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아파트가 정답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정말일까-
집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참 많이도 보러 다녔다.
회사가 있는 마포구 상암동. 현재 신혼집이 위치한 은평구 신사동. 내가 좋아하는 빵집들이 몰려있는 서대문구 연희동. 결혼 전 추억이 가득 담겨있어 언젠가는 꼭 다시 살고 싶은 종로구 경복궁 근처까지.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살아보고 싶은 동네에 살기 어려워질 것 같아 이곳저곳, 살아보고 싶은 곳들을 참 많이 돌아다녔다.
우선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해당 지역에 우리 예산과 조건에 맞는 매물을 확인하고 부동산에 문의해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약속을 잡으며 우리의 예산과 조건들을 전달하고 2-3개의 매물을 추가로 추천받았다. 집을 보면서 마음에 들면 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집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동산 사장님이 우리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그 부동산 사장님께 다시 다른 매물을 추천받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집을 보고, 추가로 리스트업 했다. 중간중간 은행과 주택금융공사를 체크하며 대출 가능 여부도 함께 확인했다.
집을 구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집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살 거라면 무조건, 당연히, 아파트라고 했다. 매매에 있어 아파트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들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불안했고, 그럴수록 아파트가 정답처럼 느껴졌다. 빌라나 단독주택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는 정말 귀가 닳도록 들었다. 제일 큰 문제는 '안 오른다.' 안 오르기만 하면 다행인데, 심지어 '떨어진다.' 그리고 잘 안 팔려서 '팔 때 문제 생긴다.'는 것. 이밖에도 보안과 치안에 취약하다, 주차가 어렵다, 관리소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불편함이다, 소음이 크다, 단열에 돈이 많이 든다, 살면서 할 일이 많아진다. 등등.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다. 다른 자잘 자잘한 문제들이야 집이 없어 발생했던 일들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힘을 빌려 집을 사려는 우리는 산 가격보다 떨어진다는 옵션은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파트만 보러 다녔다. 그 아파트가 진짜 아파트 같건, 아니면 이름만 아파트인 빌라이건 상관없이 예산에 맞는다면 모두 보러 갔다. 점차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가격에 맞는 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아파트 근처에 편의시설이 있으면 좋겠고, 주변에 맛있는 빵집도 있으면 더 좋겠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남향집이라면 진짜 좋겠다' 등 우리 나름의 기준은 고려 대상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집을 보러 다니면 다닐수록 힘들었다. 분명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 집을 구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상하게 집을 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내 상황이 불행하게 느껴졌다. 철없던 내가 마주하기에는 너무 벅찬 현실이었다. 일단 너무 비쌌다. 정말 말이 안 되게 비쌌다. 조금 괜찮다고 생각했던 집은 10억이 훌쩍 넘었다. 집을 보는 내내 우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니, 돈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였다. 그리고 그렇게 너무나도 비싼 와중에 우리의 영끌 예산이 닿을 것 같은 집들은 굉장히 작고, 굉장히 오래되었고, 굉장히 낡았다. 부부가 살기에도 작은 집에서 가족계획은 감히 상상으로도 세울 수 없었다. 그리고 물이 새는 낡은 집은 집을 사는 것 자체에 이미 우리의 영혼이 탈탈 털리기 때문에 기본적인 샷시, 단열, 누수 등의 수리는 꿈꿀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아파트를 사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너무 바닥부터 끌어모아야 하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가격보다 무조건 무조건 더 올라야만 했다.
지금도 이 미친 집값에 매일 놀라고 있는데, 내가 샀다고 해서 이 집값이 더 오르길 기대하면서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대출금과 그에 대한 이자. 그리고 그로 인한 최소 10년 이상의 궁핍한 생활을 고려하면 무조건 올라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집을 구하겠다고 결심한 후 내가 마주한 현실은 암담했고, 생각만 많아졌다. 따져야 할 것은 많았고, 우리는 여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에 빠져 얼마간을 보냈다.
우리의 모든 조건이 다 맞는 집이, 과연 있을까.
가장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조건은 또 무엇일까.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길이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 구매에는 정답이 있는 것 같다. 아파트라는. 집에 대한 정답이 정해진 이 사회에서 우리 부부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