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관계의 집으로

최우용, 궁리 출판사

by 흐르는 강물처럼

다시, 관계의 집으로

최우용, 궁리 출판사



이 책을 처음 재미있게 읽고 나서 내가 남겨놓은 메모는 겨우 몇 줄이었고 안타깝게도 좋았다는 것 이외에는 내 머릿속에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책을 독서록에 꼭 작성하여 제대로 남기고 싶은 욕심에 기억을 떠올리고자 작년 10월에 읽은 책을 올해 5월부터 다시 읽게 되었다.

집, 건축에 대한 제목과 내용을 앞세우고 있는 책이지만, 건축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역사, 종교,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작가의 유연한 사고와 철학, 해박한 지식, 유려한 글 솜씨를 맛보게 된다.

여기 등장하는 건축물은 이야기 속 매개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시대를 풍미했던 종교가 역사 속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 시대 사상으로 수백 년을 거치면서 건축물로 오롯이 남겨진 흔적을 본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30도가량 비뚤어지게 배치된 조망,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 주심포 공포양식의 간소하면서도 화려함의 미에 탄복한다.


단독주택 문화가 당연했던 우리나라에 아파트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을 마주하고, 또 다른 '난장이'의 삶을 이야기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되는 인천 미추홀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파이란'의 주인공 강재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가난한 '괭이부리말' 동네가 배경으로 연결이 되며, 괭이부리말 기찻길 옆 공부방을 넌지시 보여준다.


건축가 이일훈이 말하는 '채를 나누는 건축', 공간과 공간의 틈새가 만들어내는 자연공간을 마주하며 만나는 사색, 편리함의 당위성에 대한 부정, 불편함을 무조건 배제하고 편리함과 경제성만을 추구하는 빠른 세상에 대하여 물음표를 던지는 건축가의 사상을 배우게 되며 '자비의 침묵 수도원'을 만나게 된다.


직각의 구도인 수직과 수평만이 존재했던 세상을 일그러지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수직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새로운 기둥이 등장한다.

건축가 이토 도요의 센다이미디어테크라는 빌딩이다.

이 빌딩의 기둥들 사이사이로 열린 공간으로는 위층과 아래층이 확 트이게 되어 빛과 바람과 기류가 흐르는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제시한다.




과학의 발전은 건축물의 발전 또한 비약적으로 가능하게 하였다.

인간의 모든 여정은 철학과 종교가 바탕이 되어 역사 속에서 문화와 예술도 몸부림을 치듯 격렬하게 피어나고 그것은 건축물과 예술작품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것으로 표출된다.

작가는 건축의 이해에 필요한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설명을 깃들이고, 다양한 책 속의 문장과 설명을 인용하고, 동양과 서양의 건축물들, 예술 작품을 소개하면서도 건축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고 있으니 너무 매력적인 책이라고 느껴진다.

건축물 속에 숨어있는 것은 단순히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거기에 깃든 인간의 역사이고 시대의 흐름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공간은 정적인 것이고 건축은 정적인 영역의 집합체이면서도 동시에 동적인 사람들의 움직임과 흐름을 받아들이며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이제 건축은 그저 건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관계와 소통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의미 있는 장소를 찾아서 방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인데, 이 작가의 새로운 신작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이 책 프롤로그에 적은 부분을 발췌하여 적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는 글] 다시, 존재의 집에서 관계의 집으로


나는 건축을 학學으로 이야기할 능력이 부족하며, 다만 잊혀가거나 사라져 가거나 변해가거나 또는 구석과 변방에 놓인 건축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뭍과 섬의 농경이 만들어낸 초가집과, 푸른 눈의 이방인이 제주에 만든 기이한 시멘트집과, 대륙에서 반도로 반도에서 섬으로 건너간 어느 건축의 유전자와, 죽음과 삶을 연결하는 상엿집을 말하고 싶다.
나는 두터운 돌벽 속에 두문불출하던 중세유럽의 수도원과, 나무를 바라보던 옛 백제 건축가와, 그 건축가들이 완성한 나무 건축과, 그 건축가들이 완성한 나무 건축과, 오래된 절집의 오래된 기둥과, 새로운 도서관의 새로운 기둥과, 도시에 만개해 있는 노출 콘크리트 집들을 말하고 싶다.


나는 서글픈 아파트의 역사와 빈민촌의 허름한 공부방과, 기만적인 랜드마크의 허구와, 자동차를 향한 건축과 도시의 짝사랑을 말하고 싶다.


나는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 속에 들어 있는 화엄과, 채를 나눈 어떤 수도원과, 로맨티시즘의 피렌체를 말하고 싶다.


나는 건축가 김수근의 빛과 그림자와, 건축가 훈데르트바서가 말한 곰팡이 성명서와, 두 디자이너 스티브 잡스와 빅터 파파넥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행객의 눈으로, 몽상가의 눈으로, 관찰자의 눈으로, 때로는 소설가의 눈으로 호모 아키텍투스의 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최우용 #다시, 관계의 집으로 #건축 #건축가 #이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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