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라는 개 떡 같은 변명

타이밍 : 1. 동작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by SseuN 쓴

여느 날과 다름없는 7월 첫 주의 일요일 아침.

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했다. 일찍 일어난 탓에 귀차니즘만 더해졌고, 나른하고 느슨찬 몸뚱이를 쭈욱 늘려 기지개를 켜도 쉽게 관절이 조율되지 않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온 몸을 감싸는 듯한 무색무취는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튀지 않게 보호색을 펼치는 듯하다. 다행히도 이번 일요일은 지난주 일요일처럼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문자를 받기 전까지 말이다.


"000 부고"


'위이잉' 하고 진동을 타고 온 알람의 첫 글자는 내가 잘 아닌 후배의 이름이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부고 소식이라도 전하는가 싶어 초점 잃은 눈동자를 화면에 가져다 댄다. 어두움에 적응하지 못했던 흐릿한 눈동자가 점점 화면에 밝혀진 검은 글자에 적응되어가면서 내용이 뇌에 진하게 박혀 들어간다.


그 문자의 당사자는 그 후배의 가족이 아니었고, 바로 그 친구 본인의 부고 소식이었다. 사실, 믿을 수 없는 뉴스였다. 외부 URL이 없는 걸로 봐서 보이스피싱이 아닌 건 확실한데, 그 내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건 사실이다.


대학교 시절부터였을까? 아니다 아마 그전부터 그는 축구를 해 왔을 것이다. 그날도 어떤 날처럼 아침에 일어나 축구를 했었고, 축구를 신나게 하고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했다. 제수씨와 이런저런 이야길 했을 것이고, 내일이면 아이들이 새벽같이 깨우러 들어와 시끌한 아침을 맞이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은 생각보다 가느다란 선이었다.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일요일 아침에 가야 갈 놀이터와 아이들 먹을 아침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타이밍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조문을 온 선, 후배들도 타이밍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단 말과 타이밍을 놓쳤다는 위로를 해댄다. 그 무게 없는 말들은 축 처진 어깨를 감정 없이 툭치고 지나간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정의 순간이었다. 쿠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이었다. 꽤나 긴 여행이었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기록하는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최대한 노력했고, 쿠바에 들어오기 전날까지도 기록은 빼먹지 않았다. (쿠바는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아 잠시 기록은 다이어리에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에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표에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마치 100미터 달리기의 결승점이 눈앞에 보여 속도를 줄여버리는 아마추어 같이 느슨해졌다.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자 급속도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를 버틴 것 같다. 내가 의지 하던 형이 먼저 쿠바에서 나가면서 더 힘든 것도 있었다.


내가 힘이 들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오히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뭐가 필요한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 만한 시간이 없었다. 어색하기도 했었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이었다. 아침부터 숙소에 있는 친구들이 소란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까사(숙소)에는 유난히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고, 다들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에 비해 느릿한 아침이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할 엽서 몇 장을 친구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나에게 보내기도 하며 오전을 보냈다.


점심시간 즈음이었을까?

쿠바 가게 모든 곳에서 동시 뉴스로 채널이 바뀌면서 비행기 폭발사고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항공 사고는 대부분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뉴스는 실시간으로 사망자와 비행기 모습을 중계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활주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비행기가 뜰지 아니면 결항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타고 나 갈 비행기도 안전에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 타이밍 참 개 떡 같네 "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뱉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이 선택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타이밍이 좋거나 좋지 않을 때가 있을 뿐이다.


-후배에게 짧은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