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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커피

by SseuN 쓴

다녀온 투어에 여파였을까 아니면 어제 마셨던 따뜻한 사케 여운이었을까 아침에 캡슐에서 눈을 뜬 나는 마치 그곳이 나를 가둬놓은 이집트 피라미드 '왕들의 관'과 같았다. 관짝 같은 캡슐 숙소에서 눈을 뜨고 샤워장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맞으니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일본 첫 숙소는 캡슐 호텔이다. 우리가 도착한 날의 일본은 일본 내에서도 사람들의 여행이 잦은 연말이었고, 느지막이 여행을 결정한 우리는 마땅한 숙소 찾기가 어려워 캡슐 호텔을 첫 숙소로 정한 것이었다. 말이 호텔이지 방식은 기숙사나 호스텔 또는 게스트 하우스 같은 형태였다. 그나마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건 안락한 침구류와 준비된 어메니티를 보면 조금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숙소는 한 건물을 통으로 다 쓰는데, 특이한 것은 일층이 커피 전문점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알아주는 커피 전문점이다.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가득한 1층은 마치 근방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가게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호텔 체크인 하려는 사람과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어울려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인 셈이다.


첫날엔 뙤나 낯선 풍경도 이제 어느덧 적응을 했다. 호텔로비의 카페를 연상시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말이다. 늦은 저녁에 들어오고 아침 일찍 나가다 보니 이곳에서 커피 마실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 아침이 되어서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1. GLITCH COFFEE & ROASTERS NAGOYA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처음 보는 브랜드 커피 전문점인데. 도쿄에서도 유명 한 곳으로 나고야를 포함해 총 네 곳의 점포를 운영하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제법 알려진 곳이란다. 스페셜 티를 판매하는 곳으로 원하는 맛에 따라 원두를 고를 수 있다. 한 잔의 커피 속에는 다양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이 이 가게 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숙소 일층에 체크인 장수가 카페이고 그 카페가 제법 유명한 커피를 다룬다면 한잔쯤 마셔 볼 만한 경험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광수는 제일 먼저 준비를 끝내고 일층에 위치한 가게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한 잔의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경험을 따지자면 해 볼만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광수의 입장에선 어쩌면 반드시 마셔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부지런한 광수보다 조금 늦게 내려왔다. 홀로 창가를 바라보던 광수의 옆자리에 자리하고 내쳐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원두 특유의 맛과 향이 입안을 맴돌아 목을 타고 내려가고 콧구멍을 통해 잔향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슬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시간이 되고 제일 느지막이 준비하고 내려온 편과 함께 짐을 맡겨두고 키를 반납하고선 밖으로 나왔다.


잠시였지만 조용한 커피 집에서 마시는 스페셜 티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아침은 나고야의 좋은 기억이 되었다.


2. 스타벅스 IN 노리타케의 숲 옆 이온 몰


일본에서 유명한 마트 중 하나는 바로 '이온 몰' 일 것이다. 모든 도시의 지점을 가지고 있고, 많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이온 몰 건물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원래 노리타케의 숲을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오게 되었고 숙소에서 아침에 다녀오기 좋은 공원이라 쉽게 찾아올 수 있었다.


아침은 어제 마신 사케의 여파로 컵라면을 간단하게 해장을 했는데, 집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라면이었다. 간단하게 요깃거리로 해장과 아침을 동시에 해결한 우리는 이온 몰에 문이 여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노리타케의 숲을 산책했다. 12월의 나고야 공원은 볕은 따듯하고 그늘은 차가운 정도의 걷기 좋은 날씨였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을 한참이나 걸었더니 어느새 공원 끝에 있는 이온 몰에 다 달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바람과 함께 좋은 향이 스쳤다. 아마도 오늘은 내 코가 호강을 하는 날인가 싶다. 아침엔 정신 차릴틈도 없이 스페셜 원두로 호강을 시키더니 라면 향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숲 속 맑은 공기로 정화를 시켜 주더니 건물에 들어서니 이온 몰이가 진 특유의 나쁘지 않은 향기가 폐로 들어온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건물 안에 입점한 상점들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특이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공간엔 선뜻 구매할 수는 없지만 집에 하나쯤 있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물건들이 즐비했다. 욕심이 없던 사람들도 손에 하나씩은 구입해서 들고 갈 판이다. 집을 꾸미는 것에 재능이 없는 나는 그저 이대로만 들고 가면 어디서 감각 있다는 이야길 자주 들을 것 같은 모습의 소품을 이 즐비했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겠지만 여행을 오니 새로이 배우는 게 있어 좋다.


유니클로 매장이며 무인양품 매장을 먼발치에서만 구경했고, 일본에서만 판매하는 재품 매장은 꼭 한 번씩 들어가 보고 나왔다. 쇼핑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자꾸 보이니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들어가 본 가게들이 점점 드러나면서 체력은 반비례적으로 낮아졌다. 아침에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일 층에 있던 스타벅스 매장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익숙한 로고에 끌리는 무언가 있기 마련. 아침에 커피를 마셨지만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기 위해 매장으로 들어갔다. 커피와 함께 곁들여 먹을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선 계산하려는데, 아무렇지 않게 한국말로 해버렸다.


-포크는 세 개 주세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나서야 뭔가 잘 못 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보는데, 종업원분이 포크를 세 개 준비하면서 웃으셨다. 했던 이야기 중에 모르는 단어가 없었던 건지 뉘앙스가 그랬던 건지 잘 알아들으시곤 바로 내어주셨다.


스타벅스는 리져브 매장이 아니고선 스페셜 원두를 맛보기 어렵다. 그래도 한결같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철학을 바탕으로 외국에서도 편안하게 이용하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매장이용은 어떤 것 보다 장점이다.


달달함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나선 다시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숙소로 돌아왔다. 그냥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밥 먹고 산책에 커피 또 한잔 다시 걸어 다니는 하루는 한국에서와 같이 일상이다. 한 순간 여행이 일상이 되는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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