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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가 권서경 Sep 18. 2022

현실을 위한 최고의 원료는

“현실성”은 내가 삶에서 크게 중점을 두면서도 귀에 담으면 은연중 진저리치고 마는 말이다.

사실 가끔 스스로를 고찰할 때면 여전히 내가 현실주의자인지 이상주의자인지 정의 내리기 혼란스럽다.

타고난 공상적인 성향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해도(순수함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메마른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아등바등 외면해온 결과라 해야 적절하겠다) 나이가 들면서 전보다는 현실을 따지게 되었다. 필연적인 변화다. 지금도 툭하면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하지만 어쨌든 다방면에서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현실은 나를 피터팬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로 상담 시간에 연기 전공으로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일갈한 담임선생님은 그때 내 어떤 현실을 내다보셨을까.
오랜 꿈이 꺾였을 때,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며 상심에 빠져있을 틈을 주지 않은 어른들은 다른 무엇보다 내가 현실주의자가 되는 데 일조해주셨다.

눈앞의 현실을 생각하라는 지적에 이제는 “나는 지금 누구보다 현실적이야”하고 되받아치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일 힘은 이상을 꿈꾸는 상상력에서 오는 게 아닐까, 반론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나를 뒤늦게나마 변론해본다.
꿈꾸던 시절의 나는 적어도 지금보다 고난에 대한 면역력이 강했다. 무언가 좌절돼도 다시 이상을 그리며 새로운 희망을 쥐었고, 그 희망에 취해 자연히 회복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좌절과 실패에 취약한 것도 납득이 된다. 30대의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을 능력을 잃은 것 같다.

언제나 꿈꾸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는 아무개의 말은 현실을 살아낼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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