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60│2022.04.01
친구 H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다정함'이다. 아니다. '다정함'이란 단어가 만약 사람이 된다면 친구 H가 될 것이다. 어쨌든 H는 참 다정하다. 따뜻하고 살갑고, 정이 많다. 대학교 휴학 시절 한창 헤매고 있을 때 광고 교육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앞뒤 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그 뒤로 함께 광고 관련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인턴을 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함께 했다. 친구는 우리 중 가장 빨리 결혼했고, 당시 유일하게 남자 친구가 있던 내가 부케를 받았다. 결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친구의 부케라면 받고 싶었다. 그리고 이년 뒤, 친구 결혼식에 함께 같던 당시 남자 친구는 내 남편이 되었다.
나의 결혼 뒤 자연스럽게 우리는 넷이 함께 보기 시작했다. H와 H의 남편. 나와 내 남편. 우리는 모두 각각의 무리(?)에서 일찍 결혼을 한 편이었다. 거기에서 오는 가끔의 불편함, 어색함들이 있었다.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다. 아마 나의 달라진 태도에 불편했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테다.) 그런데 넷이 모이면 그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가정을,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한 나와 H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우리 넷은 자주 봤다. 날이 따뜻할 땐 캠핑을 가고, 날이 더워지면 강원도로 래프팅을 갔다. 보고 싶을 땐 대림에서, 한남동에서, 동대문에서, 갑자기 만났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망원우동에서 저녁을 먹을까 남편과 상의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친구다. 오늘 망원우동 가려고 하는데 혹시 저녁에 뭐하냐고. 시간 괜찮으면 잠깐 보자고. 통했다.
망원우동에서 만나 우동을 맛있게 먹고 헤어지려는데 아쉽다. 급하게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우리 집이 아주 아주 아주 더럽지만 혹시 우리 집으로 올래?"
"좋아. 더러운 것 좋아."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오기 전에 조금 치워두고 올걸. 생각을 못했다. 꼭 이렇다. 거실에 흩뿌려둔 빨래 정리를 위해 딱 10분만 달라고 했다. 집에 먼저 도착한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눈앞의 모든 짐을 구석에 숨겼다. 늦은 시간이지만 커피를 내리고 초콜릿 케이크를 꺼냈다. 때마침 친구가 벨을 누른다. 우리는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동안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었는데 오늘은 어느새 (아직 없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아이가 다정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친구의 아이는 분명 친구를 닮아 다정할 것이다.
4월 1일 저녁에 만났는데 한창 수다를 떨다 보니 4월 2일이 되었다.
친구가 갑자기 큰 쇼핑백을 건넨다. 우리를 위한 그림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를 생각하며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주 다정한 편지와 함께 아주 멋진 그림을 선물 받았다.
"자넷 리커스의 그림을 보자마자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가 마치 너희 부부를 닮은 듯했어. 그래서 그려서 꼭 선물해주고 싶었어...(중략)... 그리는 동안 서툴지만 예쁜 마음 많이 담아 선물해...(후략)"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과 우리 부부가 닮았다니. 큰 영광이다. 하지만 사실 저 그림은 친구를 더 닮았다. 안정적이고 따뜻하다. 그림 속 모든 것이 균형 있게 어울리고 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이 길었다. 친구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친해졌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우리는 현재 같은 시간을 함께 살고 있다.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 같은 선물이다. 친구가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