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
집을 알아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하나 더-. 나와 남편 모두 생각보다 아파트 고집자가 아니라는 것.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집 보기에 한창이라 몇 개의 아파트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지쳤고, 남편이랑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왜 집을 사려는 거지. 왜 아파트를 사야 할까.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비아파트 경험이 많은 편이었다. 남편은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고향에서 부모님과 단독주택에 살았고, 결혼 전에는 경복궁 근처 한옥에서 자취했다.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꽤 오래 자란 아파트 세대로 아파트가 익숙하긴 하지만, 실험적인 부모님 덕분에 주택 거주 경험이 꽤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때 총 3번 집을 짓고 단독 주택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파트가 아닌 주거 형태에도 우리는 별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 때만큼 좋은 주택에 살기도 어려울 것이고, 또 우리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부분도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평생 아파트가 아닌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우리 부부는 아파트가 아닌 집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 그것에 대한 답은 너무 당연하게 명확하게 있다. 환급성과 투자성. 아파트는 빌라에 비해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격으로 오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이유로 집을 팔아야 할 때 훨씬 빨리, 훨씬 좋은 가격으로 팔릴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아 그래서 우리가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 거구나."
"그렇구나. 맞네. 중요한 부분이지."
"그렇지."
아파트가 답이구나-.라고 남편과 대화를 마무리하던 순간, 한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집은 나중에 팔 곳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 그 생각을 하고 입 밖으로 꺼내 남편과 나눈 순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골라 내가 산다는 것.
물론 이런 생각을 진짜 나 스스로 한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덜 슬프기 위해 스스로 해버린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생각을 했던 지금의 나 자신을 엄청 탓하며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이 어쩌면 번듯한 아파트를 살 수 없는 내 상황을 위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했다. 아. 엄청 후회하려나. 하는 생각도 또다시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누군가들이 했던 이야기들- 대표적으로 ①집을 살 때는 여유롭게 사는 것이 아니다(=여유자금을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집을 사야 한다.) ② '집이 안 오르면 평생 살면 된다'는 생각은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어쩔 수 없이 이사해야 할 일이 분명히 생긴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모두 다 맞는 말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집을 사시려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 두 가지를 꼭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고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이 생각 이후, 우리는 집에 대한 개념을 조금 더 넓혀서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얼마큼 다양한 주거형태가 있을까. 조금 여유롭게 집을 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등. 집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집을 사야겠다고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집에 대한 고민 자체는 많이 하지 않고 있었다. 현실도 놓치지 않으면서, 집 자체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진지하고 생각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잠들었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들을 한 나 자신을 얼마 후에 엄청 자책하고 원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미리 경고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 그래야지.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