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 Vacation] 여덟 번째 글
※ 더웨이브컴퍼니는 서울을 떠나 강릉, 사무실에서 벗어난 해변, 그리고 로컬에서 일하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지역 그리고 일과 휴가, 워케이션에 관한 저희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1시간 2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강릉선 KTX '무정차 열차'가 이달(7월) 말부터 시범 운행에 들어갑니다."
지난 5일 여러 언론에는 KTX 강릉선에 대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무정차 열차가 운영되면 서울역에서는 약 1시간 40분, 청량리역에서는 1시간 20분이 소요돼 기존 2시간보다 더 빠른 시간에 강릉에 올 수 있게 됩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사람이 강원도와 강릉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만큼 많이 찾고 있습니다. 강릉역, 강릉 터미널에는 휴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더웨이브컴퍼니 멤버들은 관광도시인 강릉이 휴가지로서는 어떤 곳일지, 직장을 갖고 생활을 이어가기에 어떤 장소인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변모하는 강릉의 관광
여름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이번 여름 강릉으로 놀러 가야지'라고 쓰인 지인들의 SNS 게시물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교통 발달과 함께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를 검색,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강릉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이를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강릉을 찾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과거에 강릉에서 동해바다를 보고 가거나 오대산 등반을 하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커피와 여러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해지면서 대관령과 동해, 강릉의 양쪽 끝만 보고 가던 여행에서 강릉 전체를 둘러보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강릉을 찾는 이들에게 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나누던 멤버들은 저마다 자신이 인상 깊었던 장소들을 추천했습니다.
송정해변과 소나무 숲에서 트래킹 하기
사천해변의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며 유리창 너머의 바다 감상하기
오죽헌 사진 스팟에서 5000원 풍경으로 사진 찍기
대관령 줄기에 있는 왕산 한옥마을에서 산과 한옥, 나무의 향 만끽하기
영진해변에서 드라마 촬영지 보고 서핑하기
밤에 안반데기에 올라 은하수 눈에 담기 등등.
여기에 각자 알고 있는 강릉의 숨은 카페, 식당, 갤러리, 전시관 등 문화예술 전시관에 단오제, 강릉국제영화제, 정동진 독립영화제, 명주 야행과 같은 지역 축제까지 더하니 그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라고 했던 아이스크림 광고처럼 말이죠.
일회성 소비에서 한 달 살기로
이번 대화에 참여한 멤버 중 한 명은 얼마 전 강릉의 청년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경포해수욕장을 방문한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영화나 드라마, 실제 이곳에 왔을 때 느꼈던 점은 '여기야말로 청춘들의 만남의 장이구나'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갔던 경포의 밤은 가족, 친구, 연인 등 많은 이가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후의 경포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밤의 경포에는 바닷바람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가득했어요."
단순히 경포대의 풍경이 바뀐 것을 넘어 강릉을 즐기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강릉 하면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 '대관령 너머의 먼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모든 걸 접고 조용히 숨어 지내기 위해 가는 곳으로 강릉이 나오곤 했죠. 여전히 대관령 산줄기의 포근함과 동해의 너른 풍경은 지친 이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과거에 강릉을 떠올리던 이미지에는 잠시 머물기 좋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한적하다'라는 점만 강조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 달 살기'와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제주와 함께 강릉이 새로운 공간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 역시 많은 부분이 리뉴얼되었습니다. 낡은 공간은 기존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고, 해변가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외국의 해변을 연상하게 하는 깔끔한 풍경으로 바뀌었죠. 더웨이브컴퍼니가 만들어지고 이곳에서 보낸 4년여의 시간 동안 대도시를 떠나 이곳에 정착한 문화예술가, 창업가, 청년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도시 모두 새롭게 변모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해부터 이어가고 있는 청년마을 지원사업 '강릉살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강릉에 대한 인식 변화와 청년 문제에 대한 고민, ‘관광도시에서 생활을 꿈꾸는 도시’로 변하고 있는 지역 분위기를 종합해 내린 결과이자, 많은 사람이 강릉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죠.
강릉살자 2기 멤버였던 참가자 B는 청년마을 지원사업 이전에 이미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 살기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대도시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도시 같아. 스스로 불편함만 덜 느낀다면 생활에 필요한 건 다 있으니까. 바다와 산을 즐기고 압박감이 덜한 분위기에서 살 수 있는 미니멀한 도시랄까."
'살만한가'에 대한 정의와 강릉
관광과 한 달 살기가 다르듯이 한 달 살기와 직장을 구하고 영속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 달 살기가 지출이 중심이 되는 생활이라면 다른 도시에서 사는 것은 수입이 동반되는 한편, 기본적인 모든 부분, 이성과 감정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저희는 앞서 한 달 살기에 대해 언급했던 부분을 떠올리며 강릉이라는 도시의 생활에 대해서 고민해봤습니다. 이는 더웨이브컴퍼니가 강릉살자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고심했던 부분이기도 했죠.
"중요한 건 사람마다 생활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살만한가?'에 대한 기준도, 정의도 모두 다르죠."
대화를 하다가 나온 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사람은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는지와 실제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리게 될 물가가 중요할 것이고, 문화예술이 중요한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도시에 극장, 전시관, 갤러리가 있는지를 체크할 겁니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과 바다 등과 같이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나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를 선호합니다.
청년들의 로컬 정착을 돕는 강릉살자와 강릉에서 일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일로오션을 진행하면서 "강릉에 일자리 많나요?", "강릉에서는 일할만한가요?", "○○ 시설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꽤 자주 받았습니다. 질문을 들으면서 어딘가에서 살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삶이 뒤따라야 한다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생활적인 면에서 강릉은 앞서 언급한 대로 생활을 영위할 만큼 갖춰야 할 요소를 두루 갖고 있습니다. 대도시와 같은 완벽한 환경과 조건, 기회, 양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지만, 강릉만큼 여기저기 많은 것이 있는 곳도 드물죠. 기본적인 쇼핑공간부터 극장, 극단, 전시장과 같은 문화예술시설, 대학병원급 의료시설과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교통인프라, 취미와 생각을 공유하는 청년 커뮤니티 등등.
일과 관련해서는 서울, 경기, 부산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일자리와 직업군과 비교하기에는 그 규모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대신 2030 청년 유입이 늘고 있고 이에 맞춰 강릉에서 새롭게 창업을 하는 사람들, 문화예술활동을 위해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더 다양한 일자리, 직군의 사람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로컬에 가서 생활을 하다 보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그만큼 필요한 것도, 해야 할 일도,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구나'라는 점입니다. 로컬에서 지내면서 지역을 고민하고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새롭게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오늘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그렇다면 구직 외에 일을 하는 데 있어 이 도시의 환경은 어떨까요?
더웨이브컴퍼니 멤버 중 한 명은 2019년에 노마도르에서 진행했던 '울릉살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울릉도에서 일했던 경험은 매우 특별했어요. 울릉도의 고립된 자연환경을 온전히 마주하며 일했던 기억은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명과 떨어져 있어 커피, 편의점, 대중교통 등을 만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많이 필요했죠. 대신 자체적인 휴식을 주기 위한 목적이 컸기에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고, 산이나 바다를 보기 위해서는 마음먹고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습니다. 반면, 한적한 지방 도시에서는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일을 하거나 대도시와 같은 편안한 생활을 누리기는 쉽지 않죠.
강릉이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 좋은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여름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과 더웨이브컴퍼니가 함께한 노마드워커스 인터뷰에서 이 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릉에서도 바다를 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강릉 도심에서 짧게는 15분, 길게는 30분 안팎의 거리를 자동차로 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음먹으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동쪽으로 가면 바다가, 서쪽으로 그 정도 시간을 가면 대관령이 있는 태백산맥 산자락을 만날 수 있죠. 그 점이 이 도시를 더 특별하게 합니다.
서울이나 강릉이나 일하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이곳에서는 일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 잠시 바다를 보고 올 수 있죠. 이건 휴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웨이브컴퍼니 멤버들 가운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말을 이용해 바다로 갑니다. 관광객이 덜 붐비는 해변에서 이어폰을 낀 채 홀로 캠핑 의자를 펴놓고 책을 읽습니다. 자동차는 주변에 많이 있는 공영주차장에 세워놓고 말이죠.
어떤 경우에는 야근이 끝나고 답답한 마음을 풀려고 아무 해변에나 가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단순히 자연에서 일한다, 자연과 함께 한다라는 공허한 메시지보다 직장인에게 있어, 새로운 도시에서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있어 '네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바다와 산을 볼 수 있어. 그리고 온전히 즐길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워케이션 프로그램인 일로오션을 운영하면서 바다+소나무+산, 그리고 강릉의 문화가 함께하는 새로운 느낌의 업무방식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험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요. 2020년에 진행했던 ‘오늘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프로젝트는 언뜻 보면 잘 지은 일회성 프로젝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번 쓰고 마는 구호가 아닌, 이곳 시민들이 항상 즐기며 실행하고 있는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컬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마을의 진화』에서는 일본 가미야마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지역 공헌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 일보다 이 마을에서 그쪽 회사의 일이 도쿄와 다르지 않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는 게 더 좋아요. 시골에서도 도시와 똑같이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면 그 뒤를 이어서 다른 기업들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강릉에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콘텐츠를 만들며 일하고 있는 저희들도 이런 부분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서울과 다르지 않게 일하면서 더 특별한 부분을 향유하고 있는 저희의 모습, 강릉의 모습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