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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y 13. 2022

부모님의 안경을 맞춰드렸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88│2022.05.07-08

주말을 맞아 용인 부모님 댁에 간다. 어버이날이기도 하다. 회사 지하 꽃집에서 산 카네이션 몇 송이를 들고 간다. 남편이 일-월 출장 예정이라 조금 일찍 가자고 해서 금요일 밤에 갔다. 긴 주말이 될 것 같다.  


역시나 긴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이 됐다. 남편은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출장을 떠났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 오롯이 세명만의 시간이다. 순간 어색함이 느껴진다.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에서 나는 더 큰 당황함을 느낀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우리 셋이었다. 어딜 가도 세명이었고, 무엇을 하건 셋이서 같이 했다. 그렇게 삽 십 년 가까이 함께했는데 고작 몇 년 사이 이렇게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이 어색함이 어색해 죽겠다. 숨 막혀 죽겠다. 는 당연히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남편까지 함께 하는 네 명이 조금 더 익숙해졌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 순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도 모르게 내가 좋은 사위의 역할을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 고맙다. 남편은 어쨌든 그 역할을 너무나 잘해줬던 것 같다.


어쨌든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남편 없이 우리 셋이 보내는 시간이다. 부모님이 용인으로 이사 가기 전, 매봉에 살았을 때, 그러니까 집과 집이 지금보다 가깝고 전철로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때는 퇴근 후에도 종종 만났다. 남편이 야근을 하거나, 아빠나 엄마가 각자 일이 있을 때 이태원이나 가로수길 쪽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런데 차가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으로 부모님이 이사를 갔고, 그 뒤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그런 만남들이 거의 없어졌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꽤 많은 것이 변했구나. 싶다. 


남편 배웅 후 우리도 일찍 일정을 시작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선원에 다녀왔다. 선원에서 만난 분들이 다들 남편은 어디에 갔냐고 묻는다. 그렇다. 이제 남편이 함께 하지 않으면 어색한 그런 관계, 그런 모습이 되었다. 선원 방문 후 엄마는 옷을 사러 가고 싶다고 한다. 아빠와 함께 아울렛에 간다. 엄마는 3시간을 꼬박 옷을 골랐다. 몹시 신이 난 것 같다. 오늘 사고 싶은 것은 원피스와 자켓이라고 한다. 엄마는 정말 조금도 쉬지 않고 옷을 고르고 입어봤다. 엄마의 열정과 체력을 내가 잠시 간과했다. 예전 일본 여행 때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일정을 시작하던 엄마다. 엄마의 쇼핑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 엄마가 좋아할 스타일의 옷과 사이즈를 고르고, 가격을 미리 확인한 뒤 엄마에게 추천한다. 입고 나올 때마다 선 칭찬 후 냉정한 평가도 잊으면 안 된다. 아빠 역시 옆에서 엄마의 성공적인 쇼핑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엄마는 원피스 두 개와 바지 한 개, 블라우스 한 개를 샀다. 


옷을 고르고 나오니 벌써 4시가 넘었다. 저녁은 회사 근처로 가서 먹기로 한다. 굳이 회사 근처에서 먹기로 한 것에는 회사 근처 안경점에서 부모님의 안경을 맞춰드리고 싶다는 내 계획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아빠, 엄마는 작은 글씨를 볼 때 눈을 찌푸린다. 안경을 맞춰야겠다고 말만 할 뿐, 실제로 가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버이날을 맞아 안경을 맞추기로 (나 혼자) 계획했다. 식당에 간다고 하고 안경점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경점에는 미리 전화를 해 두었다. 부모님 두 분의 안경을 맞추려고 하는데 가격을 약간 깎아서 이야기해달라고, 렌즈는 제일 좋은 것을 하고 싶으니, 테도 좋은 테를 추천해달라고. 안경점에 밀려들어간 부모님은 굉장히 당황해했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검사를 받고 원하는 테를 골랐다.


안경까지 맞추고 예약해둔 세이로무시 집에 간다.    

지난번에 회식으로 왔을 때 부모님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아빠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음식이다. 역시나 반응이 괜찮다. 특히나 엄마는 같이 나온 피클과 양배추 샐러드에 몹시 만족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 나 만큼이나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다. 엄마와 가보고 싶어 저장해둔 곳이 차고 넘친다. 할 수만 있다면 부모님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살면서 보다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갖고 싶다. 


집에 와서 다시 엄마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오늘 산 옷을 입어보고 다시 본다. 내가 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오히려 더 뿌듯하다. 내가 한 것은 별 것 없지만, 마치 내가 무엇인가 많이 한 기분이다. 


다음 날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정성으로 배웅해준다는 것이 참 좋은 기분이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땐 전혀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이런 순간들이 정말 귀한 것이라는 것을. 정말 감사한 일이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월요일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책상 위에 부모님의 용돈과 편지가 놓여있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안경 맞춰줘서 고맙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거의 안경 값만큼의 용돈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해주고 싶었는데. 


주말 내내 엄마, 아빠의 끊임없는 이야기에 사실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혼자 조용히 주말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뭐랄까. 조금 슬프기도 했다. 결혼 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부모님이었다. 옷도 같이 사러 가고, 머리도 같이 하러 다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늘 같이 먹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나만 쏙 빠져나온 기분이다. 당연한 거다. 내가 빠져나와야만 한다. 사실 내가 잘 빠져나왔는지, 그래서 독립된 성인으로의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결혼할 때 가장 스스로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우리 관계(아빠, 엄마, 나)에 남편을 끼워 넣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야겠다는 것. 뭐 그것을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못한 걸까. 그럼에도 부모님과의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가끔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주말 내내 부모님과 함께 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사실은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내내 받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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