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가 반갑지 않으냐?

앵두잼 만들다가 떠오른 앵두나무의 추억

by 흐르는 강물처럼

앵두가 반갑지 않으냐?


남편이 시댁에 다녀와서 앵두를 가져왔다.

김치통사이즈 큰 통에 앵두가 한가득이다.


저 많은 것을 어쩌지 하는 걱정, 상해서 버리게 될까 미리 발동하는 불안, 지금의 내가 감당해야 할 보상 없는 무기한 노동과 그 노동이 가져올 피로감, 분노, 짜증.


앵두를 보자마자 맛있겠다, 횡재했다, 돈 벌었다, 감사하다, 그런 마음이 생기기는커녕 내가 느낀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었다.


앵두는 씨앗이 있어서 앵두잼을 만들려면 일일이 체에 걸러서 씨를 발라내야 한다.

앵두청은 설탕만 재어놓으면 되는 것이니 앵두잼보다 상대적으로 만들기가 쉽지만, 매실처럼 씨앗에 독성이 있다고 해서 앵두청을 만들고 4개월 후에는 씨앗을 빼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단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이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번거롭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절대로 원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한 앵두청, 앵두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앵두청과 앵두잼 만들기


앵두를 물에 담그니 작고 귀여운 앵두나무 잎사귀와 벌레들, 먼지와 불순물들이 동동 뜬다.

그것들을 건져내고 상한 앵두는 골라서 버리면서 흐르는 물에 앵두를 씻는다.

깨끗이 씻은 앵두를 체에 담아 물기를 뺀다.

앵두를 씻는 일만 해도 한참 걸렸다.


앵두청을 먼저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앵두씨를 하나씩 일일이 빼내기 시작했다.

밤이 될 때까지 단조로운 이 작업을 몇 시간 했는데도 씨앗을 빼낸 앵두과육은 작은 병의 반도 채우지 못했다.

시계를 보니 이 속도라면 밤을 꼬박 새우겠다 싶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앵두씨를 하나씩 빼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이번에는 앵두들 그대로 작은 병 여러 개에 설탕을 부어서 앵두청을 담았다.

그러고 나서도 앵두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잼 만들 때 씨앗을 발라내는 작업이 까다롭고 힘들다는 것은 지난번 포도잼을 만들 때 이미 경험해서 잘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앵두잼 만드는 것만은 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결국 앵두잼을 만들어야 이 많은 앵두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남은 앵두들과 남은 설탕을 오쿠에 넣고 몇 시간을 가열했다.

설탕은 앵두의 절반도 넣지 않았다.

건강한 입맛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의식 있는 사람처럼 포장될 터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설탕이 모자랐다.

오쿠의 조리시간이 끝나게 되면 잼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푹 익어서 문드러진 앵두가 맑은 앵두 과즙 속에 담겨있는 모습이다.

이것들을 다시 냄비에 옮겨 담고 불 위에서 졸이는 두 번째 단계, 체에 밭쳐서 과육에서 씨를 발라내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체에 밭친 앵두들을 포테이토 매셔(감자 으깨기 도구)로 눌러주면 반쯤 씨앗이 드러난다. 그다음에는 실리콘 알뜰주걱으로 닦아내듯이 체에 세게 눌러주며 앵두를 밀어내면 더 많은 과육이 체밑으로 흘러내려 잼으로 만들어질 과즙이 더욱 걸쭉해진다.


씨앗을 발라내는 단순한 노동을 계속하는 동안 무념무상에 빠지며 사고의 회로가 멈춰버린다.

일명 멍 때리기. 나는 평소에도 멍 때리기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반대로 눈과 손, 팔과 다리는 분주하게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약한 불에 계속해서 졸이자 잼의 농도는 더 찐득해진다.

길고 긴 지루한 작업은 퇴근한 이후 시간으로 이틀에 걸쳐서 이어졌고, 냄비로 두 번 앵두잼을 만들어 내었다.




앵두잼을 만들다가 30여 년 전의 앵두나무 추억이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지금과는 달리 내가 OO여고 다닐 때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학생들만 있는 곳이다 보니 보이시한 어떤 친구는 연예인처럼 친구들로부터 편지와 선물을 많이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인싸'에 속하던 그 친구는 '아싸'에 속하는 나하고는 별 다른 접점이 없어 친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일이 있었다.

우리 집은 시골에 위치하고 있어 학교와 멀고 교통도 무척 불편한데도 그날 우리 집에 갑자기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어렵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온다는 사실은 꿈같기도 해서 살짝 흥분되기도 하였다.

막상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니 우리 집에는 마땅히 놀 거리가 없어서 당황스럽고 걱정되었다.

뭐 하고 놀지? 하고 둘러보는데, 마침 우리 집 앞마당 앵두나무에 앵두가 잔뜩 매달려 있었다.


“우리, 이거 따도 돼?”

“그럼!”


앵두를 발견한 그 친구와 나는 신나게 떠들면서 열심히 앵두를 따면서 놀았다.

집에 갈 시간이 되자 별 달리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워하는 나에게,


“나, 오늘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 진짜야.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


나와 그 친구가 그 이후로 극적으로 친해지거나 잘 지낸 기억은 특별히 없지만, 그 친구와 나 사이의 즐거운 추억 속에는 빨간 앵두가 잔뜩 매달린 앵두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친구와의 추억이 갑자기 떠오르자 친구의 얼굴, 이름, 표정, 말투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30여 년 동안 잊고 있었는데, 기억이라는 것은 참 신비한 영역이다.




말갛게 빨간색의 예쁜 앵두청과 앵두잼


3일 동안 상온에 놔두었더니 앵두청의 설탕이 녹고 삼투압현상에 의해 앵두의 과즙이 우러나오며 말갛게 밝고 붉은 앵두청이 만들어졌다. 때깔이 정말 예쁘다.

앵두잼은 딸기잼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색깔인데, 딸기잼보다는 훨씬 새콤한 맛이 강하다.


3일 밤낮을 이 고생을 하고 만들었는데... 맛있어야 해피엔딩이다.


앵두청에 얼음, 물만 넣어 큰 애한테 주었는데, 맛이 있다, 없다, 아무런 말이 없다.

맛이 어떠니? 하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정말 아무 맛이 없나 보다.

한 모금 마셔보니 앵두청 만들 때 설탕을 적게 부어서 그런지 밍밍하고 싱거운 느낌이다.

꿀을 더 타거나, 시원한 탄산수로 만들어서 주었으면 더 좋아했을 것 같다.

다음에는 그렇게 만들어줘야겠다.

앵두를 입속에서 굴려가며 씨앗을 발라 열심히 과육도 씹어 먹었다.

나의 지난 시간 수고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둘째가 식빵에다 앵두잼을 발라 먹는다.

맛 감별사이자 입 짧은 둘째가 간단명료하게 맛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앵두잼, 맛없어.”



남편은 나의 수고를 알아서인지 “아냐, 앵두잼 맛있는데?”라고 말해준다.

“설탕이 부족해서 덜 달아서 그래...”

나는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 입꼬리와 눈가는 냉정한 둘째의 평가에 중력의 힘을 더 탄력 받아 아래로 처지며 슬픈 표정이 된다.


어렵게 3일 동안 만든 앵두잼과 앵두청 이야기 끝은 아쉽게도 해피엔딩이 아니고 새드엔딩이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맛있었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