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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Aug 11. 2021

우리 집이 없다│그래도 다행인 점 하나

Episode 2. 부부 생활권이 똑같다는 것

몇 개월 동안 닿지 않는 아파트를 보면서 한동안 우울했다. 그런데 또 내가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집을 못 구하고 있는 와중에도 즐거운 일들은 언제나 있었고, 다행이라고 생각한 부분들도 있었다. 


우선 지역. 상대적으로 나는 집을 구할 지역을 정하는 것이 쉬웠다. 우리는 사내 부부다. 회사가 같다. 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같은 곳에서 퇴근한다. 그리고 둘 다 출퇴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직장을 당장 옮길 계획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곳들이 알아서 정해졌다.


여담이지만 나는 꽤나 자부할만한 통학 및 통근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자연 놀이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에 따라 시작된 첫 통학버스 탑승으로 내 장거리 통학의 역사가 시작됐다. 집 앞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 때 이사했고, 학교는 옮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엄마 차로 30분씩 걸려 등교하며 본격적인 통학러가 되었다. 중학교 때는 조금 더 멀리 통학하게 됐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엄청난 인구 유입기를 겪고 있었고, 우리 동네 초등학교 총 졸업생 수에 비해 중학교가 현저히 적었다. 그래서 조금 더 먼 동네에 중학교가 5개 정도 생겼고,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 거리의 중학교로 배정받았다. 전교생 600명 중에 200명이 같은 학교로 배정받았기에 그 당시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통학버스를 타고 왕복 두 시간 넘게 등하교했다. 이런 통학은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지역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그래서 성적에 따라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역시나 통학버스를 타고 왕복 두 시간 가까이 등하교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나의 통학 시간은 조금 더 늘어났다. KTX와 지하철을 이용해 통학했고, 매일 여행 가는 기분으로 일상을 살았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 가족이 모두 서울의 남쪽으로 이사 온 후, 서울의 서북쪽으로 취업하게 되면서 여전히 하루 왕복 3시간 정도 통근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모두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내게 있다.


그렇기에 나는 긴 출퇴근 시간에 누구보다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출퇴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해도 괜찮은가에 대한 답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는 괜찮았다. 보람되게 사용했던 것 같고, 또 즐겁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 후 직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신혼집을 얻게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긴 출퇴근이 괜찮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단지 내가 짧은 출퇴근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이것은 완전 별천지였다. 저녁 있는 삶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고, 해를 보며 출퇴근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그래서 무조건 출퇴근 30분 이내인 곳이면 좋겠다고 결정했고, 그것이 가능한 몇 개의 지역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생각보다도 더 큰 장점이었다. 일단 크게 몇 군데로 가능한 지역이 정해지다 보니, 그 안에서 다양한 매물을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엄청 익숙하진 않더라도 대략적으로나마 그 지역의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장단점들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만약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지역에 대한 선택지마저 이보다 더 많았다면, 나는 아마 한차례 더 혼란스러웠을 거다.


일단 동네를 몇 곳으로 추리고 나니, 괜히 뭐라도 해낸 기분이다. 

이제 조금은 더 즐거운 집 알아보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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