忘れないこと 잊지 않는 것

대신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by 작논



이번 일본 여행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SNS를 뜨겁게 달구는 맛집이나 핫플레이스 대신, 내 마음의 발길은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닿은 곳은 나카메구로라는 동네였다.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동네의 공기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대신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람이 춥다며 엄마가 태워주는 자전거 뒤에 찰싹 붙은 아이, 제 고집대로 계단을 오르고 싶어 칭얼대는 유치원생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평온한 일상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그 동네의 분위기를 가만히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작은 디저트 가게를 마주쳤다. 남자친구가 몽블랑이 먹고 싶다고 계속 노래를 불러서였을까, 가게 안 쇼케이스에는 몽블랑이 놓여 있었다.


쇼케이스 안에는 정갈하게 빚어진 케이크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딱 하나 남은 몽블랑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주문을 건넸다. 주인아저씨는 맛보다 먼저 ‘시간’을 물으셨다.


“가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3시간 정도 걸립니다.”

「あ…それはちょっと無理ですね。」

(아…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네요.)


단호한 거절이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가장 완벽한 상태로 전해지길 바라는 장인의 마음이었을까. “괜찮아요.”라는 나의 대답에도 아저씨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결국 “앞 공원에서 바로 먹을게요.”라는 선의의 거짓말로 아저씨를 안심시키고 가게를 나섰다. 평소 디저트 맛에 예민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 꼿꼿한 자부심을 마주하고 나니 왠지 이 몽블랑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동시에 아저씨의 기대에 부응해 빨리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몽블랑 상자를 소중히 든 채 걷다 보니 나카메구로 미술관 앞의 굳게 잠긴 전시장 하나가 발길을 붙잡았다. 유리창 너머 불이 켜진 전시장 안에는 작가의 내면을 투영한 듯한 그림들이 놓여 있었다. 문 앞에 놓인 안내문을 번역기에 돌려 읽어 내려갔다.


‘내면의 흔들리는 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뒤섞인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응시하는 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


그 문장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낯선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요즘 부쩍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생각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닫힌 문 너머에서 만난 그 작품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도 모르게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갔다. 진짜에 대한 갈증이 나를 이름 모를 작가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화면 속 작품들을 하나하나 넘겨 보던 중, 한 게시물 앞에서 결국 시선이 멈췄다.


[忘れないこと, 잊지 않는 것]


정갈하게 적힌 그 짧은 문장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런 장면에서는 흔히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겠지만, 나 역시 그랬다. 북적이는 카페 한복판에서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삼켰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일까.


그 순간에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그날 나카메구로에서 내가 만난 것은, 어떤 작품이 아니라 한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忘れないこと.


Artwork : フカミエリ (@fukamie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