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기 Feb 20. 2022

엄마 밥이 최고야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0│2022.02.19

수술을 마치고 부모님이 계신 용인 집으로 요양을 왔다. 요양이 필요한 정도는 사실 아니지만, 겸사겸사 왔다. 아직까지는 몸 챙김이 필요한 상황에는 용인으로 온다. 백신 1,2차 접종 후에도 용인으로 왔고, 치과 치료 후에도 용인으로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집 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다. 오늘은 뭘까. 설렌다. 부엌에는 이미 완성된 반찬이 한가득이다. 가지나물, 시금치무침, 고추장멸치볶음, 연근 유자 간장조림, 박대 조림이 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다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예를 들면 가지나물의 경우,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그중 나는 가지를 쪄서 손으로 길고 얇게 찢은 후 꽉 짜서 마늘과 고춧가루 조금 넣고 무치는 것을 좋아한다. 시금치무침도 그렇다. 시금치를 무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시금치를 데친 후 마늘을 넘칠 정도로 넣고, 소금이 아닌 국 간장로 살짝 간을 한 뒤, 어머님이 직접 짜주신 참기름으로 마무리하는 거을 좋아한다. 딱 봐도 딱 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반찬들이다. 그 섬세함에 새삼 엄마의 사랑이 가득 느껴진다. 


뭘 이렇게 많이 했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건강한 반찬 위주로 해서 맛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한다. 꼭 이런다. 엄마는 언제나 상다리 휘어지게 한가득 차려놓고도 늘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 내가 음식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진짜 그런 건가 하는 멍청한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이 정도의 상을 차려내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얼마만큼의 소비가 필요하고, 얼마만큼의 정성과 사랑이 필요한지.


결혼하고 나서는 엄마의 삶이 너무 대단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진 적도 있다. 나보다 더 바쁘게 일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남편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 나는 나 혼자의 삶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 여태 엄마 찬스를 쓰고 있는데,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서 지금까지 나의 엄마인 것이다. 물론 아빠의 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빠는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생각 없이 진짜 본일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해왔다. 나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다만, 요리 부분에 있어서는 학원을 다니기까지 했지만, 끝까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 포기했다. 어쨌든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 부부와 비교해보자면, 부모님의 세대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인 것 같다. 심지어 6일제로 토요일까지 출근했다니.


첫끼는 엄마의 정성 가득 밑반찬에 옥돔구이와 소고기 미역국이다. 엄마는 손도 커서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들통에 한가득 미역국을 끓여놓았다. 저걸 언제 다 먹나 싶다가도 막상 가져가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괜히 든든하다. 역시나 맛있다. 엄마의 음식을 가장 오래 먹고 자랐기 때문에 내 입맛에 가장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음식을 정말 잘한다. 최고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런 느낌이 든다. 맛있게 잘 먹었다.


저녁은 주꾸미 샤브샤브에 찹쌀 죽이다. 나는 제철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주꾸미 철이다. 수산 시장에 가서 살아있는 주꾸미를 사고, 좋아하는 채소를 가득 넣고 샤브샤브로 먹는다.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고, 힘이 되는 식사다.

 

엄마 밥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맛있어서 과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이 먹는 것은 안 좋을 것 같아서 엄청 신경 쓰면서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많이 먹었다. 잘 소화시키고 자야지. 엄마 밥에는 힘이 있다. 엄마 밥에는 마음이 있다. 힘들고 지친 날에도 엄마가 정성스레 차려준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 으슬으슬 몸이 아픈 날에도 마찬가지다. 엄마 밥을 먹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찬 기운이 사라진다. 언제까지 엄마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사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위해 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엄마 밥을 먹을 때마다 한다. 그러다가도 아직은 엄마 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냥 먹는다. 큰 욕심이 하나 있다면, 엄마가 해주는 밥을 지금처럼 온 가족이 함께 맛있게 오래오래 먹는 것이다. 엄마 밥이 최고다.



작가의 이전글 모두들 건강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