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가 새롭게 출시되었다고 했다. 트위터의 대항마로 엄청난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었다. 인스타그램만으로는 마케팅의 범위가 너무 좁다고들 해서 마침 스레드가 출시됐으니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스레드를 처음 열자마자 20여 년 전 아빠 차를 몰고 어느 복잡한 로터리에 겁 없이 진입했던 아찔한 기억이 떠올랐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몇 겹의 차량 행렬 안으로 들어간 나는 그 로터리를 체감상 20분은 돈 것 같았다. 내 운전 실력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스레드가 딱 그랬다. 마구 쏟아지는 피드들이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텍스트의 아수라장 같았다. 내가 그 아우성 속에서 어떤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그런 아수라장이 그 로터리와 스레드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공동 번역을 진행하며 가능성 본 뒤 출판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지난 늦은 봄, 내 머릿속에도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몸부터 던지고 보는 성격이 아닌 나는 '출판업'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구글에서 출판 경험을 나누는 각종 글들을 읽다 보니 머릿속이 점점 포화되어 갔고 각종 정보가 얽히고설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수면 부족으로 찌뿌둥함과 짜증이 밀려와서 일단 멈추고 며칠 쉬어주었니 그다음에는 재미가 시작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건 내 패턴이다. 나는 새로운 일을 결심하면 머리가 터지려 할 때까지 정보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몇 날을 구글신에 의지해 그 방법을 찾으며 머리를 채워가는 이 첫 단계는 흥분으로 인한 불면이 지속되면서 피곤이 최고조에 이르면 끝난다. 그다음으로는 포화된 머릿속을 정리하며 그 정보를 일의 순서대로 뽑아내는 재미의 단계가 시작된다.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일 같다고나 할까. 이 단계에서는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즐거움과 그것을 실행할 거라는 기대에 도파민이 뿜뿜 솟아난다. 머릿속에 채워진 정보를 토대로 제일 먼저 할 일을 정하고 그것의 실행 가능성을 타진한 뒤, 그다음 일을 정하고 가능성 타진, 이런 식이다. 그렇게 할 일을 몇 가지 추려서 실행한 뒤에는 다시 머릿속 포화 단계와 도파민 뿜뿜 단계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일을 완성해 나간다.
그간 이 재미를 왜 잊고 살았을까? 10년 전 프리랜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을 때도 이 두 단계를 반복했었다. 퇴사하기 얼마 전에 시작한 이공계 석박사 논문의 영어 번역은 이렇게 말하기 미안하지만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한국 이공계 연구원들의 논문들 때문에 이중고였다. 원문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논리적 흐름도 빈약해 번역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모국어가 아닌 내 영어에 있었다. 영어 번역에 대한 평가가 늘 이뤄지는 시스템이었는데, 지적을 받을까 두려웠고 만약 지적이 있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더 이상 일을 수락하지 않자 한국 오피스에서 국제전화까지 와서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종용했던 걸 보면 내가 그리 형편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번역하는 일의 압박을 나는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그때 언어의 방향을 영한으로 바꿔 새롭게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새로운 일을 진행 중인 요즘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프리랜서 사업자로서 머릿속 포화 단계와 도파민 뿜뿜 단계를 반복하며 한창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요즘 머릿속에 정보를 채워 불안을 몰아내고 터질 듯한 머리에서 명주실을 뽑듯 해야 할 일들을 뽑아내는 즐거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출판 일의 큰 흐름은 파악했고, 일의 순서도 정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할 일이 많지만, 일단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