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기 Mar 10. 2022

이게 맞는 건가. 홈베이킹 첫 도전

기록하는 2022년│Episode 38│2022.03.09

갑자기 왜 홈베이킹에 도전하게 된 것인가.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얼마 전부터 빵을 만들고 싶다는(정확히 말하자면 쿠키와 파이가 굽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인스타그램에서 귀여운 쿠키를 본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 모양의 쿠키였는데 참 귀여웠다. 나도 배워서 내 얼굴 모양의 쿠키를 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러 갈까 고민했는데 부산이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오프라인 강의는 어려울 것 같아 온라인 강의를 찾았는데 내가 베이킹에 그 어떠한 정보와 소질이 없어서 무턱대고 비싼 수강료와 오븐을 구입하기에 부담이 됐다. 그냥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에 그렇게 큰돈을 쓰기에는 돈이 없다. 이렇게 어영부영 쿠키를 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호박 파이를 파는 <뭄미>가 망원동에서의 영업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원동에 있을 땐 그래도 종종 사 먹었는데 제주도로 내려간다니 앞으로는 못 먹을 것 같아 슬펐다. 뭄미의 단호박 파이를 정말 좋아하는 나는 대체할 곳을 찾았는데, 오프라인 매장으로는 아직 못 찾았고, 인터넷에는 비슷해 보이는 레시피가 많이 있었다. 그 레시피들을 보고 있노라니 사 먹을 수 없다면 만들어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나를 향한 말이다. 제과제빵에 지식이 없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미처 모른 채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고난도의 쿠키나 파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뭘 배우거나 도전해본다고 하더라도 그전에 최소한 5번 이상의 홈베이킹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고, 내가 이것을 배워나가는 것에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재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적어도 5번 이상은 만들어보고 이 상태에서 돈을 더 쓰건 그냥 포기하고 사 먹건 해보기로 했다. 첫출발로 비교적 간단하다는 스콘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라 어제 충동적으로 마켓 컬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고, 오늘 아침에 당연히 배송이 잘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살짝 귀찮기도 했는데  문 앞에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시작했다.


생각보다 필요한 것은 많았다. 스콘 5알을 만드는데 기본적으로 중력분, 설탕, 소금, 베이킹파우더, 계란, 우유, 생크림, 버터가 필요했다. 계량컵이나 저울, 유산지 등 도구들을 포함하면 필요한 것은 더 많다. 평소 홈베이킹을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다 있을 재료라고 했지만 나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새로 샀다.

한쪽에는 레시피를 켜놓고, 한쪽에서는 재료를 준비하느라 난리가 났다. 베이킹의 핵심은 정확한 계량과 온도라고 했는데 시작부터 망했다. 우선 베이킹을 위해 주문한 것들 중 제일 핵심적인 것들이 안 왔다. 저울과 온도계, 체였다. 그 어느 하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다행스럽게도 계량스푼이 있어서 몸은 힘들지만 여차저차 계량을 했다. (예를 들면 중력분 180g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계량스푼이 15ml니까 180 ÷ 15 = 12로 해서 12번 계량스푼으로 옮겼다. 당시에는 꽤나 획기적인 위기탈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무게와 부피는 다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있다가 다 굽고 나서야 이것이 얼마나 멍청한 방법이었는지, 내 스콘이 왜 동그랗게 구워지지 않고 흘러내렸는지 알게 됐다.) 어쨌든 스콘 반죽의 생명은 버터가 너무 녹지 않는 것이라고 하고, 시원한 온도에서 빠르게 해 나갔다. (내 일기에 버터 스콘 만드는 법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필요한 분들을 위해 맨 아래 내가 참고한 레시피를 담아왔다.)

작은 덩어리를 여러 겹 겹쳐서 한 덩이가 된다는 느낌으로 뭉쳐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작은 덩어리를 여러 겹 겹쳐서 한 덩이가 된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5개의 반죽 모두 다 다르게 해 봤다. 처음부터 이렇게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완성된 반죽은 냉장고에서 약 30분-1시간 휴지기를 가졌다. 그 사이 난장판이 된 부엌을 정리하고 에어프라이어를 예열했다.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 계란물을 입히고 (오일용 브러쉬도 없어서 숟가락으로 계란물을 입히다가 다 흘러내렸다. 역시 요리는 장비빨인가.) 구웠다. 


구워진 빵은 내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명 동그란 스콘을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흘러내린 걸까. (위에서도 썼지만 잘못된 계량으로 인해 반죽이 너무 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때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엄청 맛있다. 물론 갓 나온 빵은 당연히 다 맛있겠지만 이 스콘은 정말 맛있었다. 내가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정말 맛있었다. 일단 맛이 진하다는 고메 버터를 사용했고, 설탕과 생크림이 이 정도로 들어가면 뭐든 이만큼은 맛있을 거다. 망친 모양과 달리 맛은 좋아서 스콘을 굽자마다 커피와 함께 모두 다 먹었다. 


홈베이킹 첫 도전의 소감은 '이게 맞는 건가'다. 베이킹에 대한 아무런 기초가 없다 보니 아무리 친절한 레시피라도 와닿는 부분이 달랐다. 계속 '오.. 이게 맞는 건가? 내가 맞게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조금 답답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첫 홈베이킹 도전은 성공적인 것 같다. 우선 베이킹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설거지까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 주에 저울과 체가 도착하면 아무래도 이것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뭄미의 단호박 파이를 내 손으로 구워보는 그날까지 아무래도 내 홈베이킹은 계속될 것 같다. 



내가 참고한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나는 조금 더 진한 버터향을 느끼고 싶어서 고메 버터를 썼다. 



홈베이킹이 오늘의 가장 인상 깊은 일이긴 했지만 유일한 일은 아니었다. 역시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이래서 좋다. 무엇인가 가득 담을 수 있다. 별 일 아닌 일들도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잊고 싶지 않은 오늘의 소소한 일들을 함께 남겨본다.


#1. 동네 산책하다 만난 귀여운 고양이


#2. 집 근처에 밀키트 편의점이 생겼다. 밀키트 편의점이라니 신기하다. 부대찌개를 도전해봤다. 꽤 간편하고 맛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자주 이용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3. 원래 오늘의 계획은 <루이베이크샵>에 가서 베녜를 먹고, <필구커피>에 가서 고메 버터 스콘과 멜로우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었다. 동네 핫플 투어랄까.

그런데 갑자기 집에서 빵을 만들었더니 도저히 다른 빵을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먹으러 가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홍게를 먹는다. 홍홍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