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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Jul 30. 2024

선택의 선택

대전후기(3): 존중 받지 못한 남편의 대응.raw

선택의 선택


요즘은 화목하신 가봐요?  
'대전후기'가 안 올라오네요?


- 그럴리가요.




#1

지난 주,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거실의 가구들을 옮겼다*.

내가 대여섯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아내와 함께 정한 위치인데, 아내는 한 가지가 맘에 안든다며 일단 옮기고 보는 성향이 있다.

거실책장 옆에 있던 아이들 장난감 수납장이 옷방으로 들어가고, 침실에 있던 옷장도 하나 드레스룸으로 갔다. 아내의 정리전략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넓은 공간은 더 넓어지고, 작은 공간은 더 협소해진다.

그리고 함정이 있다. 그 협소해지는 공간이 내가 정리해야 되는 공간이 된다.


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재우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2-3시 경 60%정도 충전된 몸이 의식을 깨운다.

(남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일까 싶지만 이 정도로만 표현한다)


샤워를 하고 머리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려 책상이 있는 방으로 갔다.

책상 위엔 아이들 장난감 수납장 위에 있던 멀티탭과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많은 충전에 필요한 선들, 그리고 잡동사니가 놓여있었다.


작업공간을 존중 받지 못하는 무명작가지망생의 서러움이 순간 화로 올라오려 한다.

하지만 1초 후.

'그래... 치우느라 정신 없었겠지. 뭐 이 책상이 너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


밤에 책상 위를 정리하다가 난 소음에 막내가 또 칭얼대며 깰까봐 그냥 그 방에 드러누워 킨들을 들었다.

그렇게 원고를 쓸 시간이 킨들로 책을 읽다가 잠이 든 하루가 되었다.




#2

두번째로 공개한 곡 <Fl,y Fly, Bye>를 업로드 한 후, 그 가사가 적혀있는 옛 노트를 찾았다.

https://brunch.co.kr/@thewholeiceberg/96


과거의 다이어리와 공책들이 모여있는 '슈 박스' 안에서.


이제 ‘자기 곡의 가사를 받아쓰기 해야 하는’ 아이러니함에서 졸업하게 되나 싶어 기뻤다.

책상위의 자료조사용 책들 옆에 두었다.

그 가사가 있는 페이지를 핸드폰으로 찍고, 나중에 또 뭐가 있을 지 읽어보기로 하고 이틀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2010년 후반에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는 <Blue Box>라는 곡을 업로드 하기로 결정하고, 가사를 찾으려 공책을 찾아보았다.


…사라진 공책.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그 공책을 가지고 가위질 하는 걸 봤다고 한다.

읽어보니 일본어랑 영어로 뭐가 쓰여진 걸 본 것 같다고 한다.


거실정리를 하며 함께 종이상자 속에 "쓰레기'로 분류 되어 재활용쓰레기장으로 간 것으로 추리가 되는 순간.


아내는 오래된 공책이라 버려도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나보다

(2010-2011년에 쓰여진 공책이니 13년의 시간을 살아남은 소중한 기록인데)


화를 내고 싶지만, 이성은 건재했다.


아내는 '진술'을 여러 차례 바꿨다.

'안 버렸을텐데..' '안 버린 것 같은데'.. 책장에 둔 것 같아'....


그리고 바로 태세전환.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관리해야지!!


내가 거실에 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쉽게 닿지 않는 높이의 책상의 구석에 있었다.  

(수동으로 높이조절 가능한 이케아 책상이다)


아내는 평소에 정리를 할 때, 장난감과 책에 대한 구분없이 (내가) '이삿짐센터' (라고 부르는) 방식의 정리를 선호한다. 일단 불도저처럼 깨끗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쪽으로 다 밀어내는 거다. 그 과정에 아이들 책들이  훼손되기도 하는데, 어차피 남들이 준 책이라 아깝지 않게 느껴지나보다.


아이들의 책을 정리하며 조용히 공책이 있는 지 찾아본다.

없다.

아마 아내 정리 패턴으로 미루어보아, 버려진 것 같다.


지난 번 작업책상에서 겪은 감정이 얹혀진다.

화를 내기는 싫고, 유머러스하게 그러나 뼈는 있는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당신은 기본적으로 내 창작을 존중하지 않는 거 아닐까? 그러니깐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이 말에 기분이 나빴나보다.

화를 낸다.

왜 자기 물건 간수를 안하고 자기가 남편 물건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하냐며.


"내 공책이란 걸 알고, 그게 나한테 소중한 거라고 알았으면 바로 따로 치워놨을텐데, 그냥 애들이 놀게 뒀잖아. 그게 존중하지 않는다는 표현 아니야?"


안 버렸을 거라고 자기 추측을 강조한다.

내가 왜 오빠 공책을 버릴 거라고 생각하냐고 한다.


(음...지금까지 사야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그냥 종이쓰레기에 분류하는 걸 봐와서...?)


화를 내도 의미 없다는 걸 알고, 괜한 화풀이가 부부사이에 좋을리가 없으니 이건 빨리 'water under the bridge(엎질러진 물)' 카테고리에 넣어야 했다.


.

..

...



그게 일주일 전의 일이다.

나의 공책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이제서야 아내는 '버렸을 수도 있겠다'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중이다.  


애들 책장 정리를 하다, '본체'에서 떨어진 커버 한 장만 발견했다.

(좌) 토막'살책' 당한 커버의 잔해 (우) 처음 발견했을 때 반가워서 찍었던 가사 초고. 변명을 하자면, 맘 잡고 쓰면 저것보다 훨씬 예쁘게 쓸 수 있는 폰트도 보유하고 있다.

인정한다.

이런 디자인의 공책에 못 쓴 글씨가 가득한 것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은 발견자의 문학성 혹은 창작성에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아내는 클래식은 현악기가 있으면 싫고, 재즈는 술집 분위기라서 싫다하고, 내가 만든 rock은 시끄럽다고 한다. 애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줄려고 틀어놓으면 그게 시끄럽다고 화를 낼 때도 있다. 아내에게 적절한 볼륨은 ‘들릴까 말까’ 이다.




#3

난 화를 내는 것도 싫고, 화를 낸 사람을 달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싫다.

아이들 돌봐야 하는데 싸우고 아내 달래느라 시간을 소모하다 보면 어느 구석에 가서 아이가 다쳐있는 걸 경험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애들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이론도 사야의 행동을 통해 체험한 바 있다.

요즘은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면 (아빠는 원래 논쟁이 벌어져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아빠가 뭐 잘못한 줄 알고 아빠를 때린다.


아무튼 싸움이라고 할 것 없이 아내가 내 공책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마무리 지었다.


아내와의 갈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이 사과해야 마무리 된다.

남편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이다.

사회생활을 위해 회사에서 상사에게 잘못한 거 없을 때 사과하는 거 연습했으면 가정에서도 그 스킬 종종 활용해도 된다. 가성비 좋은 활용법이다.


나는 화를 내지 않는 선택을 했고, 평화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화를 내는 불편한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 주말은 엄마와 아빠가 유난히 "따뜻히" 보냈다는 엔딩이다.


자기가 만든 노래가사 받아쓰기 하는 게 뭐라고.

내가 무슨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내 공책이 헤밍웨이 공책 마냥 취급 받아야한다고 근거없는 존중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뭐가 더 중요한 지 잘 알고, 제대로 선택했다.


내가 한 선택들이 날 선택한다.


공책의 소실로 13년전의 감성과 추억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현재가 있고, 그 안에 가족들이 있다.

난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또 혹시 누가 아는가.

그 공책에 일어로 적혀진 감성에 아내가 용납하지 못할 낭만이 있었을 줄.

(가능성 높은 가설이다.)


이젠 증거가 인멸되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Writer's Now

거리를 두고 봐야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그 시기에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글도 있는 것 같다.

- 거리를 두고 봐야하는 글의 대표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소설은 아직 대학시절에 시나리오 위해 써 본 것 하나 밖에 없다. 남아있는 건 PDF버전이고, 이걸 문서파일로 변환해보니 다 깨져서 재작업이 필요하다. ) 하지만 연재글에서 겪은 걸 보면 확실히 시간을 두고 또 보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더 나은 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양이 늘어나는 문제를 겪고 있는 초보이다. 원래는 양이 줄어들어야 정상이라고 배웠다.)

- 어떤 에세이나 시는 다른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순간의 감정과 기억이 생생할 때만 쓸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된다.
(5월에 처음 아이들과의 동물원을 갔을 때 일도 서랍에서 묻혀지고 있다.)
오늘은 이 '선택의 선택'이란 주제가 1주 정도 맴돌다가 연재글 발행시기를 놓친 김에 편한 글쓰기 주제로 골랐다. 

-허리가 많이 아프다. 살짝 피사의 탑이 되었다. 그것도 좌우로. 
둘째를 키우다가 아플 때 생긴 증상인데, 요추의 끝, 꼬리뼈부터 이어지는 통증에 근육이 뒤틀어져서 좌우로 S가 될 때가 있다. (쉬면 돌아온다) 
 
지난 주에 아팠던 아이들을 돌보느라 몸이 무리를 한 것도 있고, 지난 번 공개한 곡 'rainy days~' 에 어울리는 영상소스를 확보하고자 셋째를 안고 오랫동안 삐딱한 자세로 영상을 촬영한 것도, 그리고 누워서 자야할 시간에 전혀 편안하지 않은 간이의자에 앉아 책상 밑 서랍장이 무릎에 닿는 불편한 책상에 안 좋은 자세로 앉아 글을 쓴 것도 원인 중 하나겠다. 허리가 엄청 아픈 상태이다.

그래서 어제 엎드려 누워서 연재글 마감일을 맞춰 글을 쓰다가 포기했다는 이야기이다.
연재글을 완성 못한 사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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