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문학동네
이과적 감성이 풍부한 작가가 유머와 위트를 곁들여서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 천문학에 대한 원시적인 열정과 순수함을 써 내려간 에세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별을 사랑한 나에 대한 기억, 별에 대한 기억이다.
별을 사랑하는 자, 별을 바라본다.
어릴 적 시골에 살던 나는 별들을 본다고 밤하늘을 참 많이 올려다보았었다.
그 시절 밤하늘은 지금과 달리 맑고 깨끗하였기에 별들이 매우 잘 보였고, 까만 종이에 하얀 물감을 흩뿌린 듯 셀 수 없이 많았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밤이 되면 자신의 존재를 빛으로 드러내었고 그 별빛은 언제나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별빛이 몇십 억 광년을 통과하여 다다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주의 광활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였다.
망원경(집에 있던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별들이 축구공처럼 동그란 구로 보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관찰 놀이였다.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면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아픔과 괴로움, 불안과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먼지처럼 사소한 것으로 느껴졌다.
별과 어린 왕자와 장미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언뜻 떠오른다. 그때 나는 별빛처럼 찬란하고 빛나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옥상에 누워 발견한 돌고래 별자리를 찾은 기쁨을 만끽한 작가의 마음이 무엇인지 나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나의 어린 시절 여름밤 풍경에는 벌레들의 울음소리, 이따금씩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 나방들과 날벌레들이 불빛을 향해 무수하게 그리는 궤도의 곡선들, 밤하늘 깜깜한 공간을 가득 채운 별빛들이 있었다.
"별들은 아름다워. 그건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일 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그렇구나. 집이든 사막이든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별을 바라볼 때 어린 왕자가 한 말들을 자주 떠올렸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 왕자에 대한 시각과 접근은 문과적 감성과는 결이 다른 것이어서 이 책에서는 영 다른 느낌으로 어린 왕자가 등장한다.
작가의 수학적 계산력과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재치와 유머를 살짝 더하여, 천문학적 시각에서 어린 왕자가 노을을 계속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어떻게 의자를 이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추측하는 논리를 펼친다.
이것은 어쩌면, 장래 유망한 과학자의, 천문학자의, 이과 전공자의 이과적 감성이고, 이과적 유머코드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문과 전공자였던 나로서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말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과로 선택을 하고, 자연대학 그중 천문학을 전공하고, 나아가 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특별하고 인상적인 계기는 없었고 '어쩌다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고 수줍게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어느 수업시간 '연주시차'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과학 선생님이 칠판 위에 찍은 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칠판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학생과, 칠판과 먼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에게 점이 몇 개로 보이는지 물어보는 선생님의 열정이 어린 눈빛과 태도에서 작가는 '연주시차, 그게 뭐라고?' 라는 질문과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연주시차 - 지구가 태양을 공전할 때 별의 위치가 미세하게 변하는 현상을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는 천문학적 방법입니다. 6개월 간격으로 관측한 별의 위치 차이를 각도로 환산해 삼각법으로 계산합니다. - 네이버 AI 브리핑 참조]
쉽게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수업은 작가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 궁금증을 원동력으로 삼아 품게 된 과학에 대한 열정은 지구과학 경시대회 입상, 천문학 전공으로 이어졌고, 인공위성을 관측하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자연대 건물 옥상 천문대에서 낭만을 느끼며 학부 시절부터 교수님의 연구실에 함께 하면서 교수님이 자원자를 찾을 때 감히 손을 번쩍 드는 용기를 갖게 하였다.
137번째 좀 전까지 반복된 작업을 하고 나서도 즐겁게 138번째 작업을 새롭게 해낼 수 있는 힘을 발휘하게 한 것은 바로 이 열정에서 나온다.
작가의 직업은 과학자, 그중 천문학자이고, 행성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면서 교수이다.
학생들이 천문학, 우주에 대한 과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도 그의 본질적인 업무 중 하나이다.
작가는 학생들의 학문적 태도가 더 진중해지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찾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지혜롭게 이끌어내고 순수하게 응원해 준다.
학문이 무엇인지, 학문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 본다.
표현이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함부로 남의 아이디어와 결론을 짜깁기하여 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천문학자는 망원경으로 별만 쳐다볼 것 같은데... 이러한 내 생각을 반박이라도 하듯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천문학자는 별을 바라보지 않는다'이다.
천문학자의 일상은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망원경으로 별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인공위성에서 보내준 정보가 컴퓨터에 숫자와 그래프들로 나타나고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씨름하는 일, 차이점과 변화를 알아내고 이유를 분석하는 일, 미래의 시점에서 그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사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 전공자가 아닌 대화자가 과학자와 대화할 때 필연적으로 느낄 그 괴리감을 대놓고 드러낸 채, 과학자들의 일상과 에피소드, 과학자들의 현실과 미래를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요즘 현안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며,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특히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우주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들에 대하여 상냥하게 설명해 주어 일반인들이 가지는 과학에 대한 장벽을 낮추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작가의 이야기와 설명을 한없이 따라가다 보면 과학, 특히 우주에 대한 학문인 천문학은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우리들도 우주, 과학, 과학의 미래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 마음에 드는 문장 ]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그러다 보니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즐거운 지루함이 자연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내가 어린 왕자라면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소행성이 자전하는 속도에 발을 맞추어, 지평선 위에 살짝 걸려 있는 해를 향해 하염없이 걸어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 속으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때까지.
명왕성, 그리고 자신보다 더 작은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
신갈 호수와 매미산 사이로 살짝 떠오른 작고 희미한 돌고래자리, 내 기억력과 시력을 동시에 의심하며 머뭇거리다 마침내 확신을 얻었을 때의 어린애 같은 기쁨. 그렇게 배운 별자리는 잊을 수가 없다.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작은 구두점이지만, 어느 별 볼 일 없는 천문학자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거대한 도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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