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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r 25. 2022

KTX 타고 홀랑 다녀온 당일 치기 강릉여행

기록하는 2022년│Episode 51│2022.03.23

[일정 요약]


지난주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강릉 가자."

"그래. 좋아. 그런데 주말은 사람 많아서 싫어. 평일에 가자."

"1박 2일은 싫어. 이틀 휴가 내기 어려워. 당일로 다녀오자"

"좋은 생각이다."


이것이 우리 당일 치기 강릉여행의 시작이자 전부다. 늘 그랬듯 우리는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다.


서울역에서 만나 9시 1분 열차를 탄다. 당일치기 여행 치고는 출발이 늦었다. 새벽 기차를 타볼까도 고민했지만 우린 모두 매일의 체력이 정해진 방전된 배터리들이다. 이상과 현실 중 고민하다 현실을 택했다. 오랜만의 서울역은 새삼 크다. 한동안은 정말 매일 왔던 서울역인데 몇 개월 안 왔다고 낯설다. 


강릉에 도착하니 11시다. 당연히 밥부터 먹는다. 꼬막비빔밥으로 유명한 <엄지네 포장마차>는 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다. 강릉에 적어도 열 번은 왔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꼬막비빔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꼬막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이곳의 엄청난 웨이팅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 굳이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일이고, 꼭 먹어보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 와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반찬도 알찼고, 비빔밥 자체도 맛있었다. 이곳이 왜 유명한지, 줄이 왜 이렇게 길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동안의 강릉 여행에서 이 음식을 못 먹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앞으로의 강릉 여행에서는 기꺼이 웨이팅을 감내할 수 있는 맛이다.


맛있는 밥을 먹은 후에 필요한 것은 맛있는 후식이다. 푸딩 가게인 <두딩>에 갔다. 사실 두딩은 맛에 대한 기대보다는 너무 귀여운 네이밍에 마음을 빼앗겨 안 갈 수 없었다. 두부로 만든 푸딩을 파는 두딩이라니. 엉엉. 너무 귀여워. 푸딩 특성상 바로 먹어야 함에도 매장 안에서는 먹을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상황이라고 한다.) 살짝 고민하다가 사서 가게 옆 길거리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먹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두부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참 맛있었다.


<두딩> 근처에 갤러리 겸 로컬 편집샵인 <Oars>가 있다. 오어즈로 향하는 길에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다.

#1. <오브더모먼트> 

카페인데 커피를 마시지는 못했다. 예쁜 식물과 예쁜 화분들. 차를 가져갔더라면 아마도 하나쯤은 데려왔을 것들로 가득하다. 후기를 찾아보니 커피도 맛있다고 한다.


#2. <Oars>

일러스트레이터 김나훔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 겸 로컬 편집샵이다. 29cm에 입점되어있어 온라인에서 먼저 알게 된 곳인데 강릉에 간 만큼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기대 이상으로 더 멋졌다. 참 따뜻한 공간이었다. 언젠가 내 공간을 만든다면 이렇게 구석구석 따뜻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큰 소비를 하고 나왔다.


#3. <산소울>

도자기공방이다. 아기자기한 도자기 소품도 구매할 수 있다. '산과 바다가 있는 강릉에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자기와 소품을 만든다.'라고 하신 사장님의 소개글에 마음을 또 빼앗겼다. 그런 것들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너무나 새롭게 내게 다가오는 것들. 역시나 이곳에서도 과소비를 하고야 말았는데, 정성으로 포장해주신 사장님 덕분에 눈물 흘릴 뻔했다. 


#4. <사유의 공간>

빈티지 소품샵이다. 물건마다 함께하던 사장님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 밖에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 많았는데, 수요일 쉬는 곳이 많았다. 미리 못 챙겨보고 간 내 잘못이다. 꼭 영업시간을 참고해서 가길 바란다. 참고했던 블로그를 남겨 놓는다. 


배도 적당히 부르고 예쁜 것들도 잔뜩 봤다. 커피 마시기 딱 좋은 시간이다. 바닷가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본다. 강문해변 근처 소나무 숲 뷰가 최고라는 <엔드 투 앤드>에 가기로 한다. 

택시를 타고 카페 앞에 내렸는데 약간 당황했다. 이곳이 사진에서 본 곳이 맞나 싶었다. 2층부터 시작되는 게스트하우스와 도무지 같은 공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5층의 루프탑까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넓은 정원과 물 멍 할 수 있는 테이블, 눈앞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은 그 자체로 훌륭했다. 그리고 이곳의 어떤 괴랄한 이상스러움은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커피를 마시려다가 분위기에 비해 아무래도 커피는 맛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시원한 솔잎향을 잔뜩 마시며 소나무 숲 길을 걸었다.

바다도 실컷 봤다.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렸는데 신기하게도 바닷가 근처에 도착하니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덕분에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잔뜩 볼 수 있었다. 

씨마크 호텔로 가는 오솔길에서 만난 바다다. 새파랗고 새파랗다.


아직까지 커피를 먹지 못한 채 계속 걷다가 도착한 <31건어물>. 소포장이 훌륭해 선물용 건어물을 구입하기에 좋다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꽤 쾌적하고, 꽤 예쁘게, 사고 싶을 만큼만 포장해놓고 있었다.

신기하다. 나는 왜 이런 생각들을 못했을까. 배 위에서 말린 오징어를 비롯해서, 남편이 좋아하는 오징어 다리와 아귀포를 샀다. 오늘의 가장 큰 소비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다리 위에서 만난 윤슬. 예쁘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걷다가 드디어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가 간 곳은 <테라로사 경포호수점>이다. 테라로사의 다른 공간들에 비해 좋다고 느꼈다. 좋다는 말 말고 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표현이 또 없을까. 답답하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던 이곳에서 하루 종일 먹고 싶었던 커피를 드디어 마셨다.


벌써 저녁시간이다. <동화가든>에서 짬뽕 순두부를 먹고 싶었는데 그곳 역시 수요일 휴무라고 한다. 먹고 싶었던 감자옹심이 집 역시 마찬가지다. 근처 <초당토박이할머니순두부집>에 가기로 한다.

하루 종일 쌀쌀했는데, 따뜻한 바닥에 앉으니 노곤하다. 가게에 '눕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있었는데, 아마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겠다. 순두부는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하니 맛있다. 


해가 저물고 하늘은 어두워진다. 강릉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서둘러 <버드나무 브루어리>로 향한다. 강릉 송고버섯 피자를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맥주로 유명한 곳이라 사실 안주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는데 한 끼 식사로 훌륭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위해 맥주 두 병도 샀다.


 

이어서 식료품점인 <버드나무 크래프트>에 간다. 이곳에서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을 위해 강릉 소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샀다. 아빠, 엄마가 여행에 가면 뭘 그렇게 바리바리 사 오는지 늘 궁금했는데 아마도 지금 이런 마음이었겠지 싶다.


8시 30분 서울행 KTX를 탄다. 마음은 가볍고, 양손은 무겁다.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늘 보던 건물들이 유난히 빛난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불과 몇 시간 전의 강릉 여행이 마치 몇 달 전 일 같다. 벌써 까마득하다. 아쉽지만 디음을 기약한다. 이미 수차례 다녀왔던 강릉이지만 이번에도 멋졌다. 나도 모르게 많은 용기와 응원을 받았다. 다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다녀와서 담을 수 있는 내 마음의 표현이 이 정도뿐이라는 것이 아쉽다. 당일치기는 너무 아쉽지만 그래서 그 자체로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조만간 또 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KTX 타고 홀랑 다녀온 당일 치기 강릉여행. 무척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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