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정답 없는 시험지를 받았다 (3)

by 작논


정답 없는 자리에 서서(3)


정답이 없는 자리에 서자,

이상하게도 한 가지 감각만은 또렷해졌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흐릿해졌지만

대신 아주 미세한 내 마음의 움직임이 전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정답들’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내 신호를 내가 가장 먼저 묵살해 온 건 아닐까.

마치 세상엔 바깥의 안내 방송만 있는 줄 알고

그 방향만 따라가던 사람처럼.


클래식을 배우며

나는 점점 ‘정제된 나’에 익숙해져 갔다.

흠 없는 소리와 매끄러운 해석은 어느새 목표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었고,

틀리지 않는 연주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숨을 조여왔다.

겉은 반듯하지만, 안쪽에서는 호흡이 점점 얇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럴수록, 있는 그대로의 나는

조용히 뒤로 밀려나 있었다.

아마 그게 더 안전하다고, 오랫동안 믿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분명 있었지만

그 마음은 늘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뤄졌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검열하는 일이 너무 자연

스러워졌고,

애써 숨겨 두었던 내 감각들은

아무말도 못한 채, 조용히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실수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던 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예술이 맞는지조차 종종 헷갈렸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는 지금도 선뜻 답을 붙이지 못한다.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일도

여전히 조금은 낯설다.

예술가라는 말 앞에서는

아직도 어쩐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도망치듯

피하지는 않게 된 걸 보면

내 안에서 작게나마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20세기 음악사 속 여러 사조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조금씩 새로운 결들을 보기 시작했다.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날것의 감정을 밀어붙이는 사람,

기존의 질서를 끝까지 붙드는 사람.

모두 자기만의 이유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수많은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이라는 걸

그때 처음 또렷하게 느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건네보게 되었다.

아직은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그 말이 내 안에서 작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는

그 심연 속에 잠겨 있던 감각들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바라보고 싶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라도

살며시 붙잡아보는 쪽을 선택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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