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6│2022.02.05
주말을 맞이해서 또 용인 부모님 집에 왔다. 설 연휴를 용인에서 보낸 것이 말 그대로 엊그제인데, 이틀 만에 또 왔다. 자주 용인에 오는 편이다. 너무 자주 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별 일이 없을 때는 보통 용인에 온다. 친정에 계속 이렇게 자주 왔던 것은 아니다. 결혼 직후에는 어떤 대소사의 날들에만 종종 봤던 것 같다. 늘 할 일이 많았고, 바빴으며, 또 의존적인 딸에서 가정을 꾸린 독립한 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결혼 후 1년쯤, 아빠가 퇴직했다. 오랜 기간 열심히 일했으니 당분간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말과 달리 아빠는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아빠의 모습도 당시의 나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회사에 안 가는 아빠가 부럽기만 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속 마음을 알아채 준 것은 고맙게도 남편이었다. 남편은 아빠의 허전함을 누구보다 빨리 눈치챘고, 시간 날 때마다 친정에 가자고 했다. 그때부터 거의 매주, 못해도 이주에 한 번씩은 친정에 온다. 그 뒤로 아빠는 다른 일을 시작했고, 바빠졌지만, 우리는 계속 용인에 온다.
나는 원래도 아빠와 엄마를 정말 좋아한다. 아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누군가는 착한 딸이라고 부러워했다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냥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딸이다. 결혼 전에는 아빠, 엄마랑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남편 다음으로 최고로 좋다. 이런 마음이 정상적인 것인가 수차례 고민해봤지만, 내가 이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각자의 가치관은 다들 다른데, 우리는 그것이 가족인 것 같다. 다른 더 좋은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정해진 결론이 나곤 한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서 이주에 한 번씩 하는 소모임에 참석했다가 근처 사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바로 용인 집에 왔다. 일찍 일정을 시작한 탓인지 약간 피곤해 짧게 낮잠을 잤다. 일어나서 아빠와 대선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출발했다. 코로나 이후 대부분 집에서 밥을 먹었지만, 오늘은 엄마가 가고 싶다고 했던 식당을 가기로 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눈앞으로 펼쳐진 탁 트인 호수 뷰에 마음이 시원해졌다. 해가 곧 질 것 같은 6시에 도착했는데, 밝았던 하늘이 짧은 새 노을빛으로 채워지다가 어느 순간 캄캄해졌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계속 먹었다. 더 이상 바깥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우리는 먹었다. 오래간만의 외식이라 커피와 디저트까지 먹었다. 티라미슈가 유독 맛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복수의 카탄 전을 시작했다. 요즘 우리는 <카탄>이라는 보드게임에 빠져있다. 얼마 전까지는 기본판으로 하다가 확장판으로 넘어왔다. 지난 설 연휴 엄마의 승리 독식으로 다들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7시에 시작한 카탄은 새벽 1시가 넘어서 겨우 끝났다.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지도 못하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한 판 더하자며, 서로가 서로에게 징하다며, 그래도 오늘 저녁 맛있었는데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각자의 방으로 향한다.
오늘이 특별하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만남은 별 것 없다. 그냥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로 채워진 일상이다. 그런데 그 일상이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좋다. 한주를 무사히 보내고, 다들 별 일 없이 이렇게 만나서 함께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거의 매주 만나지만 매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다음 한 주를 잘 보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어, 아쉬움 속에 헤어진다.
아빠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늘 고민이 있다. 부모님과의 시간은 유한하다. 특히나 아빠가 아팠던 이후로 나는 언제나 부모님의 부재를 떠올린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한편, 나의 시간도 유한하다. 나 역시 언제든 부재할 수 있다. 굳이 부재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시간이 많을 때 해야 할 일들이, 배워놓아야 할 일들이 많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그런 것들에 대한 귀찮음과 피곤함을 부모님과의 시간으로 뭉개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있다. 아빠,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 어쨌든 늘 만족스럽고, 따뜻하니까. 그냥 핑곗거리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언제까지 허락된 것은 아님을 알기에 아빠, 엄마와의 시간을 선택한다고 해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도 좋을지. 전자는 흥미롭겠지만 피곤하고, 때로는 내 욕심만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 후자는 있는 그대로 좋은 시간이지만, 때로는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들의 그 중간 어디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못 찾았다.
어쨌는 이렇게 주말의 절반이 보드게임과 함께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