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작업을 통해 해 봤으니 지금 작업 중인 나의 원고도 잘 마무리해서 같은 과정을 조금 더 잘 거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오롯이 내가 만든 첫 역서가 출간될 것이다. 하지만 출간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출판사 신고와 사업자등록이다. 올해는 한국 방문 계획이 없어서 출판업의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이 일을 잠시 보류해 두기로 했다. 그렇다면 한창 부풀어 오른 이 마음을 안고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마케팅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책이 ISBN을 달고 일반 유통 채널들을 통해 판매되기 전에 해볼 수 있는 마케팅이라... 크라우드 펀딩인 텀블벅이 떠올랐다.
창작자가 많이들 찾는 곳이라고 했다. 좀 찾아보니, 그 고유성을 높이 사는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펀딩에 참여해 창작자의 작품 활동에 힘을 보태고, 후원자들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창작자의 작품을 받는 방식이었다. 또한 텀블벅 프로젝트에 참여한 후원자들에게만 드리는 작은 선물을 마련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번역서 외에 후원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 같았다! 상품으로 제대로 실현해 낼 수만 있다면 번역서와 멋지게 페어링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주말에 당장 맨해튼에 나갔다. 관광객을 비롯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역이라서 요 몇 년간은 발길을 끊었던 곳이었다. 게다가 비가 올 거라더니 매우 무덥고 습하기까지 했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온종일 2만 보 가까이 쏘다녔다. 너무 덥길래 벤티 사이즈 아아를 샀다가 사진을 찍느라 얼마 마시지도 않은 그 커피를 길바닥에 엎어버리는 실수를 했는데도 별로 짜증이 나지 않았다. 텀블벅 프로젝트용 선물을 제작할 생각에, 그러니까 그런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기대와 들뜬 마음뿐이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들뜸과 기대는 사실 보너스에 불과했다.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고픈 진짜 이유는 마케팅 경험이다. 텀블벅에서는 프로젝트를 처음 진행하는 사람을 위해 그 과정을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요약하자면,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와 취지, 프로젝트 소개, 제작 과정 소개, 프로젝트 예산, 창작자 소개, 선물 소개, 후원자 안내 이렇게 대략 7단계로 나눠 각 단계를 설득력 있게 채우면 된다. 나는 행동에 착수하고 벌린 일을 정리해 나가며 최소한의 신경만 써도 알아서 굴러가도록 만들어 놓는 일은 꽤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일으킬 콘텐츠, 즉 마케팅 콘텐츠를 만든 경험이 거의 없고 자신도 없다. 그런데 텀블벅 프로젝트 개설을 통해 이 7단계를 채우고 타깃에게 어필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으니 귀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1인 출판의 여정을 글로 남기고 그것들을 엮어 브런치북으로 발행할 수 있게 해주는 브런치스토리에서의 경험처럼 말이다.
그런데 텀블벅이 내게 준 '들뜸', '기대', '마케팅 경험', '귀중한 기회' 따위에 텀블벅이 찬물을 끼얹었다. 텀블벅 프로젝트를 개설하려면, 본인 인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본인 명의의 휴대폰이 꼭 있어야 한다는 미국에 사는 내게 현재로서는 개설 불가라는 답변을 참 친절하게도 전해왔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