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 차오르거나 설레거나 / 2025. 9. 28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1849년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던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로서 우리나라에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 음악가 박태원이 우리의 정서에 맞게 노랫말을 번안해서 보급했다.
보름사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시간은 느슨함을 모르는 듯 성실히 계획된 순서대로 좀 더 깊은 가을로 우리를 떠밀어 넣는다. 가을비가 제법 내린다.
주말 부모님이 계신 집 나의 방에 누워 듣는 빗소리는 제법 요란하다.
지면에 닿아 들리는 빗소리에 더해, 건물 어딘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플라스틱 구조물에 닿아 증폭되는 낙숫물 소리는 마치 기타와 드럼이 있는 밴드 연주 같다.
그 빗소리를 듣다 보니 클레멘타인 노래의 '오막살이 집 한 채'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재개발 이주가 시작될 날만을 기다리는 오래된 동네의 낡은 부모님 집은 평수와 상관없이 오막살이 집 한 채 같은 느낌이다.
십수 년 전인 거 같다.
봄날(春日) 선배님이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사이트(site)를 둘러보다 황골(지명) 수변에 있는 어느 어부의 허름하고 작은 오막살이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야반도주한 사랑하는 남녀가 살법한 적당한 곳이라고.
산길을 걷다 쉬어갈 즈음 당도하게 되는 이곳은 길고 좁은 길을 끝으로 공간이 확 열리는 곳으로 제법 아늑하기도 하며 북한강 물가에 인접해 있어 정말 뭘 해도 좋은 곳이었다.
해서 당연히 예술 프로젝트하면 최고겠다는 반응을 기대했던 나는 선배님의 뜬금없는 낭만적인 표현에 순간 네? 하며 눈만 꿈뻑였었다.
공간에 이야기가 덧붙여지면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그곳이 된다.
사랑이나 죽음 같은 궁극의 단어들이 얽혀 있는 공간은 더 그러한 거 같다.
황골에 있던 물가의 작은 집이 사연이 있어 야반도주한 사랑하는 남녀의 도피처일 거라는 상상처럼,
거동할 기력마저 쇠잔해져 누워 계시는 아버지와 틀어진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여 아버지를 보살피는 늙은 어머니가 사는 이 집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마지막 집이 될 거라서 일까?
가을비 내리는 오늘 이 집이 왠지 더 특별해진다.
그리고 내게는 지친 한 주를 보내고 쉬어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우리집이기도 하니 말이다.
가을비 내리는데 봄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