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80│2022.04.25
반신욕이란 것이 언젠가부터 누구나 다 하는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반신욕을 왜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 중 하나였다. 반신욕의 효능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내겐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겐 번거로운 일에 가까웠다. 뭐 그 정도로 피곤을 풀어야 할 만큼 피곤이 쌓여있지 않았거나 혹은 그렇게 피곤을 푸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낭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을 받는 시간과 받아지고 버려지는 물의 양, 그리고 욕실 청소까지. 반신욕을 하기 위한 모든 과정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반신욕을 적극 추천해줄 때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추운 겨울날. 하루 종일 바깥에서 덜덜 떨다가 집에 들어왔다. 이불 속에 들어가도 몸속의 냉기가 쉬이 가시지 않아 한참 추웠다. 전기요의 온도를 잔뜩 높이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계속 덜덜 떨던 나에게 엄마는 오분만 들어가 보면 안 추울 거라며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줬다. 그리고 정말로 반 만 몸을 담갔을 뿐인데 금세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 따뜻했던 물속에 들어가던 기분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 뒤로 종종 반신욕을 한다. 어느 순간 피곤할 때면 나도 모르게 반신욕이 생각난다. 몸이 조금 찌뿌둥하다 싶으면 쑥 입욕제 한 포를 욕조에 넣고 물을 받는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1박 2일간의 장흥 방문이 피곤했을까. 왕복 10시간 이상 걸린 이동에 몸에 피로가 쌓인 것 같다. 이곳저곳이 결린다. 게다가 바쁜 마지막 주의 월요일이었다. 일요일 저녁 집에 도착해 짐 정리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월요일이 되어 부랴 부랴 출근해서 바쁘고 가득 찬 하루를 보냈다. 퇴근하면서 자연스럽게 반신욕 생각이 났다.
저녁을 먹고, 남편은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나는 욕조에 물을 받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약쑥 입욕제도 함께 넣는다. 쑥향이 은은하니 벌써 좋다. 물이 받아지고 화장실이 온기로 가득 찰 때쯤 레몬을 하나 짜서 그 즙을 탄산수에 섞는다. 단 맛은 없지만 새콤하고 시원하다. 땀을 뻘뻘 쏟으면서 먹는 차가운 레몬 물은 최고의 조합이다. 거기에 신나는 노래까지 틀고 나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발끝부터 전해지는 따뜻한 물이 좋다. 눈을 감고 가만있는다. 몸이 서서히 따뜻해진다. 그렇게 뜨겁지 않은데 정수리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정수리에서부터 나기 시작한 땀을 곧 얼굴 전체로, 곧이어 가슴과 등으로 퍼진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엇인가 몸 안에서 안 좋은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마음도 차분해진다.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운 일만 가득하다. 내일은 조금 덜 부끄러운 하루를 보내야지. 하고 다짐도 해본다. 오늘도 역시나 만족스럽다. 나는 어느새 이렇게 반신욕을 즐겨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