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희 Nov 11. 2019

법대 나와서 뭐 할래?



법과대학(학부)에도 전공학과는 여러 개다. 법학과, 경찰행정학과 그리고 국제법무학과.



대학이 국제법무학과를 설립한 배경은 이러하다. 하나, 그저 그런 법과대학은 로스쿨 설립에 실패했다. 둘, 너도나도 외고 입시를 치른 세대가 대학에 지원했다. 셋, 그저 그런 법과대학이 외고 입시를 치른 세대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글쓴이가 국제법무학과를 전공한 배경은 이러하다. 하나, 영어특기자 전형을 지원할 만큼 영어를 잘했다. 둘, 국제학부에 지원할 만큼 잘하진 않았다. 셋, 자존심 상 그저 그런 대학을 가더라도 있어 보이는 학과에 가야 했다.



그저 그런 대학에 유난스레 높은 커트라인을 가진 학과, 국제법무학과 1기가 됐다.



지원 동기야 어찌 됐든 학교생활은 찬란했다. 교수님은 외국인 변호사 거나 한국인 미국 변호사였다. 교수님과 학생은 미드에서나 볼 법한 관계였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토의했고 질문했다. 학과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기 전원이 60만 원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30만 원에 몽골 봉사를 다녀왔다. 학과장이 강력한 추천서를 써준 덕분에 해외 인턴도 했고, 총장이 지원금을 준 덕분에 해외 대회에 수시로 참여했다. 3학년 교환학생을 다녀오기까지 전공에 취해 살았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국제법무학과에 지원할 것인가 묻는다면, 그렇다.



전공을 통해 얻은 수많은 기회와 경험 덕분에 직업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회와 경험을 잇고 이어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법학도는 매력적이지 않다. 매년 취업했냐고 묻는 학과사무실 전화와 여타 학교의 법학과 순위로부터 알 수 있다. 국내외 로스쿨이 당연해 보였지만 대학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나 같은 인재를 몰라 볼리 없다 생각했지만 한국, 미국 변호사가 넘쳐나는 마당에 학사를 뽑을 리 만무했다.



감사하게도 전공과 다소 관련한 일을 한다.



생각한 진로는 오직 로스쿨과 법무팀 두 가지뿐이었다. 이립(而立, 서른 살을 일컫는 말)을 앞둔 지금은 생각이란 자고로 계획에서 시작해 조사와 플랜 B까지 이르러야 하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막연한 상상에 그쳐 진전이 없었다.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우연히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준법감시)에 대해 알게 됐다. 한국은 2000년부터 컴플라이언스를 모든 금융사에 설치 의무화했다. 짧은 역사로 인해 적은 전문 인력에 비해 법규가 요구하는 인원은 늘어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가 생각보다 괜찮은 직무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무턱대고 법학을 전공했는데 공무원도 로스쿨도 아니고 직장인으로 살고 싶다면 같이 하자고 유혹하는 글을 쓰려 한다. 그게 아니라면 글쓴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좋은지 자랑하는 글도 될 수 있겠다. 물론 일을 하며 욕을 안 한 날은 손에 꼽지만. 글쓴이와 같이 생각 없이 졸업반을 맞이한 대학생이라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글쓴이의 업이 궁금하다면 함께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