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라는 쉼,

갭이어가 뭘까?

by SseuN 쓴

갭이어라는 단어를 처음 본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의미와 현재 사회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자 단어를 검색해 봤다.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운의 편지처럼 '영국에서 시작되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영미권 문화 중에 하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 갭이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고, 갭이어 시간에 여행과 봉사 혹은 창업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갭이어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며 스스로가 계획한 삶의 시간표를 따라 살아보는 시간을 의미한다. 꼭 단순히 YEAR(이어)라는 단어 때문에 1년 유예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꼭 한 해를 쉬는 것에서 그치지 많고, 고등교육을 배워야 하는 필요성이 생기거나 학업을 시작한 준비가 된 상태가 되었을 때 갭이어를 마치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적으로 갭이어를 권장하고는 있지만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과 같이 의무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갭이어를 경험하고 있지는 않다. 하버드, MIT, 프린스턴, 동경대 등 세계 주요 대학에서 시행하고는 있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학교에서 권장하는 기본 프로그램은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있지는 않지만 사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에서 갭이어를 컨설팅하는 곳이 있기는 했다.


내 인생에서의 그때 시간을 '쉼'이라 할지 '갭이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 것이 대학교 2학년의 시기였다. 앞서 이야기했듯 편안했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호주로 떠난 나의 쉼은 대학교 생활을 조금 더 밀도 높게 보낼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 휴학을 하고 돌아온 학교는 2년이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낯설었다. 심지어 전공 수업의 양이 많아지면서 해야 할 공부의 양이 많아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때의 쉼이 있었기에 더 열심을 다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갭이어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 여행이라는 항목을 선택했을까?


아마 그 당시 여행을 선택했던 이유는 팍팍한 현실의 일상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난 혹은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 눌려있던 삶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행이 제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거기에 이유 하나를 덧붙인다면 이런 이유도 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특기나 혹은 잘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살며 딱히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는 욕심도 없는 무색의 인간이다. 만약 무엇을 한다고 해도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스타일이라 새로운 시작은 내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쓸 수 있게 나를 모르는 사람만 있는 여행이 좋을 것 같았다. 다녀와서 생각해 봐도 그때 다녀왔던 호주는 내가 선택한 최고의 장소였다고 자부한다.


최고의 장소라고 꼽았지만 호주에서의 생활도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았다. 호주의 자연을 즐기며 대도시나 시골도시 할 것 없이 여행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역시나 그럴 수도 없었다. 다시금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은 할 만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1차 산업의 노동은 내 몸이 고된 대신 정신은 맑았다. 우리나라 시골 도시 하나의 면적만큼의 농장에서 수 십 명의 일꾼들이 일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그런 곳에서 맡은 바 정해진 일을 했다.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그래서 최고의 나라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움을 경험하기 좋았고, 다양한 문화권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 사람이 많이 없었다는 것도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 몇 없던 한국 사람은 고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에게 다양한 지역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나처럼 휴학을 하고 온 사람도 있고, 유학을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통해 많이 듣고 배웠다. 새로운 형태의 환경 지식을 얻었고 삶의 경험을 주워 담았다. 좋은 거 나쁜 거 편견 없이 들었고, 힘든 일 쉬운 일 가림 없이 일했다. 나를 아는 사람 없는 공간에서의 삶을 살아본 귀중한 시간이었다.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다 보면, 현실에 지침이 없을 수가 없다. 일주일을 산다는 것, 한 달 혹은 일 년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에너지로는 버티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여행을 한다고 해서 그 지침이 없어지거나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형화되어 버린 일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 빠져든다는 것은 우리의 뇌를 속이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환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새로운 자극은 고스란히 나의 뇌를 깨워 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엔도르핀과 도파민은 내가 심심치 않게 솟아날 것이다.


물론 내가 현실을 떠난다고 해서 겪고 있었던 문제들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게임을 자동모드로 전환하고, 나만 빠져나와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즐기고 나면 깔끔하게 해결되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단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만들 수 있다. 내가 겪는 현실이 어쩌면 크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관점이 생긴다. 내가 이 일을 지금 하지 않아도 큰일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내가 속한 곳의 상황보다 더 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외국이면 평소 도움을 청했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언어적인 한계로 인해 정보를 온전히 전 할 수 없다는 것이 어렵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쉽게 접 할 수 없는 상황은 나의 남은 삶을 사는 동안 전혀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무수히 많은 기억으로 남은 사건들은 무채색으로 일갈되었던 나의 색을 서서히 찾아가는 느낌을 만들어 준다.


나에게 한 해의 갭이어는 대학생활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도록 도움이 되었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경험담을 저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누구나 겪는 중요한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단순히 경제적인 나음을 위해서만 살았다면 결코 경험을 할 수 없을 한 해였다. 두 번 세 번의 기회가 있다면 전혀 고민하지 않고 또 한 번의 '쉼'을 선택할 것이다.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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