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와 지방소멸, 부동산 패러다임 전환까지…'워케이션’이 뜬다
여름이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듯한 이번 주, 모두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혹시 아직 휴가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셨거나, 이번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신 분들을 위해 재미있는 스타트업을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바로 지난달 인포뱅크와 홍콩의 제노인베스트먼트아시아 등으로부터 프리-A 라운드 투자를 유치한 스테이빌리티입니다.
스테이빌리티는 이른바 '공유별장' 스타트업으로, 빈집을 구매해 풀빌라, 불멍 등 컨셉을 살린 별장 형태로 리모델링한 뒤,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별장의 소유권을 판매합니다. 이때 개인은 n분의 1로 세금을 포함한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별장을 공동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공동소유 모델을 통해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적을 뿐 아니라, 시설 관리와 운영을 스테이빌리티가 맡기 때문에 유지에 대한 부담도 없어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별장을 소유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스테이빌리티는 스스로를 '한국의 피카소'(Pacaso)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미국 최대 부동산거래 플랫폼 질로우(Zillow)의 임원 출신들에 의해 공동 설립된 피카소는 공유별장이라는 새로운 부동산 시장을 창출해 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2020년 10월에 처음 서비스를 개시한 뒤,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3월에 7,500만 달러 규모 시리즈 B 라운드 투자를 유치하며 단숨에 유니콘의 반열에 올라선 피카소는 반년 뒤인 9월에는 최근 프롭테크 영역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SoftBank Vision Fund 2)의 리드로 1억 2,500만 달러 규모 시리즈 C 라운드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를 15억 달러로 끌어올렸습니다.
이렇게 실리콘밸리 최고의 '큰손'인 소프트뱅크로부터 일찌감치 눈도장을 받은 피카소는 역시 스테이빌리티와 마찬가지로 팜스프링스나 나파밸리, 말리부 등 미국 서부지역의 휴양지를 중심으로 주택을 매입한 뒤, 소유권을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판매합니다. 한 별장을 함께 나누어 구매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8명, 평균 5~6명 정도가 소유권을 나눠 갖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익모델은 소유권 판매 시 발생하는 12%의 거래수수료와 월 100 달러의 별장 관리비로, 소유자가 별장의 유지를 위한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는 스테이빌리티 역시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피카소의 경우, 이미 운영 별장 수와 매출 두 측면 모두에서 상당한 규모에 이른 상태로, 지난해 9월 투자 유치 당시 밝힌 바에 의하면 이미 연간 환산 추정 매출 3억 3,3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플랫폼을 통해 관리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는 약 2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용자 수 역시 상당한데요. 지난해 2분기 기준 웹사이트 및 모바일 앱 방문자 수는 직전분기대비 196% 증가한 180만 명, 파스코를 통해 주택을 구매한 구매자의 수는 6만 명에 이릅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스타트업들이 속속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중으로, 지난주에도 세컨하우스 공동소유 플랫폼 ‘마이세컨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프롭테크 스타트업 '클리'가 본엔젤파트너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클리 역시 고가의 주택 구매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동소유 방식으로 저렴한 가격에 세컨하우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입니다. 그 외에도 '프릴리'의 운영사 프라우들리, '모자이크'의 운영사 엠제트큐컴퍼니 등 다수의 공유별장 플랫폼들이 올해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 투자/M&A 탐색 (투자 대상 분야: '단독주택/별장')
이처럼 공유별장 스타트업들이 최근 급부상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는 팬데믹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꼽아볼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CEO인 오스틴 알리슨(Austin Allison) 또한 팬데믹 이전부터 세큰드홈에 대한 수요는 증가 추세였으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수요가 더욱 급증했다며 피카소가 재택근무 전환으로 인한 유연성 증대의 수혜를 입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의 장기화에 채용을 위한 복지혜택으로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를 내세우는 IT 기업들의 행보까지 맞물리며 이같은 유연한 근무환경은 장기 지속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유연성을 십분 활용해 워케이션을 즐기려는 MZ 세대들을 겨냥한 스타트업들 역시 높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올해 3월, 여행 슈퍼앱 기업 마이리얼트립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한 워케이션 스타트업 오피스(O-PEACE)가 있습니다. 제주 조천과 서귀포시 사계리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와 제주 로컬 숙소들을 함께 운영하며 이른바 ‘워케이션 타운’을 구축해 가고 있는 오피스는 ‘뉴워커스 타운’(New Workers Town)이라는 슬로건 하에 로컬 휴양지 오피스를 위워크(WeWork)와 같은 대도시 역세권 공유오피스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이리얼트립이 이같은 오피스에 전략적 투자를 집행한 것은 여행업계에서도 워케이션을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강릉에서 워케이션 비즈니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더웨이브컴퍼니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강릉 명주동에서 폐업한 표구사를 개조한 공유오피스 파도살롱을 운영중인 더웨이브컴퍼니는 지난해 '지치지만 쉴 수 없는 당신을 위한 새로운 업무방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숙박 결합 상품 '일로오션'을 새롭게 선보였는데요. 일로오션은 4박5일의 숙박권과 코워킹스페이스 이용권, 바닷가나 소나무 숲에서 일하기 위한 리모트워크 키트 대여 등을 결합한 상품으로, 더웨이브컴퍼니는 이를 위해 호텔 1층 로비에 파도살롱 송정점을 추가로 오픈했습니다.
재택근무로의 전환과 이에 따른 워케이션 수요 증가가 전세계적인 트렌드라면, 인구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소멸과 지방도시의 '빈집' 문제는 특히 한국에서 워케이션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청년들의 지역정착을 지원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 '강릉살자'를 운영했던 더웨이브컴퍼니 역시 로컬 비즈니스 엑셀러레이팅 및 건설팅,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등 지역사회 활성화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더웨이브컴퍼니의 최지백 대표는 이를 위해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의 위기를 경험한 일본의 사례를 참조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지백 대표가 언급한 사례는 호주에서 수입한 모레로 ‘일본의 와이키키’로 불리는 해변을 구축한 뒤, 여러 대기업의 워케이션 사무소를 유치한 일본 사라하마의 사례인데요.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가 장기간 지속되어온 일본서에서는 이 외에도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추진되고 있는 중으로, 지자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빈집은행'(아키야뱅크, 空き家バンク)이 대표적입니다. 빈집은행은 지자체가 웹사이트를 통해 빈집 정보를 등록한 뒤, 해당 주택을 주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리모델링 비용 또는 임대료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체 지자체의 64% 가량이 이같은 빈집은행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빈집을 활용해 월 4만 엔의 회비를 지불하면 전국 100여 개의 주택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드레스'(ADDress)가 코로나 이후 큰 인기를 끄는 등, 민간 영역에서도 빈집을 사업화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는데요. 일본보다도 가파른 속도로 고령화 및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있는 한국에서도 관련 스타트업들이 향후 높은 성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 국내에서도 지난해 H2O호스피탈리티가 지역기반 공간재생 스타트업 리플레이스를 인수하며 화제가 되었는데요. 리플레이스는 지자체와의 협력 하에 방치된 공간을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버려진 19세기 가옥을 리모델링한 한옥 카페 ‘화수헌’, 문경시의 적산가옥과 폐 양조장을 개조한 셀프 스튜디오 ‘볕드는산’과 복합문화공간 ‘산양정행소’를 핫플레이스로 등극시킨 바 있습니다.
조선항만산업의 침체로 급격히 인력이 유출되고 있는 부산 영도 지역을 거점으로 메이커스페이스 ‘플랫폼135’, 복합문화공간 ‘끄티, 마을 리조트 리셉션 ‘비탈’ 등 빈 집을 이용한 문화공간을 선보이고 있는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역시 지난해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와 엠와이소셜컴퍼니로부터 26억 원 규모 시리즈 A 라운드 투자를 유치하며 누적 투자금 46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한편, 로컬 휴양지의 주택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매입한다는 점에서 공유별장 트렌드는 부동산 시장의 공유 트렌드와도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위워크(WeWork) 붐과 함께 상업용 부동산 영역을 휩쓸었던 공유 트렌드는 최근 주거용 부동산으로 적용 영역을 옮겨가고 있는 모습인데요. 최근 위워크의 상장 실패의 책임을 지고 쫓겨나듯 회사를 떠났던 위워츠 창업자 아담 뉴먼(Adam Neumann)이 새로운 주거용 아파트 공유 스타트업 플로우(Flow)를 내세워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로부터 기업가치 10억 달러에 3억 5,000만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유별장 모델에서 확인되듯 부동산 영역의 이같은 공유 붐이 부동산의 이용 뿐만 아니라, 부동산의 소유 방식 역시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피카소 역시 전통적인 타임쉐어(timeshare, 리조트나 호텔 등의 숙박시설을 시간단위로 공유하는 시스템) 모델과 달리 자사 공유별장은 구매자가 실제 주택을 소유할 수 있으며, 구매 후 12개월이 경과하면 이를 자유롭게 판매할 수도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적극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클리 역시, 세컨하우스 개발 및 공급, 운영에 더해 세컨하우스 구매 및 매각을 위한 전문 마켓을 함께 운영함으로써 재거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팬데믹을 전후로 소액투자 열풍이 일며 워케이션 붐을 이끌고 있는 MZ 세대 사이에서 투자 자산의 소유에 관심이 증가한 것이 이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부동산을 소유하고 싶지만, 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MZ 세대들을 니즈를 겨냥한 '카사'나 '소유', '펀블' 등,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들의 인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같은 부동산 조각 투자 시에도 단순 투자가치뿐 아니라 사용가치 역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부동산 조각투자 업계 후발주자인 '소유'는 1호 상장 부동산인 안국역 인근의 수제버거집 '다운타우너'의 입주건물에 투자한 공모투자자들에게 다운타우너 방문 시 이용할 수 있는 탄산음료 무료이용권, 10% 상시할인 혜택 등을 제공하며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당시 소유의 운영사 루센트 블록의 안명숙 부동산총괄이사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이용 못하는 공간보단 가지고 있으면서 이용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투자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팬덤’을 형성할 수도 있다"고 이같은 혜택을 제공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바 있는데요. '공유별장' 역시 투자가치와 사용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는 모델로써 향후 MZ세대에 높은 인기를 구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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