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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09. 2022

벽 뒤에 숨겨진 것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우리가 머무르던 숙소는 벽에 민트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단층짜리 건물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우리가 처음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간 숙소의 친척이라 했고, 여자 사장님 혼자서 숙소를 운영하는 중이셨다. 여행자를 위한 까사를 하면서 많은 여행자를 만났는데. 한국인은 처음이고, 남자 두 명이서 머물렀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이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 잘 있다가 가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까사 주인 본인의 가족이 일하러 미국에 가 있는데, 당신도 미국으로 가고 싶어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쿠바에서 미국으로 가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 민트색의 벽으로 싸인 까사에서 꿈을 위해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침에는 조식만 먹고 바로 나갈 수밖에 없고, 한참을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들어오면 늦은 저녁이 되었다. 주인아주머니를 하루에 거의 한두 번 정도 볼까 말까 해서 깊은 이야기를 잘 못 나누었지만 우리가 나가고 난 뒤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까지 이곳에서 

'수많은 일을 하시는구나' 

느껴질 정도로 부지런했다.


숙소는 낡은 외형보다 안쪽은 깨끗했고, 항상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숙소의 침대는 매일 새로운 시트로 덮여 있고, 테이블은 식탁을 덮는 새로운 커버가 덮여 있었다. 음식의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아침도 늘 우리가 일어나기 전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셨다. 마지막 날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국을 반드시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쿠바에는 차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는 수많은 교통 표지판들과 보행자들의 표지판이 곧 부서질 것 같이 생긴 벽에 간신히 달려 있다. 그림을 보고 그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표지판에서부터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의 표지판도 많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었지만 비냘레스에서 봤던 아이를 납치하는 그림의 표지판은 어린이 보호 구역을 뜻 하는 것임을 나중에서야 현지인에게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스페인어를 쓰는 통에 스페인어 문맹인 나에게 그림 아래에 작게 적힌 언어는 전혀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나마 횡단보도 표시, 출입 금지와 같은 필수 표지판을 스치면서 지나가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이래도가 높은 그림으로 되어 있어 쉽게 볼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버스 정류장 표지도 도로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보이는데, 그래도 잘 알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긴 했다.


표지판은 생각보다 더 도움이 많이 되는 편이다. 낯선 곳에 암묵적인 약속이 되기도 하고,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도 한다. 어렵사리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접근성 좋은 표지판으로도 기본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세계 곳곳의 도시마다 벽들을 채워놓은 것들 수많은 것들 중에서 아름다움과 무서움의 양면성을 가진 것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레피티라고 하는 예술적인 그림과 막다른 골목을 암시하는 경고의 그림이나 글 들이 적힌 벽을 말한다. 그 이외에도 전혀 알 수 없는 형식의 글자가 적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가 불쾌한 기분을 만든다.


그들만의 표식을 해둔다는 것이 길 가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도 있으며,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엔 더욱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를 향해 써둔 경고성 메시지를 보면 괜히 당장에 그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에 그곳을 빨리 지나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산타 클라라의 낡고 낮은 담벼락에는 그런 글이나 그림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수많은 체 게바라의 얼굴이 벽에 기록되어 있다. 마치 복사기에서 나온 것 같은 모습의 똑같은 그의 얼굴이지만 바탕색의 변화에 따라 그의 느낌은 전현 달랐다. 창이 커서 그의 얼굴을 그릴 수 없는 벽은 대신에 눈에 잘 띄는 색으로 대신했다.


조금 걷다 보니 쿠바 특유의 형형색색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터에는 낡은 놀이기구 몇 개가 있는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나와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 보였다.

잘 가꾸어진 듯 잔디가 깔려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관리가 안되어 있어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네를 타기도 했고, 밴치 위를 달리기도 했다. 행여나 넘어질까 부모들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길 따라 잰걸음으로 따라간다. 어디나 같은 부모의 마음을 보았다.


조금 큰 아이를 데리고 온 아이들의 부모들은 그늘을 찾아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공원에서 잡히는 인터넷을 연결하여 세상의 소식을 보고 있다. 이것도 어딜 가나 같은 모습이었다.

놀이터가 가까이 있지 않은 아이들은 이웃집 담 벽을 골대 삼아 축구나 또 다른 공놀이를 했다. 쿠바의 아이들 사이엔 점점 축구의 인기가 자리를 잡고 있고, 야구의 열기는 식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아바나의 풍경은 야구보다는 축구로 바뀌어 있었고, 심지어 축구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산타 클라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 하나 들고 골목을 나와서  친구 하나만 있다면 축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축구가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흥민 선수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음채를 당하기도 하고, 중국 사람이라고 물으면 손흥민 선수가 있는 나라라고 하면 한국이라고 하기도 했다.

몇 바퀴를 돌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우연히 접어들어간 긴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민트색의 단층 건물에서 생경한 냄새가 세어 나고 있었다. 우리도 모르게 골목까지 들어갔다. 민트색 안쪽에서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고 기계음도 들려왔다. 더 이상 궁금증을 못 참고, 민트색의 벽에 난 직사각형의 창문을 통해 눈을 돌렸다.


벽 넘어 보이는 관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비냘레스를 방문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던 담배 농장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그 모습을 발견했다.


조금은 과하게 촘촘한 방충망과 안전 창살 너머로 사람들이 작업대에 앉아 열심히 쿠바산 시가를 만들고 있었다. 만드는 공정을 전부 다 알고 있지 않아서 무엇을 하는 중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가지런히 쌓아둔 상자와 포장 상자에 담기기 전의 시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담배는 쿠바의 각지로 흩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기념으로 사서 가방에 넣어 둔 시가를 이분들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열중하시며 일하는 모습을 한잠 보다, 정신을 차리고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확인도 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직원은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도 했는데, 사진이 흔들려 담을 수는 없었다. 


공장의 안쪽은 어디서나 본 적이 없던 형광등이 촘촘하게 달려 아주 밝은 곳이었는데. 섬세한 작업을 하는 곳이던지 상업적으로 중요한 곳처럼 보였다.

산타 클라라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일상을 즐기고 싶었다. 작은 도시라 한 번 나가면 저녁엔 두 번 지나는 길도 생길 정도였다. 여행자로 잠시 이곳에 와서 전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잠시라도 삶에 섞여 있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유난히 낮은 건물 벽으로 둘러진 산타 클라라.

이곳의 모습에서 내가 사는 도시의 동네 모습도 보였다. 좋은 시간을 보낸 만큼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덜 하더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이다.


벽은 어쩌면 경계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만드는 삶을 지켜주기도 했다. 낮은 단층의 건물들이 각기 역할이 달리 있듯, 한 걸음이 모두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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