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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11. 2022

유행을 따르기 싫지만 따르고 싶어(포켓몬빵 나도 샀다)

기록하는 2022년│Episode 39│2022.03.10

포켓몬 빵이 유행이다.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편의점 6-7곳을 돌아야 하나 살 수 있다고 한다. 계획적이라면 편의점 물류 배송 시간을 미리 파악 후 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동네 커뮤니티에는 품절 안된 곳이 속보처럼 올라오고, 편의점보다는 동네 슈퍼를 노려야 한다는 전략도 등장했다. 2-3배의 가격으로 파는 곳도 있다고 하고, 띠부띠부씰 전용 앨범들도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나도 포켓몬 빵 샀다'는 썰이 종종 올라온다. 제2의 허니버터칩이라고들 한다. 


왜 유행일까.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포켓몬 빵의 유행에 대한 분석기사들이 쏟아진다.

정말로 그런 이유들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인의 삶이 덜 재미있거나 여러 가지 제약들로 인해 딱히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을 때 이런 것들이 유행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주로 그렇기 때문이다. 큰 재미가 없어 소소한 재미가 필요할 때, 잦은 실패들로 인해 작은 성취들이 필요할 때 이런 것들에 마음을 많이 빼앗기는 편이다. (물론 아닐 때도 많고, 사실은 그냥 아무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런 포켓몬 빵의 유행을 괜히 따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여러 곳을 돌아다닐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도 별 관심이 없이 안 산 포켓몬 빵을 이제야 산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한 번쯤은 포켓몬 빵을 사고 싶기도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띠부띠부씰을 뜯는 기대감을, 설렘을 나도 느끼고 싶었다. 


무리하지는 않되, 혹시 살 수 있으면 사보자는 마음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사이 집 근처 편의점을 갈 일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얼음을 사러, 한 번은 중력분 밀가루를 사러 갔다. 아쉽게도 포켓몬 빵은 없었다. 빵 코너를 기웃거리면 사장님이 "혹시 포켓몬 빵 찾으세요? 그건 들어오자마자 바로 다 나가요. 일찍 오시거나 맞춰 오셔야 해요."라고 친절히 포켓몬 빵의 행방을 알려주셨다. 포켓몬 빵의 인기가 내 생각보다 훨씬 많구나. 아무래도 포켓몬 빵 구입은 당분간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회식 후 거나하게 취한 남편을 차에 싣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편의점 앞에 큰 물류 차량이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차를 세우고 남편한테 포켓몬 빵의 입고 여부를 확인하고 오라고 했다. 잠시 후 남편은 저 멀리서부터 아주 밝은 얼굴로 양손에 빵을 하나씩 들고 뛰어온다.


"두 개 샀어! 둘 다 초코 빵이야! 지금 방금 들어왔대!"

"두 개나 살 수 있었어?"

"응. 딱 두 개 들어왔길래 두 개 다 사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사세요~'라던데?"

"오. 잘했네. 잘했어"


생각지도 못 했는데 뜻밖의 득템이다. '돌아온 로켓단 초코롤'과 '돌아온 고오스 초코케이크'다.

얼른 초코롤부터 뜯는다.

남편은 과거의 기억보다 적게 들어있는 초코크림에 무척 실망한 눈치다. 음식에 도통 불만이 없는 사람인데 옆에서 계속 중얼거린다.


"와. 정말. 이 크림의 양 좀 봐. 너무 야박하지 않아?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모를 일이다. 진짜 예전 초코롤에 비해 초코 크림의 양이 줄었는지, 아니면 기분 탓인지. 혹은 그 사이에 남편이 빵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렴 뭐 어떤가. 드디어 포켓몬 빵을 샀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설레는 마음으로 띠부띠부씰을 열어본다.

웃는 이브이가 나왔다. 웃고 있는 이브이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귀엽다. 얼른 이브이의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으고 싶다. 아. 이래서 포켓몬 빵이 인기가 많은 거구나. 이제 알겠다. 포켓몬 빵을 직접 마주하고 난 뒤 포켓몬 빵의 유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과거에 대한 향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포켓몬 띠부띠부씰이 귀엽기 때문이다. 저렇게 귀여운데 안사고 견딜 수 있나. 유행을 따르고 싶지 않았지만, 따르고 싶다. 이상한 마음이다.


남은 초코케이크는 내일의 작은 기쁨을 위해 남겨 두었다. 내일 열심히 출근하고 퇴근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뜯어봐야지. 나도 포켓몬 빵 드디어 사봤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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