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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05. 2022

회사 후배와 조금 친해진 것 같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33│2022.03.04

회사에 들어오고 한동안 막내였다. 4-5개의 팀, 약 서른 명이 있는 국 내에서 말이다. 16년에 입사하고 나서 3년 동안은 막내인 동시에 유일한 20대였다. 막내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어쨌든 대부분의 경우 늘 뜨거운 관심과 따뜻한 사랑의 대상이 된다, 막내는. 작년에 옆 팀에 두 살 어린 후배가 들어왔지만, 나는 여전히 팀 내에서 막내였다. 팀에서 바로 윗 선배는 나와 8살 차이가 난다. 8살 차이가 적은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팀 내에서는, 우리 국 내에서는 꽤 같은 그룹(예를 들면, 선배가 정말 싫어하는 표현인 '막내라인'과 같은)으로 묶이는 비슷한 처지다.


어쨌든 그런 우리 팀에 지난 2월 무려 나와 7살이 차이나는 후배가 들어왔다.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나를 보는 선배들의 마음이 혹시 이랬을까. 너무 소중해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이왕 입사한 것, 일을 잘 배워서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지만, 회사의 안 좋은 점을 직면하거나 만나서 힘든 사람은 최대한 안 만났으면 좋겠다. 막내여서 국 내 모든 친절과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막내라서 겪는 불편함이라거나 해야 할 일들은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길 바라는 내 마음에 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겪어 나가며 배워가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후배의 회사 생활이 즐겁고 평탄했으면 좋겠다. 


동시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무척 어렵다. 나에게 어떤 선배의 역할을 기대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일만 딱 나누고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공유하지 않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아주 조금은 서로의 사적인 부분을 나누고 가끔은 양해도 구하고 싶은가. 매일 식사를 챙겨주길 원하는가(회사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아니면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가. 물론 모든 관계의 출발은 사람과 사람 간의 케미에서 따라 다르기 때문에 딱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둘의 케미는 또 어떤가. 나는 일단 좋은데, 나의 이런 관심이 내가 예전에 일부 선배들한테 느꼈던 것처럼 불편한 것은 아닌가. 개인적으로 뭘 물어볼 때도 여러 번 고민한다. 일단 후배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친해질 수 있을 텐데, 무엇을 알기 위해 물어보는 이런 질문들이 혹시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거나 개인적인 부분이라거나, 꼰대 같다거나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애초에 친해지고 싶다는 접근이 회사 선후배 관계에서 괜찮은지, 그렇다고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회사에서 하루에 한마디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은 너무 삭막한 것이 아닌지 신경이 쓰인다. 회사는 꽤 다녔지만 선배는 처음이라 여전히 하루하루 고민의 연속이다.


그래도 어쨌든 진심은 통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솔직하게, 대신 너무 불편하지 않게 후배를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좋아했고, 따랐던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단 본인의 일을 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적극적으로 돕고, 전체적인 결과에 책임지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되 거절을 기분 나빠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은 것 역시 관계에서 중요한 것 같다. 물어보기 애매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미리 캐치해서 알려주는 것도 역시 필요한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잘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좋은 선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점심, 도시락을 빠르게 먹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는데 후배가 물었다. 


"올리브영 세일한다고 해서 구경 가려고 하는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알겠다고 하고 바로 따라나섰다. 올리브영에서 도착해 각자 구경하고 계산 전에 만나서 각자 사려는 것들을 공유했다. 당근 각질 패드가 좋다는 후배의 말에 한 통 샀다. 쇼핑을 마치고 내친김에 사전투표도 함께 하고 왔다. 투표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사서 자리에 돌아왔는데도 아직 1시가 안 됐다. 후배가 또 묻는다.


"혹시 <스물다섯, 스물하나> 보세요?"


다행이다. 드라마에 과몰입하는 편이라 평소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 편인데,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우연히 보게 돼서 오랜만에 본방 사수하고 있다. 본다는 말에 갑자기 후배가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온다. 후배는 어제 6화를 봤다고 한다. 한참 드라마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자리로 돌아가 업무에 집중하는 후배의 모습을 보니 괜히 즐겁다.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내가 후배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태도가 과한 것은 아닌지, 혹은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꼰대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인다. 어쨌든 후배가 좋고, 후배의 회사 생활을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회사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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