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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Feb 04. 2022

최애 피자 한 판에도 이상하게 우울한 금요일 저녁

기록하는 2022년│Episode 5│2022.02.04

피자를 최고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최고로 좋아하는 피자는 있다. 한동안 모터시티의 잭슨5가 내 원픽이었다. 가장 좋아했다. 결혼 후 멀어지면서 배달이 되는 엘로우피자의 타코피자가 그다음 내 선택지였고, 한동안 타코피자만 먹었다. 그리고 현재는 잭슨피자의 마가리타다. 


퇴근 후 시내로 나갈까, 집으로 갈까 망설였다. 가고 싶은 곳은 많았다. 새해맞이 구매한 3권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고, 그사이 책 한 권을 더 선물 받았다. 그럼에도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싶었다. 책을 산다는 구매행위는 다른 것을 사는 것과 적절히 비슷한 만족감을 주는 동시에 훨씬 적은 죄책감을 준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살 수 없을 때 종종 책을 대신 산다. 그러나 시내에 위치한 대형 서점에 가겠다고 생각한 짧은 순간 피로가 몰려온다. 막히는 도로, 주차하기 힘든 좁은 주차장, 어딜 가도 많을 사람들.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집으로 출발하면서 차선책을 찾는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피자 한 판 시켜서 올림픽 개막식을 보며 남편이랑 수다나 떨어야겠다.' 나름대로 괜찮은 대안에 만족스러운 마음과 함께 피자를 주문한다. 역시나 요즘 내 최애 피자인 잭슨의 마가리타다. 


주문한 피자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계속 가라앉는다. 왜지. 퇴근길에 받은 "월요일에 보자."는 상사의 전화 때문일까. 피곤하면 올라오는 두드러기 때문일까. 사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하나도 살 수 없기 때문일까. 치우고 자지 않은 어젯밤의 흔적 때문일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될 내일 아침의 일정 때문일까. 연휴가 끝났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래도 오늘은 나갔어야만 했던 것일까.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마음은 피자가 도착해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피자는 맛있지만, 그래도 계속 그 상태다.


피자를 다 먹고 치우기도 귀찮아 대충 누웠다. 그래도 금요일 밤을 이렇게 빨리 마무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우울할 이유를 더 만들고 싶지 않아 그래도 뭐라도 써본다. 한동안 빈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다 먹어버린 피자가 생각나 피자로 시작한다. 


체력을 비축한다는 것은 때로는 불필요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남겨둔 체력이 지금 나를 즐겁게 하지 못한다. 때때로 오히려 어제 아낀다는 핑계로 날려버린 시간만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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