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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Feb 21. 2022

평범한 일요일의 작은 기록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21│2022.02.20

#1. 요양 2일 차다. 어제까지는 약을 먹어도 배가 욱신 욱신 쑤셨는데 오늘은 제 때 약을 먹기만 하면 괜찮다. 하루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몸 상태를 보면서 신기하다. 몸은 참 정확하구나. 신경 쓴 만큼 좋아지고, 정성을 쏟는 만큼 달라진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조금 무리를 한다. 그럼 바로 아랫배가 쿡쿡 쑤신다.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희망사항이지만) 앞으로 적어도 50년 이상은 이 몸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게,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싶다. 건강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는 나이이자 시기다. 약이나 피로회복제에 의지하지 않고, 보기에 예쁜 몸을 위해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 자체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


#2. 수술을 마친 후 엄마 집으로 와서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요양 중이다. 매 끼 엄마가 차려주는 정성 가득한 밥을 먹고 너무 좋아서 어제 <엄마 밥이 최고야>라는 일기를 썼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조회수가 50, 100, 1000회를 넘어가더니 현재 3,971회다. 조회 수가 높아지니 갑자기 걱정이 된다. 나는 엄마의 밥을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당연시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어제의 내 상황에서 엄마의 밥이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어제의 일기에 다 적지 못했을 뿐, 부모님은 고정된 성역할 없이 상황에 따라 각각 상황에 맞는 일을 한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혹시라도 나의 일기가 누군가에게 엄마 밥이 당연한 것이고, 여성의 집안일이 당연한 것이라는 것처럼 잘못 읽히고 들릴까 걱정이 된다. 지극히 사적인, 아주 별 볼일 없는 개인의 일기라도 이런 공개된 곳에 글을 쓰는 순간 책임이 따른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나 조차도 그런 생각을 조금은 했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꾸며 쓰거나 지어내겠다는 것은 당연히 전혀 아니다. 다만 내 하루를, 내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점검해나가야 할 것 같다.


#3. 카탄 왕국. 이 표현 말고는 주말의 우리 집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금토일 내내 가족 모두 모여 보드게임 '카탄'을 했다. 카탄에 대한 아빠, 엄마, 남편의 관심도와 몰입도는 엄청나다. 공부를 하라고 책상 앞에 앉으면 한 시간도 앉아 있기 힘들 텐데, 한 번 할 때마다 1시간씩은 걸리는 게임은 앉은자리에서 연달아 3-4번씩도 한다. 휴식이 필요한 내가 빠져도, 가끔 참여해도 상관없이 모두들 열정적이다. 얼마나 열정적이냐면, 게임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피로 회복제를 하나씩 나눠먹고 마저 게임을 할 정도다.


#4. 월요일 휴가를 냈다. 조금은 더 쉬고 싶었다. 월요일 휴가를 내니 일요일 저녁이 되어도 전혀 우울하거나 힘이 빠지지 않는다. 평소의 나라면 일요일 2시부터 아마 월요일인 내일을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일요일의 절반 이상을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이 휴가라니, 내일 출근을 하지 않는다니 밤 11시가 다 되어도 여전히 즐겁다. 여전히 주말이다. 아무래도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출근이 지금처럼 두렵지 않은 곳으로 출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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