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텅 빈 무대

by SseuN 쓴

뭐랄까?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무미건조하다. 아닌가? 조금 텁텁하다. 아님 밍밍하다.

이런 표현이 맞을까?

공연이 끝나고 처음의 시간은 조금 바쁘게 해야 할 일은 마무리했다. 브런치에 밀린 글도 쓰고, 공연했던 사진들을 정리해서 외장하드에 옮겨 놓기도 했다.


연기가 끝나고 작은 개인적인 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다시 무대를 섰던 극장에 서게 되었다. 다시 극장엘 가게 된 건 연출을 도와 공연하고 남은 무대 정리와 소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빈 극장에서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를 보고 있으니 마음 한 편의 공허함이 느껴진다. 우리가 서있던 무대는 이제 빈 무대가 되어버렸고, 다섯 번의 공연과 한 번의 리허설 내내 시끌벅적하고 꽉 들어찼던 객석은 이제 아무도 없이 무대 해체장비들만 가득했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달려왔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마음을 잘 정리하는 일이다. 10주 정도의 시간, 연출을 섭외해야 하는 섭외비, 연습실 빌리는 대여비. 극장 예약을 해야 하는 대관비, 의상, 무대 소품비용까지 적지 않은 비용,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을 끝마쳤다. 꽤 긴 시간을 들였다. 적지 않은 수업료를 내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동료들에게 더 큰 마음을 아낌없이 들였다는 것이다.


노력과 돈 그리고 시간 쓰는 일을 마치게 되면 마음은 텅 빈 곳간처럼 공허함이 몰려온다. 허무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감정인데, 모든 열정을 쏟아내고 남은 게 없을 때 느껴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밀려오는 공허함을 위험하다 생각할 때도 있었다. 감정에 서툴렀을 땐, 공허함이 외로움인 줄 알고 평소에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러 나갔다. 그렇게 분주함에도 전혀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공허함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거나 밀린 드라마를 본다. 자투리 시간은 책을 들었고, 자리를 잡고 글을 쓰는 방법으로 공허함을 이겨냈다. 공연으로 소란했던 극장의 무대가 텅 비어 버렸을 때. 다른 공연이 준비되기 전까지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나도 휴식기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휴식엔 휴식에 맞는 일을 찾는다. 물론 찾은 일이 책 읽기와 글을 쓰는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지겹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기처럼 가볍게 써 내려가는 글 속에서 지난 공연에 있었던 일들이 다시금 되살아 나는 것이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의 일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수많은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공허함을 조금씩 채워 나가는 것이다.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켰다. 워드프로세서 특유의 하얀 바탕에 커서만 깜박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도도독 소리와 함께 까만 글씨들이 마술사의 주문처럼 만들어져 간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무대는 비워주어야 한다. 큰 무대 작은 무대 할 것 없이 공연이 끝나고 일정이 마무리되면 극장은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무대를 반드시 비워주어야 한다. 뮤지컬 '영웅'을 공연했던 '계명대학교 아트센터'에서 오리지널 '캣츠'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텅 빈 무대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영웅'에 무대에서 고양이들이 공연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내 머릿속 기억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기억을 뒤죽박죽 섞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세상이 된다. 그러지 않기 위해 기억을 기록한다.


텅 비어버린 게 내 마음뿐만 아니다. 공허한 마음과 함께 텅 비어버린 '일정'도 있다. 연습을 하기 위해 저녁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두었으나 이제 남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다음에 들어올 새로운 것이 쉽게 올 수 있도록 때론 비워두는 시간도 필요하다.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마음을 비워두고 열정을 식혀두고 일정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연으로 비워진 시간을 글쓰기와 책 읽기로 채워 넣는 중이다. 새로움이 잘 안 들어오려고 하는 중이라 씨름하지만 곧 습관이 되면 글쓰기에 열정을 쏟으리라 기대하며, 무대 위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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