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41│2022.03.12-13
요 근래 계속 밀접접촉자가 되면서 약 3주 동안 엄마, 아빠 집에 가지 못했다. 겸사겸사 이번 주는 아빠, 엄마가 집에 놀러 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 생각에 반가웠다. 그런데 오기도 전부터 이상하게 피곤했다. 부모님 집에 갈 때는 몰랐는데, 누가 집에 온다고 하니까 (더군다나 부모님이!)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청소는 이 정도면 잘 되어있는 것인가, 뭘 먹어야 하는 것인가, 뭘 해야 하는 것인가 괜히 이것저것 고민이 됐다.
우선 오랜만에 집에 오는 김에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맛집 몇 곳을 떠올리다 한 끼는 집밥을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다. 금요일 밤 급하게 마켓컬리에서 이것저것 담았다. 불안한 마음에 평소라면 잘 구매하지 않았을 것들을 자꾸 사게 된다. 과일과 빵도 평소보다 과하게 담았다. 다음날 아침, 눈이 번쩍 떠졌다. 엄마, 아빠가 출발한다는 카톡을 본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서둘러 점심을 준비한다. 원래는 소꼬리찜을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마켓컬리의 배송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4시간 정도 걸리는 소꼬리찜을 시도할 수 없었다.
대신 급하게 다른 것들을 준비했다. 봄맞이 쑥국을 끓이고 봄나물 3종을 준비했다. 갑오징어 볶음도 했다. 남편은 전복 버터구이를 한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홍어도 꺼냈다. 한 시간 넘게 준비했는도 막상 차려놓고 보니 먹을 게 없다. 집에 가면 왜 엄마가 맨날 "차린 건 없지만-"이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점심을 차리자마자 아빠, 엄마가 도착했다. 인사 대신 밥부터 먹는다. 생각해보니 치과 치료 중인 엄마가 먹기에 괜찮은 음식이 없는 것 같다. 생각을 한다고 해도 늘 이렇게 하나씩 부족하다. 그럼에도 아빠, 엄마는 늘 그렇듯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나와 남편에게 고맙다면서 맛있게 드신다.
이사한 집에 처음 오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꽃을 사 왔다. 역시 엄마다. 엄마의 그 마음씀이 나는 정말 좋다. 얼마 전 꽃 정기배송을 하다가 너무 추운 날씨에 꽃도 상해서 오고, 또 돈도 아껴야 할 것 같아 중단했다고 얼핏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사 온 것이다. 엄마가 사 온 꽃 몇 송이에 갑자기 밝아진다.
밥을 다 먹고 과일을 먹는다. 괜히 난 잘 먹고 잘 지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여러 종류의 과일을 샀다. 조금씩 담아 각자의 앞접시에 낸다. 알록달록 색이 예쁘다는 아빠의 말에 기분이 좋다.
점심을 먹고 동네 구경을 한다. 최근 공사 중인 건물들과 새로 생긴 카페를 소개해줬다. 변해가는 동네의 모습에 괜히 내가 뿌듯하다. 간단한 동네 구경을 마치고 뒷산을 오른다. 날씨가 좋은 탓에 산에는 사람이 많다. 산 입구도 한창 공사 중이다. 무장애 등산 코스를 만든다고 한다. 등산 스타일에 따라 자연스레 두 그룹으로 나뉜다. 빠른 스피드를 좋아하는 아빠와 남편은 벌써 저만큼 앞서 있다. 걷는 것에 의의를 두는 편인 엄마와 나는 한참 뒤처져서 설렁설렁 걷는다. 엄마와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 전 엄마와 살았을 때는 매일이고 나눴을 이야기들을 이제는 이렇게 날 잡고서야 나누게 된다.
한 시간의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커피를 마신다. 엄마가 레몬 케이크를 구워왔다. 얼마 전 홈베이킹이 처음이었던 나와 달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빵을 구웠다. 엄마는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잘한다. 빵도 마찬가지다. 너무 뚝딱뚝딱 금방 해내길래 쉬운 건 줄 알았는데 지난번 스콘 도전 이후 아니었다. 새삼 엄마의 레몬 케이크다 더 맛있게 느껴진다. 커피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한다. 역시나 '카탄'이다. 우리는 언제쯤 이 게임에 질리게 될까.
별 것 안 한 것 같은데 벌써 저녁시간이다. 저녁은 외식이다. 얼마 전 남편과 다녀온 '멜팅샵X치즈룸 광화문디타워점'을 예약했다. 도저히 집에서 두 끼는 안 될 것 같다. 지난번 맛있게 먹었던 얼그레이 토마토 카프리제와 명란 대파 크림 파스타를 시켰다. 그리고 시금치 플랫 브래드, 감태 파스타, 소꼬리찜 리조또, 산 세바스찬 오리지널 치즈케이크에 도전했다.
역시나 맛있다.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 아빠는 이미 혼자만의 추억 여행에 한창이다. 아빠가 고등학생일 때는 이렇게 높은 건물이 없었다며, 이 근처 과외로 유명한 곳이 있어서 이 근처를 매일 왔는데, 놀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는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듣는 아빠의 레퍼토리지만, 아빠의 추억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늘 재미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커피를 내린다. 커피와 빵을 빼고 우리 가족을 소개할 수 있을까. 그만큼 아빠, 엄마는 커피에 진심이다. 커피를 마시며 다시 이야기를 한다. 점심 먹기 전에 만나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했는데도 아직도 뭐 그렇게들 할 이야기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다시 자연스럽게 '카탄'을 한다. 정말 궁금하다. 우리는 진짜 언제쯤 이 게임이 지겨우게 될까.
게임에 몰입하다 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아쉽지만 내일을 위해 잔다.
아침이다. 겨우 일어난다. 아빠와 엄마는 이미 일어나서 동네 산책도 다녀왔다고 한다.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몇 살이 되면 아침잠이 없어질까. 여전히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남편이 현재 우리 집에서만 할 수 있는 거라고 부모님께 낑깡 따기 체험을 권했다. 아니 뭘 이런 걸 하자고 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엄마가 엄청 좋아한다. 진짜 좋아하는 건지, 사위의 권유에 좋아하는 척을 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지가위를 들고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낑깡 따기 체험을 권한 남편이 놀랍다.
낑깡 따기 체험을 마치고 근처 서삼릉 쪽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팀장님께 소개받은 곳이다. 작년 10월 인사이동 후 한동안 팀장님과의 합을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이제야 조금 맞아간다. 특히나 맛집에 관해서는 팀장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편이다.
통오리가 한 마리 구워져 나오고 테이블 앞에서 먹기 좋게 손질해준다. 손질된 오리를 밀전병에 싸 먹는 것이다 슴슴한 것이 꽤 맛있다. 점심을 먹고 식당 앞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다시 왔다.
집에 와서 다시 커피를 마시고 짐을 챙긴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집에 간다. 부모님과의 1박 2일은 정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아빠, 엄마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뻗는다. 용인 집에 가면 점심 먹자마자 엄마가 집에 가라고 가라고 했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다. 서울로 돌아오는 우리의 차가 막혀서 고생할까 봐 그런 줄 알았는데, 엄마는 꽤 피곤했던 것 같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매끼 집에서 얻어먹고, 일찍 안 가도 된다고 했다. 앞으로는 눈치껏 적당히 놀다가 와야겠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있다. 그 상황이 되어봐야 진짜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빠의 마음,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들 중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