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의 공기 괴물
한 학년에 4반-5반이 있는 작은 동네의 운동회는 거의 마을에서 제일 시끌벅적한 행사 중 하나였다. 가을 운동회라고 해서 봄에는 소풍으로 가을은 운동회가 가장 큰 행사인 경우가 많았다. 놀거리가 부족했고, 즐길거리도 부족했던 시절이라 초등학교 행사 하나가 우리 집 전체의 행사가 되어 버린다.
저 학년 일 때에는 친척 중에 유일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터라 이모와 외삼촌이 응원을 와주기도 했었다. 모래 가득한 운동장에 플라스틱 실로 엮은 돗자리 하나 깔고 앉아 있으면, 온 가족이 앉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오신 이모부가 양념통닭을 들고 오신 날은 하얀 실내화를 꺾어 신고 달려가 통닭을 받아 들고 신나서 자리에 돌아온다.
자리가 같은 학년 같은 반 학생들이 모여 앉을 수 있도록 정해져 있어서 같은 반, 좋아하던 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게 된 날이 바로 운동회였다.
지금은 팀을 나누지 않고 반별로 경기를 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땐 학년도 남녀도 구별 없이 두 팀이 되어서 운동회를 했었다. 청군이 되기도 백군이 되기도 하는데 친하게 지내던 동네 누나, 형들이었지만 다들 승부욕에 타올라 열심을 내는 보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승부욕이 타오르게 되었다.
똥꼬가 바짝 탄다라는 표현이 맞을까?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으면 한껏 쪼인다.
"준비" 하는 소리 뒤에 들려올 "탕"이라는 소리는 출발선에 서있으면 도무지 한참을 기다려도 울리지가 않는다.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라 생각이 들어 방심하고 있을 때쯤, 총소리가 울리고, 떠 밀려 나가듯 결승으로 달려간다.
승부욕도 승부욕이지만 일등을 하고 나서 받을 도장이 더 중요한 시기가 있었다. 일등이라는 선명한 글자의 도장은 며칠이고 훈장처럼 지워지지 않고 손목에 흐릿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땐 그게 중요했었으니까.
달리기 말고도 박 터트리기나 큰 공 굴리기, 2인 3각, 이어달리기 같은 다양한 종목이 있었다. 목이 터져라
'청군!! 백군!!'을 외치는 소리에 흥분된 우리는 시원한 가을 날씨에도 체육복이 땀으로 적셔질 만큼 뛰어다녔다.
한참을 뛰고 나서 먹는 김밥과 치킨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이모부가 사 오신 치킨과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주신 김밥은 역시 '꿀 맛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운동회는 나의 인생에 가장 즐거운 시간 중에 하나였고, 우리 가족의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였다.
이집트 다합에서였다. 여행이 시작되고 아프리카라고 하는 미지의 땅을 여행하고 나서였다. 충분히 고된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이집트의 다합에서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길게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구했고, 같이 지낼 룸 메이트도 잘 만났다.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과 같은 집에 살게 되었고, 다합에서의 적응을 시작했다. 날씨는 덥지만 사막 특유의 건조함과 바닷가의 습도가 적절했고, 다행스럽게 집에는 에어컨이 있어서 바깥 기온의 영향을 심하게 받지 않았다.
다합이라는 도시는 조금 특별한 곳이다.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다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바다 스포츠 중에서도 특별히 스쿠버 다이빙과 프리다이빙, 그리고 낚시와 웨이크보드를 탈 수 있는 곳이 바로 다합이다.
다합에서의 시작은 스쿠버 다이빙으로 선택했다. 같이 살고 있는 룸메이트는 나처럼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처음인 나를 위해 좋은 가게도 소개를 시켜줬다. 호주에 있었을 때 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했었는데, 시간이 오래된 일이라 적응하는데 조금의 시간이 더 들어갔고, 보수교육 1회도 해야만 했다.
스쿠버 자격증 레벨의 상급 도전을 위해 거의 매일 연습을 하러 나갔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같은 팀이 되어 바다에 들어갔었다. 때로는 조금 멀리, 때로는 조금 가까운 곳에서 훈련을 받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나갔다가 오후에 들어왔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 비슷한 시간에 들어왔다.
해는 길어서 아직 넘어가기 전이라 밖은 환하다. 이집트의 다합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식당이 많이 있고, 맥주 한잔 가볍게 할 수 있는 가게들도 많이 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식당의 2층으로 올라가서 커피 한잔 마시면 그것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주로 집에서 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룸메이트들이 다 들어오면 밥을 먹기 시작해서 같이 만들어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다들 들어오면 오후 느지막이 장을 보러 나가서 밥을 만들어 먹는다. 한식을 먹기 힘든 외국에서는 흔하게 구 할 수 있는 간장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재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라 가끔은 외식도 하면서 룸메이트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타지에서 먹는 밥이 뭐 그렇게 대단하고 맛있는 밥일까 싶지만, 운동회 날 (혹은 소풍날) 먹었던 양념통닭의 맛처럼 행복한 맛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