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34│2022.03.05
아무 일도 없는 주말을 맞아 남편이 축구화 밑창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천연잔디용 축구화를 샀는데, 신었을 때 발에 착 감기는 그 느낌이 참 좋아서 신고 싶은데 요즘 풋살만 계속하다 보니 신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바닥의 스터드가 너무 높아서 맨 땅에서 잘못 신으면 발목 등 부상의 위험이 높다고 한다. 축구화의 세계가 그렇게 심오한지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다. 용도도 다르고, 가죽의 종류도 다르고, 바닥의 스터드 모양도 다 다르다.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사고 싶다고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남편과 함께 드라이브 겸 축구화 수선 전문점을 방문했다. 맞춤 축구화 제작과 수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에 한 번, 엄청나게 많이 맡겨져 있는 축구화에 또 한 번 놀랐다. 남편은 스터드를 아예 교체할 예정이었는데, 3mm 정도 잘라내는 방법도 있다고 하셔서 교체 전 우선 잘라내 보기로 했다.
또 한 번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고 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훼단지가 보였다. 봄이 다가오니 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송이 사서 집에 꽂아두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다른 세상이다. 이곳은 벌써 봄이다.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저 멀리 푸른 잎 사이에 조그맣고 동그란 주황색 열매가 앙증맞게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낑깡나무(금귤나무)다.
나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사장님께서 토분에 옮겨 심으면 더 예쁠 것이라고 추천해주셨다. 토분을 보여주셨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예쁜 화분이라니.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한가득 따뜻해질 수 있나. 나와 집으로 함께 가야만 할 것 같다. 유일한 걱정은 내가 잘 키워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화분을 데려와서 잘 못 키워내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장님께 키우기 쉬운지, 물은 얼마나 주면 되는지 등에 대해서 여쭤봤는데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건 다 인터넷에 잘 나와있어요. 물은 일주일에 한 번 흠뻑 주면 되고, 햇빛을 좋아해서 햇빛을 많이 봐야 해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지. 이렇게 키우기도 전에 걱정하면 쟤도 알아들어요. 몸살 없이 씩씩하게 잘 크자고 이야기해주고, 사랑한다고 자주 이야기해줘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도 용기가 조금 났다. 마음껏 사랑해 줄 자신은 있었다. 저렇게 따뜻한 낑깡나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집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남편 역시 이미 낑깡나무에 마음을 몽땅 빼앗겨버린 듯하다. 충동 소비를 할 때 둘 중 한 명은 이성적 판단으로 상대를 말려야 할 텐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결제 중이다.
집에 와서 물을 흠뻑 주고 또 지켜봤다. 존재만으로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다니. 대단하다.
낑깡 몇 알을 따 먹어보기로 한다. 집에서 키우는 과실수의 열매는 보통 관상이 위주라 실제로 잘 먹지는 않는다는데, 사장님은 꼭 따 먹어 보라고 하셨다. 일단 너무 많이 달려있으면 무거워서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몇 알 따서 식초물에 헹궈서 먹어보았다. 정말 맛있다. 새콤달콤한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진다.
몇 알 땄더니 아까보다는 조금 휑해진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열매가 잘 맺어진 만큼 잘 떨어져야 하고, 그래야 6월에 꽃도 잘 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꽃이 펴야 또 내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갑자기 낑깡나무와 함께 살기로 했다. 이렇게 예쁘고 멋진 나무와 함께 살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