 가오리무침, 직접 딴 고사리나물, 두릅과 옻 잎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상이 가득 찬다.

지난겨울 밥상이다. 이번에는 밥상을 하나도 못 찍었다. 먹기 바빴나 보다. 매번 이 정도로 푸짐한 식사를 한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 덕분에 늘 휴가 가는 마음으로 장흥에 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철없이 해주시는 음식만 맛있게 먹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불편한데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억지로 오는 것보다는 언제나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장흥에 오고 싶다. 지금처럼 말이다. 보고 싶던 가족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은 따뜻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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