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Vacation] 세번째 글
※ 더웨이브컴퍼니는 서울을 떠나 강릉, 사무실에서 벗어난 해변, 그리고 로컬에서 일하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지역 그리고 일과 휴가, 워케이션에 관한 저희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로 잘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 제러미 벤담은 공리주의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 '파놉티콘(Panopticon·판옵티콘)'을 통해 구조와 감시, 권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흔히 가운데서 모든 수감자를 관리, 감독할 수 있다고 알려진 파놉티콘 형식의 교도소는 감시뿐만 아니라 갑갑하고 폐쇄된 공간을 일컫는 말로 은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사무실처럼 말이죠.
앞만 보고 일하는 사무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죠. 일반 사원이 가장 앞줄을 차지하고 대리 직급이 그다음,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사무실 책상 배치도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마치 파놉티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소설 <1984>에서 말한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같은 감시 체계처럼 답답하지 그지없고, 조금만 잘못하면 내 실수를 타인에게 적발될 것만 같은 구조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오늘 얘기할 사무실이 누군가에겐 그런 구조로 느껴집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기성 교육 제도에 반기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날 겁니다.
우리는 가축이 아니다. 창살 없는 학교라는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달라
학교를 창살 없는 감옥에 비유한다면 사무실은 뭘까요? 스스로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갔으니 자발적으로 들어간 교도소일까요? 그렇다면 이 갑갑한 공간은 항상 답답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은 사무실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사무를 보는 방'이라는 사무실의 사전적 정의가 나옵니다. 인터넷에 '사무실', 세 글자를 두드려보면 '사무실에 매여 있는 지박령', '우리가 밤에 보는 저 아름다운 야경은 누군가가 야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야근을 늦게 까지 할 때 가장 무서운 건 귀신보다 버스, 지하철 막차가 끊기는 것이다' 등등 사무실과 관련된 답답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등장합니다.
확실히 방이라고 하니까 하얀 벽지와 사무실 특유의 천정이 있는 밀실이 생각납니다. 이래저래 갇혀 있는 느낌이죠. 더웨이브컴퍼니 멤버들 역시 전통적으로 이어오는 사무실의 느낌을 벗어나고자 '파도살롱', '워크스페이스' 등으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공간인 건 같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과 인식은 바꿀 수 있는 법이니까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쉬고, 일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일'만 미친 듯이 해야 하는 공간에서는 에너지도, 창의성도, 인간관계도 모두 소모되듯이 갈려나갈 것만 같으니까요. 지속 가능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더웨이브컴퍼니 멤버들은 지금과 같이 모이기 전에 각자 다양한 회사, 기업에서 사무실을 경험했습니다. 대부분 전통적인, 소위 말하는 보수적이고 변화가 적은 조직에서 일을 했습니다. 역사와 전통, 규율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장교와 부사관 복무를 한 멤버도 있고, 도제식 교육을 통해 기술을 전수받은 업무 체계를 겪었던 직원도 있습니다. 업무량이 엄청나게 많아 쉴 시간도 없이 일했던 멤버도 있지요.
군대에서 3년간 장교로 복무했던 최지백 대표는 지난 사무실의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오랜 역사만큼 지켜야 할 게 많은 곳이었습니다. 규율과 원칙이 중시되다 보니 신경 쓸 부분이 많았어요. 사무실의 모습도 군복무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떠오르는 중대, 대대 사무실의 느낌이었습니다. 장교 복무 기간 동안 즐겁게 일했지만, 자율성과 창의성을 200% 발휘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그때부터 '일'과 '삶'을 분리하며 창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런 사무실을 꿈꾸면서 말이죠."
다양한 풍경보다는 단조로운 환경, 쉼보다는 기계처럼 일하는 일상이 지배했던 모습이 저희가 떠올렸던 과거의, 전통적인 일과 사무실의 단상이었습니다.
현재 더웨이브컴퍼니는 원격 근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간다기보다 원격근무가 주는 효용성을 고려해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들이 바라볼 때 원격 근무는 명과 암을 둘 다 가지고 있는 근무 제도예요. 대표들은 자기 회사니까 언제, 어디서든 일 생각뿐인데 직원은 또 그렇지 않잖아요? 대표만큼 회사를 자주 생각하고 일을 하는 직원들은 없을 테니까요. 있다면 당장 모셔오고 싶네요. 하하하. 그래서인지 원격 근무는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일에 대한 열정, 실력, 끈기가 있는 분들만 사용했으면 하는 제도예요."
원격 근무에 대한 최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하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재택, 원격 근무를 하면서 집중하며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무실이라는 정해진 공간을 벗어났다는 생각에 나태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공간이 주는 적당한 제약마저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더웨이브컴퍼니 멤버들은 ‘원격근무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작된 팬데믹 이후 원격, 재택근무 없이 일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자유로운 공간에서 집중하는 시간이 늘면서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사무실이 주는 압박감과 갑갑함이 효율성과 창의성을 저하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의 효율과 구성원의 성장, 그리고 조직 문화의 개선을 위해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원격 근무를 의도대로 활용하도록 하는 동시에, 더 나은 업무 환경, 사무실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멤버는 사무 공간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전 직장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냉장고에 배달음식 팸플릿이 덕지덕지 붙어있거나 수면실이 있는 직장은 업무 강도가 엄청나다는 방증이다’라고요.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킨다는 증거니까요. 복지도 좋지만, 업무 환경 자체가 자유롭고 편안해야 업무도 그만큼 유연하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일하는 공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장 안락하고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시간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직원들을 위해 몸이 정말 편안한 책상과 의자, 사무용품을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입니다.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내는 면도 있지만, 개인 공간이 충분히 확보돼, 내 업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이 주어지면 좋을 겁니다. 혼자 작업하다가도 휴게실이나 휴식,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에 가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환기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봅니다.
가장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 옆에서, 고개를 들면 자연이 보이는 장소면 좋을 듯합니다. LED 형광등이 어두운 사무실에 밝은 빛을 가져다주지만, 오랜 시간 사용하면 눈이 아플 때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자연의 일부인만큼 자연 속에, 자연과 가까이서 일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시너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