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 차오르거나 설레거나 / 2025. 10. 17
태풍이 오지 않아서라고 하던가? 올해 가을은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가기로 한 여행날도 어김없이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떴다.
날짜를 미뤄야 하나 하고 주춤 거리는 사이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날 비 올 것 같은 데라는 나의 문자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가지 머라는 친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나는 급히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언제부턴가 어떤 이유던 약속 어기는 것에 대해 예민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심히 싫어지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로 나 또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는 지역이 달라 우리는 각자 출발하여 속초에서 만나기로 했다.
생각보다 낮은 온도에 으슬으슬해진 우리는 비 오는 날 속초의 바다를 빠르게 훑고는
뜨끈한 옹심이 국물을 떠먹고 바로 숙소로 직행했다.
첫날은 식사시간 외에는 숙소에서 뒹굴거린 하루였는데
그래도 나는 우산을 쓰고 짬짬이 바다로 달려가 속초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과 함께 해변 자체의 풍광이 뿌연 허니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바다의 하얀 포말과 파도소리에 꿈이 아닌 생시구나.
바다와 해변 사진을 계속 찍었는데 내가 느낀 풍광을 담을 수 없었다.
꿈결처럼 찰나의 순간처럼.
다음날은 늦은 아침을 먹고 설악산으로 향했다.
가끔 들러 울산바위를 멀리서 본거 외에 설악산을 오르는 일은 거의 십 년 만인 거 같다.
항상 인산인해의 설악산을 방문했었는데 정말 사람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를 북적거리는 파티에서 만나는 것과는 달리 1:1 미팅을 하는 느낌이랄까?
적당한 빗줄기로 끊임없이 오는 비속을 걸으며 천천히 흔들바위까지 올라갔다.
산의 냄새와 소리 그리고 풍경이 오롯이 내게 들어왔다.
잠깐 신흥사를 들렸는데 빗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음색의 염불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흔들바위 앞 계조암의 삼성각 처마밑에 앉아 한참을 비 오는 산을 바라보았다.
설악산 품에 안겨 맘을 편안하게 한 하루였다.
여늬때와 다른 바다와 산을 만났다.
비가 오더라도 길을 나선 여행자의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