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원두막] 액션 영화에서 읽은 시대의 흐름
안녕하세요. 수박의 아보카도 서비스 인턴 KH입니다. 오늘은 수박원두막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2020년 초반 가장 핫한 영화는? 바로 <기생충>입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상 수상도 모자라 4관왕까지 거머쥔 그야말로 역사에 남을 이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를 계기로 원두막세션을 수박 식구들과 함께 영화 트렌드에 대해 나누고 싶었는데요. 영화 속에서 발견한 트렌드, 그리고 액션 장르와 함께 읽는 시대의 흐름을 정리해보았습니다.
#01
<기생충> 신드롬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도 해당되는데, 소규모로 시작한 해외 개봉은 입소문과 아카데미 효과를 힘입어 경이로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생충>의 흥행 요인은 뭘까요? 단순히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일까요? 굳건한 봉준호 감독의 팬덤 덕일까요? 매력 넘치는 박소담의 눈웃음 때문일까요?
모두 다 정답이지만, 저는 특히 '트렌드'에 잘 부합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이 갈수록 큰 문제가 되어가는 빈부격차와 그 안에서의 신분 상승을 위한 투쟁, 그리고 더 밑으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전 세계가 공유하는 이 세태를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며 날카롭게 꼬집는 영화가 <기생충>이었죠. 또한 근 몇 년간의 수상작들 때문에 국내 영화제라는 논란이 커진 아카데미 측에게도 <기생충>은 상을 받을 만한, 그리고 주고 싶은 영화였을 겁니다. '참으로 시의적절' 합니다.
즉 영화의 제작과 흥행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정말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오늘의 주제도 바로 '트렌드와 영화'입니다. 그것도 액션 영화! 왜 하필 많은 장르 중에 액션 영화냐고요? 액션 영화는 모두가 가볍게 꾸준히 즐기는, 즉 유행에 상당히 민감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최초의 영화도 액션 영화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02
최초의 영화는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차역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50초짜리 영상이지만,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선 놀란 관객들이 달아났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사실은 과장이라고 합니다)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최초의 영화가 인물 간의 대화가 아닌 달려오는 기차라는 사실은, 동적인 액션이 얼마나 본능적인 욕구이며 '움직이는 사진'인 영화의 정체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후 영화는 단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면서 우리가 아는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올라옵니다. 그렇게 1920년대가 되고 최초의 액션스타가 등장하는데요, 바로 '버스터 키튼'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버스터 키튼의 장기는 스턴트. 지금 봐도 입이 떡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맨몸으로 해내는 경이로운 운동신경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주로 슬랩스틱을 활용한 액션 코미디였는데, 옥상에서 지붕들을 뚫고 떨어져서 살아남거나 달리는 자동차를 붙잡고 도망치는 등 기상천외한 액션들을 무표정으로 하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끕니다.
이렇게 툭하면 집이 무너지고 기차가 박살 나는 액션 영화들을 찍으려면 예산이 정말 많이 들겠죠? 마침 1920년대에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여 절정의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할리우드를 위시한 미국 영화 산업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고, 버스터 키튼의 영화처럼 큰 규모의 액션이 필요한 영화들을 만드는 데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겁니다. 최초의 영화는 파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상업 영화의 제국은 미국에 세워진 것이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호황은 1930년이 되자마자 닥친 대공황에 처참하게 붕괴되고, 1940년대가 되자 전 세계는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03
2차 대전은 지금까지 와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규모도 가장 컸지만, 탱크와 비행기가 실험 단계를 넘어 핵심으로 우뚝 섰고 미사일과 핵폭탄이 개발되었죠. 나날이 발전하는 신기술들이 총출동하는 현장이었던 겁니다. 이제 완성된 영화 기술도 전쟁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합니다. 선전 영화의 탄생입니다.
이제 영화는 흉포한 적과 이를 거침없이 물리치는 든든한 아군을 홍보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전쟁영화에 액션이 빠질 수 없습니다. 적을 추풍낙엽처럼 쓸어내는 통쾌한 장면과 빽빽하게 사열한 군인들의 대열은 필수 요소였고, 이를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연출기법도 빠르게 발달했습니다. 히틀러 정권이 대중들을 선동할 때도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바로 <의지의 승리>라는 선전 영화였습니다.
전쟁 이후 평화도 잠시, 세계는 미국-소련의 냉전체제로 돌입합니다. 전면전만 빼고 모든 게 이루어지던 냉전이기 때문에, 음지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던 때이기도 하죠. 이런 시대 배경 때문에 스파이들이 주인공인 첩보영화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스파이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지 않나요?
네, 모두가 아는 그 유명한 '007' 시리즈도 60년대에 탄생했습니다. 어딘가 음침하고 툭하면 배신하는 간첩의 인상이 강했던 스파이라는 직업을 섹시하고 매력적인 요원으로 바꿔버렸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가상의 캐릭터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제임스 본드는 2020년 지금 까지도 신작을 내놓으며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50년이 넘은 시간 동안 25개의 영화가 나오다 보니 007 시리즈만 봐도 이번 글의 주제인 '액션 영화의 트렌드'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시리즈 초반에만 해도 소련 테러리스트와 핵무기 등이 주요 소재였지만, 냉전이 끝나고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북한, 제3세계를 거치더니 우주선과 최첨단 과학기술에까지 이르러서 저 멀리 어딘가로 가버립니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에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으로 리부트 된 최신 시리즈에선 다시 클래식한 캐릭터와 설정으로 돌아가죠.
이렇게 제임스 본드의 예시만 봐도, 시대의 흐름이 영화 트렌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대중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액션 장르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이제 보이시죠?
영원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한 60년대는 냉전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특히 미국인) 이제 전쟁과 대립이라면 진저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냉전과 베트남 전쟁을 연속적으로 치르고 나니 근 몇십 년간 전쟁만 한 셈이 되었으니까요. 아무리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췄다지만 목숨이나 몸의 일부를 잃고 돌아오는 장병들이 점점 늘어나자, 미국 전역에서 반전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에서 히피와 염세주의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이때 히피들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면서 록 음악(당시 새로운 음악이던)과 마약에 열광하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동양 문화에도 심취하게 됩니다. 기성세대가 주축이던 서구 문화와 전혀 다른 걸 추구하다 보니 명상이며 불교며 하는 것들의 신비함에 매료된 것이겠죠. 이런 시대의 흐름을 영화계가 놓칠 리 없습니다. 70년대가 되자 동양에서 온 불세출의 영웅이 할리우드에 등장합니다.
바로 Bruce Lee, 우리가 잘 아는 이소룡입니다. 미국 출생이지만 홍콩에서 방황하는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다시 무술을 익히고 미국으로 넘어온 뒤 TV 스타가 되려는 꿈을 가집니다. 그렇게 이소룡은 <그린호넷>에도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할리우드의 벽은 동양인에게 높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합니다. 그런데 홍콩에서 만든 <당산대형>이 대히트를 치면서 이후 <정무문> 등을 통해 엄청난 글로벌 스타가 되었고, 마침내 할리우드 합작영화인 <용쟁호투> 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이소룡이 인기를 끈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기합과 압도적인 육체 능력이 주는 쾌감 등등... 확실한 건 그동안 관객들에게 익숙했던 서구 액션 영화 주인공 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 흔한 권총 하나도 쓰지 않고 주먹으로 승부하는 상남자니까요. 거기에 정신력 등을 강조하는 이소룡의 철학가적인 모습까지 더해져 대대적인 쿵후(중국무술) 영화 붐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트렌드를 이끈 이소룡은 1973년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소룡의 죽음 이후 액션 영화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바로 2편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