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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13. 2022

회사가 발명품이라는 선배의 말에

기록하는 2022년│Episode 40│2022.03.11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은 사람이 있다. 오늘 점심을 같이 먹은 선배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물론 좋은 쪽으로 그렇다. 선배를 처음 만난 건 약 6년 전쯤이다. 신입으로 입사한 나와 경력직으로 입사한 선배. 부서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나이도 9살 차이가 났지만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취향이 비슷했고, 성향이 비슷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사 초창기에 같은 사람의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와 이직을 고민한다는 것을 우연히 서로 알게 된 후 친해짐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나에 비해 경력도 능력도 훨씬 많은 선배는 늘 나보다 훨씬 바빴고, 많은 일을 했다. 선배가 팀장을 달고는 더욱더 바빠졌지만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는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6년 전 선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선배는 한결같다. 선배를 보면 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다. 우선 선배는 일을 정말 잘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에는 속도, 방향, 소통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되겠지만, 선배의 일처리에는 '일을 잘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잘 함이 포함되어있다. 회사 내 인간 관계도 좋다. 선배의 주변 선후배 모두 선배와 친해지고 싶어 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늘 긍정적인 화법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상대에게 영감을 주고, 힘을 준다. 본인 자신에게도 진심이다. 맛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일이 많아도 매일 운동을 건너뛰지 않는다. 꾸미고 옷 입는 것도 좋아하고 잘한다. 늘 예쁘다. 오피스룩의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다. 노는 것에도 진심이다. 분명 바쁠 텐데도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전시나 공연 등은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기에 이미 충분히 완벽한 선배인데, 선배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옆에서 볼 때 매일 조금씩 더 발전해나가는 선배의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 그런 선배를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사람 같다. 나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같은 하루를 보낸다고는 믿을 수 없다. 아무래도 선배에게는 24시간을 50시간처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결같이 멋지고 대단한 선배는 그동안 내 회사생활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큰 힘이 됐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건 그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줬다. 그리고 정해진 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전해줬다. 그 덕분에 어쨌든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잘 버틸 수 있었다.


즐거운 금요일을 맞아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쌀국수를 먹고 회사 근처 새로 생긴 루프탑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생각을 나눴다. 요즘 보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 따뜻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 미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사직서를 냈다가 돌려받고, 다시 회사를 다니기로 결정하면서 느꼈던 것 내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선배가 이야기를 한다.


"나도 정말 똑같은 고민을 매일 해. 아직도 완전히 답을 찾지는 못했어. 그런데 내가 회사를 생각하다가 든 생각은, 회사는 어쨌든 사람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는 것이야. 모두가 100%, 120%로 일을 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잖아. 그래서 모두가 100%로 일하지 않더라도 각자 적당한 에너지로 일을 하면 그것들이 모여서 90%, 100%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회사라는 것을 발명해낸 것이지. 각자의 룸 안에서 10%로 일 할 수도 있고, 120%로 일 할 수 도 있겠지만, 많이 봐서 알겠지만, 큰 결과는 달라지지 않잖아. 오히려 120%로 일하다 보면 내게 주어진 룸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튕겨져 나가겠지. 소위 말하는 '부품'같은 것 말이야. 이걸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대화를 축약해놓은 것이라 내가 들은 선배의 말을 제대로 옮겨 놓았는지는 자신이 없다. 어쨌든 회사라는 것은 모두가 적당히 일을 해도 적당히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인간이 발명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일하기로 했다면, (떠난다면 당연히 다른 태도를 가져야겠지만) 그 안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가 또 다르게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보다 200%로 일하는 선배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다니 조금 더 놀랍게 다가왔다. 그리고 안도의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하는 고민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민이겠구나. 완벽한 해답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만의 답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구나. 또 한편으로는 요 근래 회사에서의 내 목표가 더 이상 승진과 급여 인상이 아니라 루팡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 스스로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웠는데, 그런 것들 또한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또 한 번 깨닫게 됐다. (물론 선배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과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함께 일깨워줬다.) 회사에 이런 생각들을 공유해나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런 좋은 사람과의 관계 역시 회사가 목적대로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을 테니, 의도해놓은 것 정도로 봐야겠다) 여러 가지 장치 중 하나가 아닐까. 어쨌든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을 누릴 순 없더라도 적어도 함몰되지는 말아야지.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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