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동화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면, 아마도 이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현실 속에서 꿈처럼 존재하는 작은 도시.
이 여행은 내 일본 일정 중에서도 가장 기대되었던 순간이었다.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기다리고 있던 곳, 바로 시라카와고였다.
두 번째로 도착한 이 작은 도시는, 내가 일본 여행 중에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을 품고 있었다. 이동하는 길에서도 끊임없이 내리던 눈은, 마치 우리의 도착을 알았다는 듯 멈추었고, 하얗게 쌓인 눈이 지붕 위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이곳을 처음 여행하기로 했을 때, 나는 이 도시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단 하나, 이름뿐. 하지만 여행을 결심한 후, 이 작은 도시의 감성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자료를 찾아 헤맸다. 몇 권의 책과 몇 시간의 인터넷 검색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이 겨울 여행지로서 더욱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라카와고의 설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넘어, 흔히 볼 수 없는 전통 가옥과 어우러져 동화 속 마을처럼 펼쳐졌다.
특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들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일부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숙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름에는 더위가 심하고, 겨울에는 폭설이 내리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지붕을 높게 짓고, 경사면을 가파르게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 난쟁이들의 집 같았다.
책이나 영상으로 볼 때는 단순히 뾰족한 지붕을 가진 다소 특이한 집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마주했을 때는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의 풍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마치 동화 속 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낯설고도 신비로운 풍경이라 몇 번이고 다시 보고 또 봐야만 했다.
가이드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전망대를 추천했다. 분지 형태의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의 모습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 더욱 특별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다카야마에서 이동하는 동안 눈이 쉴 새 없이 내렸고, 버스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결국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전망대가 문을 닫은 후였다. 전망대라고 해봐야 높은 곳의 작은 건물 하나와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전부였겠지만, 그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풍경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망대를 향해 가는 길목에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을 마주쳤고, 우리처럼 늦게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눈 덮인 도로 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난간을 붙잡고 올라갔다. 점점 높아지는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빛날 여행의 한 장면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조금 감성을 깨자면, 사실 이러한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강원도나 눈이 많이 오는 시기의 전라도의 모습을 비교하자면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소도시+ 여행+ 친구들'이라는 단어가 합쳐지면서 이곳이 마치 동화 속 나라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만의 착각이 아닌 게 현지 일본에서도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특별한 가옥 형태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인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선물을 그냥 주면 될 텐데, 조금 힘들게 전해받았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아주 많이 미끄러웠다. 올라가는 길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서는 올라가기가 버거울 정도로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지난날 혹은 얼마 전까지 내렸던 눈이 쌓여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꾸 뒤로 잡아당겼다. 물론 그런 어려움을 뚫고서라도 풍경을 보겠다는 의지는 결국 우리를 전망대까지 올려놓았다. 가는 동안 나무에 가려서 살짝씩 보이던 풍경은 힘겹게 전망대에 올라서자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마치 에베레스트를 완등한 사람들처럼 환호 박수를 치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곳에서 사진 셔터 소리가 들려왔고, 미리 온 사람들 사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명당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줄은 길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전혀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선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윗옷을 입지 않고 끈이 달린 얇은 옷으로 주요 부위를 가린 채 만세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들. 차가운 난간을 맨손으로 잡고 그곳에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친구끼리 와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 아이들을 더 높은 곳까지 보여주겠다고 목마를 태운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친구들은 좋은 풍경을 앞에 두고 아쉬운지 개인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 내가 주인공인지, 옆사람이 가운데 나오는지도 모른 채 후다닥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 친구가 들어가고, 또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친구가 들어가고 사진을 찍었다. 몇 개의 장소를 옮겨가며 반복적으로 사진을 찍고 친구가 서고 다시 사진을 찍고, 다시 친구가 들어가고 사진을 찍고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찍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이곳에 풍경을 사진으로 아무리 담아 봐야 내가 사진첩을 열어 이 사진을 보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 들면서, 셔터만 눌렀을 게 아니라 한순간이라도 더 경치를 눈에 담고 머릿속에 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여행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늘 그렇게 후회를 한다. 좋은 것을 보면 사진기를 밀어 넣을 생각만 하고, 내 눈으로 그 경치를 담아낼 생각은 나중에서야 떠오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사진에 담긴 한다.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글로 남기기엔 사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본모습을 설명하고 싶다고 글을 쓰지만, 부족한 어휘력이나 단어들이 그때 그 모습을 온전하게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은 여러 단어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해가 구름에 가렸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도시는 낮과 밤이 번갈아 가며 바뀌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분명 오후 다섯 시쯤이었지만, 어두운 하늘이 마치 저녁 일곱 시처럼 보였다. 우리는 전망대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보냈다고 느낄 즈음, 내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빠져나오는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고,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이 서로 열을 맞추어 함께 움직였다.
길이 그렇게 험난한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깔린 눈이 가장 큰 위험이었다. 그 눈을 잘못 밟으면 쉽게 미끄러질 수 있었고, 심지어 엉덩방아를 찍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난간을 잡고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내려오긴 했지만, 오르던 길과 내려오는 길을 합치면 꽤 많은 시간을 전망대에서 보냈다.
도로는 간신히 차만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만 눈을 치워둔 상태라 오히려 인도 쪽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눈을 밟지 않으려면 도로로 나와 걸어야만 했는데, 가끔 차가 지나가는 도로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도로에서 보는 모습도 전망대에서 보는 만큼 좋았다.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생각보다 높고 가파른 지붕 모양에 놀랐다.
풍경에 넋이 나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체온이 많이 떨어져 버렸다. 따뜻한 게 마시고 싶어 내려와서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기념품 가게였다. 아무래도 기념품 파는 곳은 상품만 놓고 팔지는 않으니 기념품도 살 겸 따뜻한 거라도 마실 겸 가게 앉으로 들어갔다. 일본 문화 특유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우릴 맞아 주셨다. 가게는 역시 이곳의 전통 방식 그대로를 유지한 모습의 건물이었다. 문을 오른쪽으로 밀어내며 들어간 가게의 모습은 통나무 집에 들어온 것처럼 나무 결이 보이는 벽과 따뜻한 온도의 공기가 우릴 맞이한다. 이곳의 시간으론 다소 늦은 시간인 듯 많은 물건은 빠져 있고, 가게 안에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아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도 사실 버스 탑승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서둘러야 할 정도였기 때문에 간단히 둘러보며 따뜻한 음료를 주문했다. 자석이나 엽서는 그 지역을 지나면 다시 돌아와 살 수 없고, 구할 수 없다는 점에 보이는 대로 구입을 해서 가방에 챙겨 놓아야 했다. 지역 특색이 큰 일본여행의 특성상 그 지역에서 본 기념품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몇 개의 자석이 흰색종이에 포장되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장갑을 끼고 벗었던 모자를 다시 머리에 눌러쓰고 나면 나갈 준비는 끝이다. 다행히 이곳을 도착할 때부터 눈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눈이 쌓인 도시의 풍경은 추운 느낌을 만들었다. 주머니에 장갑을 낀 손을 넣고 다들 기다리고 있을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우리를 마을 입구에 내려주면서 버스는 우리가 집결해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마을 입구에서 전망대가 가깝기 때문에 쉽게 전망대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탈 수 있는 주차장은 마을을 가로질러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향하는 곳이라 길을 잃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찾을 수 있다. 버스를 타는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주차장 바로 코앞에 두고 건너가야만 하는 다리는 눈이 녹아 얼음이 되며 길 위를 덮은 상태였다. 전망대 보다 훨씬 긴장감 넘치는 길은 사람들이 한 줄로 한 걸음씩 옮기며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야만 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니 마주 오는 사람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은 편했다.
굽이굽이 숨겨진 주차장에 도착한 우린 그제애 긴장이 풀렸는지 화장실부터 찾았고, 긴 거리를 달려갈 준비를 무사히 마쳤다. 빙판을 건너온 우린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져 따로 도착하게 되었는데, 어차피 한 곳에서 모여야 했기 때문에 도착하는 시간만 달랐을 뿐 한자리에 모였다.
다시 버스는 우리가 왔던 나고야를 향했다. 눈 덮인 마을을 벗어나 버스는 고속도로 위로 올랐고, 수많은 버스들이 마을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상점에 들렀다가 나온 시간이 버스 집결시간에 근접했기 때문에 우리가 나 온 다음 가게 분을 닫고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문을 닫은 가게들도 많이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고, 집집마다 불이 들어왔다. 그 모습만 보고 버스 위로 올랐는데,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동안 마을을 반바퀴 정도 돌아 나오게 되었는데, 오르막 길이 위에서 불 켜진 마을을 보는 모습이 전망대에서 보는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만약 또 한 번의 시라카와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하루를 여기서 보내면서 이곳의 24시간을 눈으로 담고 싶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작은 마을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의 버스는 마을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