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생각보다 많이 우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나의 어머니 (아내)를 잃었을 때.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아버진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좋아한다.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어떤 사람보다 아버지는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인성을 가진 분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 장례식은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했던 귀여운 우리 막내삼촌이었다. 삼촌은 곰을 닮았다. 퉁퉁한 몸에 덥수룩한 털을 가진 삼촌은 우리 집안에서 가장 활발한 성격을 가졌다.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본인이 가진 밝음을 전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는 모습에서 다들 좋아했던 것 같다.
조화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들어왔다. 첫날, 비통한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간 장례식장은 나보다 먼저 온 조화가 반겨줄 정도로 인간관계는 끝내주는 삼촌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문상을 마치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제일 먼저 소식을 듣고 근처에 살던 고모를 모시고 제일 먼저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직후 만난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한 상태셨다.
생각해 보면 보든 상갓집에서 아버지는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조차 아버지는 취해 있었다. 원래 술을 좋아하셔서 아버지는 사람들이 문상 올 때마다 술을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저녁시간에 도착해서 그랬는지 나와 내 동생은 밥을 내어주셨다. 동생은 아버지와 밥을 먹기 위해 아버지를 모시러 갔고, 둘이 걸어 들어오는데 아버지 손에는 소주가 들려있었다.
하얗게 테이블 종이 깔려있는 식탁에 밥과 반찬이 차려지고 수저가 수도 없이 오갈 때쯤 동생이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걸 말렸다. 그러자 아버진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아니면 어떻게 버티냐."
난 밥을 먹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아버지의 웃음 섞인 말이 슬펐고, 이미 너무 많이 울어서 퉁퉁해진 아버지의 눈이 슬펐다.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소주라서 슬펐고, 아버지 가족의 많은 죽음이 슬펐다.
당신의 젊은 나이에 많은 이별을 겪었다. 슬픔이 감당할 수 없던 나이서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이 다가왔다.
부모를 잃는다는 슬픔, 본인의 배우자를 잃은 슬픔, 자식같이 업어 키운 막냇동생의 이별은 힘 없이 늙어버린 아버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슬픔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멋쩍은 웃음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소주병을 기울이는 모습은 순간을 더 먹먹하게 만들어 버렸다.
작은 고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치고, 나와 내 동생은 밥을 국에 말아 퍼 마셨다.
살아온 세월에 비해 턱 없이 짧은 이별의 시간은 결코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다.
아버지의 슬픔을 거두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