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Harvard Business Review 2017년 1, 2월호의 아티클 "Customer Loyalty Is Overrated"의 내용을 정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 글입니다. -
by A.G. Lafley and Roger L. Martin
2016년 봄, 잘 나가는 사진 공유 서비스 인스타그램은 로고를 변경합니다. “인스타!” 하면 떠오르는 복고 스타일의 카메라 이미지를 버리고 현대적인 플랫 디자인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죠. 나름대로 현재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브랜드를 쇄신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새 로고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허접스러운 모조품(travesty)’, ‘쓰레기’, ‘불량식품을 떠올리게 하는 컬러’ 등 비판과 조롱이 이어졌습니다.
바뀐 로고가 인스타그램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는 기업이 브랜드를 쇄신한다고 헛발질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펩시코는 야심 차게 다이어트 콜라를 내놨다가 본전도 못 뽑았습니다. 코카콜라는 새로운 맛의 콜라(New Coke)를 출시했지만, 결과는 재앙으로 돌아왔습니다.
비유하건대, 이 사례들은 호주 오픈에서 얼마 전 우승한 로저 페더러가 뜬금없이 앞으로는 양손 백핸드로 폼을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페더러는 우아한 한 손 백핸드로 유명하죠). 멀쩡하게 잘 나가는 기업이 엉뚱하게 리브랜딩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들은 그 근본 원인이 경쟁우위의 본질을 오해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경영학자들은 급변하는 현대에서 어떠한 경쟁우위도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이 승자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기업은 끊임없이 쇄신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죠. 매년 시무식에서 듣는 회장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지 않나요?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의 경영자들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마땅히 자기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문제는 “변화를 주도해야 이긴다”라는 생각이 현실에서는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 사례를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이케아, 뱅가드와 같은 기업은 장기간 전략과 브랜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업계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기업도 각자 주력 서비스에서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미국 1위 세제 브랜드 자리를 지켜온 Tide는 “변화를 주도해야 이긴다”라는 주장을 멋쩍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자들은 행동과학 연구에 기반을 두어 경쟁우위의 본질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기업의 성과는 고객에게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쉬운 선택’을 제공할 때 유지된다 (performance is sustained not by offering customers the perfect choice but by offering them the easy one).” 여기서 ‘완벽한 선택’은 고객 요구에 딱 맞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합니다. ‘쉬운 선택’은 고객이 별 고민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말합니다. 저는 마트에 가서 콩나물을 살 때 풀무원 제품을 찾습니다. 다른 회사 콩나물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비교하기 귀찮아 풀무원 콩나물을 별 생각 없이 카트에 담습니다. ‘쉬운 선택’의 예입니다.
이런 주장에 의하면, 경쟁우위는 고객의 변하는 요구를 지속해서 좇아가 만족하게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객이 고민 없이 습관적으로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현 상태를 잘 유지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습니다. 이렇게 고객의 선택을 습관으로 전환할 때 기업은 ‘누적우위(cumulative advantage)’를 갖게 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기업의 경쟁우위는 누적우위 창출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전통적인 경쟁우위는 ‘완벽한 선택’을 강조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타겟 고객의 요구에 더 완벽하게 부합하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반복 구매가 일어나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논리는 ‘이성적인 소비자’를 전제로 합니다. ‘이성적인 소비자’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옵션마다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최대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고릅니다. 고전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자 모델입니다. 하지만, 현대 행동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매우 게으른 존재입니다. 우리 뇌는 분석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면 직관에 의존해서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직관은 경험의 산물입니다. 경험은 곧 익숙한 것, 우리가 과거에 선택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선택을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마치 제가 습관적으로 풀무원 콩나물을 카트에 담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인간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쉬운 선택’을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쉬운 선택’에 해당할까요? ‘쉬운 선택’의 핵심은 익숙함입니다. 우선, 익숙함은 직접 경험을 통해 생길 수 있습니다. 아이폰5를 써봤기 때문에 아이폰7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익숙함은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자리 잡기도 합니다. 광고와 입소문,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습 등이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 뇌에 접수되는 것이죠. 그렇게 각인된 브랜드는 부지불식간에 구매 결정을 좌지우지합니다. 브랜드의 힘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그 중에서도 1등 브랜드는 생각하기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더 없이 ‘쉬운 선택’입니다. 그래서 1등 브랜드는 더 많은 사람이 선택합니다. 구입은 또 다른 구입으로 이어지고 습관화되어 효과가 누적됩니다. 그런 패턴이 장기간 반복되면 1등과 2등 브랜드는 격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30년 전 미국 세제 시장은 1위 Tide(시장점유율 33%)가 2위인 유니레버의 Surf(시장점유율 28%)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는 점점 벌어져, 현재 Tide는 여전히 40%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누리는 반면, 유니레버는 Surf를 매각하고 세제시장에서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단리보다 복리 저축상품에서 이자가 훨씬 많이 불어나는 것처럼 ‘누적우위’는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누적우위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저자들은 4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