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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Sep 16. 2024

너와 단둘이 5박 6일: By Your Side

카와사키병 vs. 지은

병원에서의 입원기간, 지은이와의 시간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 브런치작가로서의 본분(?)이 기록일까 싶어 그 기억을 텍스트로 옮겨 보았습니다. 저에겐 일상의 감사함을 되새기게 하는 기록일 될 것 같아 차근차근 적어보았고, 함께 걱정해주신 동료작가님들에게도 의미 있는 나눔이 될까 하여 짧지만 길었던 그 시간을 브런치 공책에 남겨봅니다.

Prologue: D+6 FRI afternoon


“아빠, 호비 틀어줘. 호비!!”

뒤에서 5일째 계속되는 39도 후반대에서 40도를 오가는 고열과 친구가 된 지은이가 말한다.

아파도 원하는 건 확실한 둘째.


차에 타기 전 소아과에서 들은 ‘카와사키 병’이라는 소견에 쿵쾅거리던 아빠 가슴.


“소견서 써 드릴 테니까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평소처럼 빨리 냉철한 위기대처 모드로 돌입해야 하는데 오늘은 유난히 전환이 더디다.

하루의 3/4를 가족들과 함께 통근시간을 포함해서 6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아이와 함께한 부작용일까.

옥시토신 레벨만 올라간 게 아니라 에스트로겐 레벨도 같이 올라와 있는 건지,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갱년기는 멀었는데.


첫째 아이 임신 6주 차를 확인받고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냉철하게 잘 대처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___


첫째가 1500일 둘째가 1000일 셋째가 300일을 넘게 된 지 한 달 정도.

아직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픈 아이를 차에 태워 응급실에 방문한 적이 없다.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있을 거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노력한 것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술적으로 열은 정상적인 면역반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아이들이 돌을 지난 후에는 39도가 넘어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또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물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내에 늘 정상체온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언니와 같이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언니가 나가고 싶다고 하는데 더 놀고 싶다고 한다.

‘물놀이를 오래 해서 감기가 걸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물 밖의 몸을 만져보니 아직 따뜻했다.

언니에게 옷을 입히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혼자 욕실에 두었다.

2개월 후면 만 3세가 되는 둘째의 지능과 분별력을 믿었다.


그렇게 15분-20분을 더 놀고도 물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만 2세.


그날 밤 시작된 39도 중후반대의 열은 우리 부부에게 큰 경각심을 부르지 않았다.

늘 하루 밤 자면 정상체온을 회복하는 튼튼한 아이였으니.


아내는 늘 걱정하며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고 해열제를 먹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난 열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몸이 병균/세균과 싸우고 있는 면역 반응이라는 걸 여러 번 설명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만 3세가 된 이후 ‘병원에 가도 7일, 병원에 안 가면 1주일’이라는 감기치료기간에 대한 ‘실험’을 3번 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후, 한 달에 한 번은 감기에 걸렸다.)

그렇게 탈수에 주의하고, 기관지염으로 발전하는지 기침소리에 주시하고, 발열기간을 염두에 두면서 회복을 기다렸다.


평소 식단에 꿀, 배도라지 즙을 추가하고 과일 늘리기 정도가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늘 4-5일 내에 회복되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D+4 WED


일요일 밤에 시작된 발열은 4일 차인 수요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아이 컨디션도 괜찮고 식욕도 운동기능에도 이상이 보이지 않아 교차복용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아세트아미노펜에는 한 번 반응해서 38도 중반대로 떨어졌지만 그 후로는 해열제가 듣지 않는다.  아세트아미노펜의 주기에 맞춰 하루 2-3번 복용했던 게 전부이다.


지속되는 고열을 증상으로 수반하는 질병들을 살펴보고 비교해 본다.

수족구가 유행하는 시즌이었지만 손발에 발적(redness)은 없다.


3일 이상 계속되면 병원에 가보는 게 안전하니 근처의 소아과에 갔다.


소아과에선 손발을 살펴보고 목을 보고 코를 보고 귀를 살펴본다.

목이 좀 부어있고, 가래도 조금 있단다. (없는 것 같은데)

귀도 멀쩡하니 중이염은 아니다.


페니실린계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 또 약물에 소화기능에 영향을 미칠까봐 주는 유산균 등이 포함된 종합세트였다.

교차복용을 위한 해열제도 큰 병으로 두 개 처방해 주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약 먹어보고 금요일에 다시 보죠’.


아이를 차에 태우며 물었다.


“지은아, 별소아과 선생님이 좋아? 여기 선생님이 좋아?”


-여기


“왜?”


-선생님이 예뻐서


유부남인 아빠 눈엔 둘 다 비슷하여 감별이 어렵다.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이유를 물으면 ‘예뻐서’ , ‘좋아서’라는 걸 “그냥”처럼 사용하는 언어발달단계이니 흘려듣는다.



차를 타니 지은이가 다시 보챈다.


“아빠, 호비 틀어줘.”


‘호비의 놀이극장’(아이첼린지)는 아빠가 인증한 건전한 콘텐츠이다.

2열에 영상시청이 가능한 모니터가 달려있는 중고차를 샀지만, 한 번도 켜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차에선 음악을 듣거나 영상콘텐츠의 오디오파일을 듣는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밥도 잘 먹었고, 해열제를 먹더니 쌩쌩해진 건지 평소만큼 신나게 언니와 동생과 논다.


이제 엄청난 속도로 기어 다니는 막내는 벌써 누나들과 잡기놀이의 술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내 오른쪽에 지은이 왼쪽에 사야가 눕고, 연결된 패밀리 침대에 아내와 막내가 누워 잠을 잔다.


둘째 지은이 수준에 맞는 짧은 책 한 권으로 시작해서 첫째 사야 수준에 맞는 긴 글이 있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패턴이다. 첫째는 책을 읽어줘야 잠이 들고 둘째는 책을 다 읽어준 후 불을 꺼야 잠이 든다.



요 며칠 밤에 계속 목이 마르다며 깨서 물을 먹던 둘째.

약을 먹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물병을 안고 자다가 깨서 외친다.


“아빠, 물 먹을래”


-’쉿, 언니랑 동생 자니깐 조용히-’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드러누워 다시 잔다.


종종 성질이 있어 보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순둥이다.




D+5 THU


아이들은 평소에 눈이 뜨면 뭔가 생각난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고 거실로 달려간다.

어제 안고 잠든 인형이나 장난감, 어떤 때는 정말 공감되지 않는 종이쪼가리나 구겨진 색종이를 보물 찾든 찾는 성향이 있다.


그날은 달랐다.

졸리다며 일어나지 않는다.

졸려서 눈이 풀린 건지 아니면 고열에 힘들어하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MSD Manual(링크​)에서 얘기하는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에 부합해지고 있었다.


팀장님께 카톡으로 아이가 아파서 휴가를 쓰겠다고 전했다.


그날은 그렇게 지은이 옆에서 붙어있었다.


‘졸려’ 하고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거실로 데려가 아침을 먹이고 약을 먹였다.


‘쉴 거야’ 라며 거실에서 놀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나오지 않는다.


아빠도 옆에 누워 있으란다.



손발을 보니 손바닥과  붉어졌다.


‘역시 수족구인가?’


하지만 사진에서 봤던 수포와 다르다.


마침 일요일에 만나서 함께 활동을 한 아이 부모가 단톡방에 자기 집 아이도 열이 안 잡혀서 병원에 가니 수족구였다고 남겼다.



‘수족구겠네. 그럼 첫째랑 막내한테도 옮겠네..?’


그런데 둘 다 멀쩡하다.


막내는 엄마의 모유를 통해 면역력을 업데이트 중인 상태니 큰 걱정을 안 하는 편이다.

코로나19에 걸려도 아가는 모유만 먹어도 낫는다는 기사가 기억에 남아 있어선 인가.



졸리다고 하면서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아직 95cm의 키.

작디작은 손이 아빠가 옆에 있는지 계속 찾는다.


문득 불안이 기어 올라온다.


아이의 연약한 모습이 인간의 생명의 연약함을 느끼게 했다.

이 숨소리가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

그건 우려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의 범주 안에 있는 ‘인생사’의 한 부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의사 선생님이  금요일에 오라고 했으니 하루 더 지켜보자’


수포는 없었고, 충혈도 없다.

혀도 빨간 딸기 모습이 아니다.


카와사키병도, 홍열은 후보군에 없었다.



지은이는 평소보단 조금 부진한 식욕을 보였지만 밥을 먹고 약도 잘 먹었다.


그날 밤도 그전 날 밤처럼 자면서 많이 깨서 물을 마셨다.




D+6 FRI


손발바닥에 발진은 좀 더 뚜렷해졌다.

오돌토돌 튀어나온 부분은 없다.

눈의 충혈도 보이지 않는다.


‘어제 휴가를 썼으니 오늘은 회사에 갔다 와서 병원에 데려갈게’


아이 상태의 호전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은이에게 묻는다.


‘아빠가 계속 옆에 있을까? 회사 갔다 올까?’


- 나 재워주고 회사 가

…….


회사에 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머리가 흐리멍덩하다.

3일간 잠을 잘 자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일단 티백 녹차 2개와 민트티 1개를 넣어 차를 타서 마셨다.



아침 식사 후, 아내가 사진을 보내온다.


손발 외에도 배와 팔에도 발진이 생겼다.


‘아.. 수족구구나…’



수족구이면 항생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

수족구 치료제는 없다.


항생제가 오히려 면역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아내에게 해열제만 먹이고 항생제는 주지 말고 기다리라고 카톡을 남긴다.


마침 전사행사가 있는 날이라 9시-10시 행사에 참석 후, 그제야 소아과에 유선으로 문의할 수 있었다.


‘배랑 팔에도 발진이 생겼는데 수족구 같으면 항생제 안 먹는 게 맞죠?’


그렇단다.


몇 시에 올 거냐 물어서 퇴근 후 3시쯤 가겠다고 했다.


마침 퇴근길에 첫째 사야의 유치원 하원을 가려했는데 유치원에서 심하게 울었다며 1시간 일찍 하원을 했단다.



집에 가니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는 지은이.


머리가 아프냐고 물었지만 아프지 않단다.


40도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 넌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니. 아빠는 훈련소에서 폐렴으로 39.8도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머리가 정말 깨질 듯이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점심을 먹이고 수족구라는 진단명을 각오하며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손, 발, 혀, BCG 부위를 확인하고, 눈을 살펴봤다.


아, 아침에는 BCG부위에 발진이 없었는데 생겼다.

카와사키(川崎)병같다며 소견서를 써주겠단다.

대형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라며.


‘잠을 계속 못 잤으니 눈이 충혈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다시 보니 원래  옅은 검푸른 빛을 띠는 흰자가 연한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 카와사키 병?

그건 심장혈관 쪽에 문제 생기는 혈관염이잖아.

원인도 모른다는 그거?’


지은이가 카와사키라고?’



나한테 그 전날까지만 해도 카와사키는 멋진 경주용 오토바이 브랜드였다. (kawasaki-motors.com)

한 글자 차이의 “이”와“자”키(岩崎)는 고등학교 때 반한 적이 있었던 같은 학교 일본인 후배 남매의 성이었고….


치료시작을 빨리하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아과 간호사들이 혹시 알까 싶어 어느 병원으로 많이 가냐고 물었다.

연세 세브란스 병원은 사람이 많을 거고, 강북삼성병원이나 은평성모병원으로 많이 간다고 한다.


일단 가장 가까운 곳인 은평성모병원을 목적지로 하고 가기 시작했다.



내 안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슬픔’이라는 감정의 문이 열린 건지.

1500일이 넘게 ‘엄마 같은 아빠’로 살아가며 마음이 너무 말랑말랑해진 건지.

자꾸 졸린 건지 혼미해지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아이의 눈빛이 떠오른다.


운전자가 울면 안 되는데.

이런.




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은평성모병원의 응급실.


앰뷸런스들이 주차하는 자리에 차를 세우라고 하기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응급실이니 이렇게 하는 건가?’하며 차를 세우고 응급실 접수를 했다.



열경련을 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피가 철철 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뿐.


이때까지도 카와사키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응급실 접수 후, 소아응급실로 가고, 기침하는 아이들이 있는 대기실에서는 마스크를 챙겨 오지 않은 걸 아쉬워 하며 아이를 안고 있었다.


지은이는 그날 따라 계속 안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응급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니 소아과 선생님과 같은 검사를 하시고 ‘가와사키병일 확률이 아주 높네요’라는 평가를 하셨다.


난 확률이 아니라 진단을 받고 싶은 건데, ‘원인불명’이라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알겠다. 혈액검사를 한다고 ‘카와사키병 바이러스’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곤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병실이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저녁에 올라갈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긴 한데…

일단 기다려보세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



검사도 없이 치료의 시작도 없이 입원가능한 병실이 없는 병원의 응급실에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응급실 앞 주차장으로 안내한 분이 자꾸 전화를 한다.

차를 옮겨달라고.

혹시 다른 보호자는 안 오시냐고.


다른 보호자인 아내는 집에서 다른 두 명을 ‘보호’하고 있는데, 아내가 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코로나도 유행이라는데 굳이 막내와 첫째도 병원응급실로 오게 하고 싶지 않다.


응급실에서 체온측정을 했을 때, 40.3도.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서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마침 의사 선생님이 부르신다.


“아직 자리가 없는데, 이게 치료를 위한 주사를 천천히 계속 넣어야 하는 거라 입원할 수 있는 곳에서 해야 해요. 아이가 주사바늘 여러 번 꽂는 걸 힘들어해요. 근데 지금 우리 병원은 자리가 없으니 기다려봐요. ”



 그 와중에 주차요원은 전화가 온다.

‘혹시 차를 옮길 수 있는 다른 보호자는 안 오실까요?’


아내는 못 온다.

온다 한들 한국에서 쓸 수 있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답답하다.

기다리는 거밖에 할 수 없으니 병원에 민폐나 되지 말자고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께 차를 옮기고 와도 되겠냐고 여쭤보려고 기웃거리자 물어보라고 한다.


‘응급실 앞에 차를 세웠는데 차를 옮기고 와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전화번호 남겨주세요,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아이 온도가 40도인데 혹시 해열제 처방은 안될까요?‘


의사선생님이 간호사에게 말한다.


’ 해열제 안 줬어요?‘

’ 드려야죠 ‘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가방을 메고 아이를 안고 차로 이동한다.

차에 오니 ’ 호비‘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지은이.


아이를 태우고 지하주차장의 빈자리를 찾았다. 아이가 내리기 편한 위치의 빈자리가 없어 시간이 걸렸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병실이 없는데 우리가 치료받을 수 있는 병실이 생기려면 ’그 아이‘가 ’ 올라가야 한다 ‘고 했다.

그게 소아응급실에서 일반병동으로 간다는 말인지, ’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 눈치를 보아하니 후자의 경우일 확률이 높다.


다른 누군가 ’ 올라가야 한다 ‘는 그 말.

지은이가 치료받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 하늘로 올라가길 바라야 하는 건가?


이건 아니다.


첫째 사야를 낳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은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입원할 수 있는 병실이 있는지 알 수 있는지 물으니 알려줄 수 없단다.

와서 접수를 해야 알려줄 수 있다고 한다.


둘째의 심혈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지금.

다시 불확실한 곳으로 이동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다시 배경을 이야기한다.

지금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실이 없어서 물어보는 건데 알려주실 수 없냐고.


이미 이 쪽 병원에 접수가 된 거면 전원신청을 해서 오란다.


답답하다.


응급실보다 ’ 호비’를 들을 수 있는 차가 더 좋은 지은이를 위해 차에서 기다리며 생각했다.

지금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지하에서 공회전을 하며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틀어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한 번도 VIP대우를 바란 적도, VIP가 되고 싶었던 생각도 없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전원신청이라…


그래, 교수님은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눈치셨다.


다시 응급실로 올라갔다.

40도의 아이를 안고, 가방을 메고 올라가니 나는 땀이 나고, 아이에게 춥냐고 물으니 춥단다.


응급실 대기실에서도 계속 안고 있었다.


하필 물병도 소독한다고 젖병소독기에 넣어놓고 별 위기감 없이 소아과에 갔다가 졸지에 응급실까지 온 상황이다. 지은이는 종이컵으로 물 마시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왠지 물이 넘칠까 말까 쏟아질까 말까 하는 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옷이 젖어도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였다. 마실 때는.

지은이는 그걸 즐겼지만 옷이 너무 젖으면 또 축축하다고 찡찡대니 물병으로 마시게 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다.


접수한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의사선생님이 부르신다.


“검사를 하고 천천히 신중하게 조금씩 맞아야 하는 주사로 치료를 하는데, 아이들은 검사하는 것도 주사 맞는 것도 힘들어 하니깐, 여기서 검사를 하고 거기 가서 또 하는 것 보다, 거기서 한 번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선생님들한테 내가 물어보고 있으니깐 조금 만 더 기다려요.’


-(하아…) 혹시 치료가 시급한데 늦어져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는 없나요?

목소리가 떨린다.


“그런 건 없어요.”



“아니면 오늘 집에 갔다가 내일 외래접수해서 기다려보는 것도 가능해요.

자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근데 예약이 다 차서 오래 기다려야할 거에요.

그래도 한국은 외국처럼 자리 없다고 그냥 돌려보내진 않으니깐.“

…..

-혹시 카와사키병이 아닐 가능성은요?


“지금으로서는 카와사키 병일 확률이 아주 높아요.”





내가 울먹이며 여쭤봤는지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물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 때는 그렇게 지은이의 생명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침대에서 졸려하는 건지 혼미한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흐릿해지던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아빠가 노래불러줄까?’

-응


‘반짝반짝 작은 별’의 멜로디에 입혀진 알파벳송.


아이가 치약으로 양치 후, 소금물 양치를 즐겨하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가글하는 동안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부르던 노래이다. 내가 까먹고 노래를 안 부르면 입에 머금고 있던 소금물을 ‘퉤’하고 뱉고

‘아빠, 노래 해야지!’ 하던 지은이



아내는 아이를 안고 재울 때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하시며 ..’

그 노래가 떠올라 첫 마디를 부르고 나니 다음 마디를 부를 수 없었다.


‘너의 환난을…’


울컥.



아니다.

신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고통의 순간을 맞이한다.

지금 나는, 아니, 지은이는 환난 가운데 있는 거 아닌가?


아니다.

나보다, 우리보다 더 괴로운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있을 거다.

우리가 최고로 위험하고 불행한 상황에 있는 게 아니다.

아닌 건 아닌거다.



신의 존재 유무는 내가 고통을 받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별개다.

같은 카테고리의 질문이 아니다.


‘내 기도/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니 신은 없다’ 라는 결론은 어른들의 사유가 아니다.

어린 아이의 얕은 투정에 불과하다.


부모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거다.

지은이나 사야가 몸에 안 좋은 걸 달라고 했을 때, 그걸 주지 않는다고 부모가 없는 게 아니니깐.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신 따윈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라는 생각은 얕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내가 소원을 비는 행위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확률이 더 높다.



’하지만 신은 우리 기도를 듣는다고 하잖아요?‘


기도를 듣는 것과 기도를 이뤄주는 것은 별개이다.

신은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ATM이 아닐 거다.


논리적으로 신이 존재한다면 그런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아닐 거라는 건 이미 오래 전에 내린 결론 중 하나이다.



자꾸 땀이 나고 땀이 눈에 들어가니 눈이 아파서 눈물이 나고

괜히 슬퍼서 눈물이 나고 응급실에서 나 혼자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 선생님이 불렀다.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아직 자리가 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자리 없다고 환자를 쫓아내진 않으니깐.

응급실에서 치료 시작하면서 기다리다가 병실에 자리나면 입원해요.‘


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인 것 같았다.



수족구 진단을 받고 집에 올 생각이었기에 물병도 옷도 아무 것도 없다.


일단 집으로 가서 짐을 챙기며 아이 저녁 식사를 먹였다.

아니, 먹여보려 했다.


집에 가니 또 기운이 났는지 언니와 동생과 노느라 밥을 안 먹고 돌아다닌다.


‘너 아픈 거 맞니..?’


일단 카와사키병인지 검사를 해봐야 확신할 수 있다니 아직도 난 카와사키가 아닐 수도 있다고 더 낮은 확률 쪽을 희망하고 있었다.

왠지 원인불명의 병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짐을 싸고나니 왠지 긴장이 풀린다.

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은 생겼다.

아이상태도 나쁘지 않다.


이제부터 현실이다.


입원하게 되면 나와 지은이 둘만 가니 교대해줄 사람이 없다.

퇴원할 때까지 못 씻을 거다.

코로나가 또 유행이라니 면회도 제한될 거다.

열이 난 지 6일째.

어제도 아이 곁에 있느라 샤워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다.

씻지 않고 가면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될 것 같다.


응급실 선생님이 내일 오전에 접수해서 대기하는 선택지를 얘기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1분 1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부모의 망상일 수도 있다.


샤워를 하자.

내친 김에 머리도 감고 가자.


그렇게 돌아다니며 밥을 먹는 아이의 저녁식사 동안 난 씻었다.


긴장을 풀고 슬픔을 내려놓고 문제해결 모드, 냉철한 아빠모드로 넘어가자고 생각하며.



샤워를 마치고 불안을 씻어버린 난 엄마 같은 아빠 같은 아닌 아빠 다운 아빠로 복귀 했다.

그 사이 강남으로 가는 길은 러시아위가 끝났는지 15분 이상 단축되었다.


불안해하고 있을 건 아내이다.

아내를 일단 안심시킨다.


종종 장난처럼 말하지만 꽤 순수하고 단순한 나의 아내는 우리 집 ‘첫째’이다.

내가 돌보야 하는 대상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아내도 있다.

아이가 아플 때 성인보다 유아를 우선시 하는 논리가 아내를 섭섭하게 할 때도 있었다.



우리가 응급실에 있는 동안 입원할 짐을 대충 준비해놓았다고 한다.

급할 수 있는 업무처리를 위해 아이패드도 챙기고 블루투스 키보드도 넣는다.

속옷, 양말은 여유있게. 몸 씻더라도 갈아입자.

슬리퍼가 있어야 발도 씻을 수 있다.


백팩 두 개의 량이다.

다 필요한 건 맞다. 있으면 좋은 것도 맞다.

하지만 일단은 응급실에서 아이를 안고 또 얼마나 기다려야하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백팩 하나 이상은 무리란 생각이 든다.


전자기기는 킨들 하나만 챙기자.

슬리퍼도 부피가 너무 크다.

샌들을 신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운전할 때 약간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예상되니 결국 운동화다.



낮에는 회의, 포럼, 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강남 지역을 간 적이 있지만 밤에 강남을 가는 건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밤에 집에서 나와 차를 태우는 것도 처음이다.


‘아빠, 우리 어디가는 거야?’

-지은이가 안 아프려면 병원에 가야해.

‘아까 거기?’

-아니, 거기는 지은이가 치료 받을 수 있는 방이 없데. 있는 곳으로 가야해.

‘호비 틀어줘’

-머리는 안 아파?

‘응. 졸려’


언니와 동생과 있을 때 쌩쌩하던 아이가 다시 생명력이 30%는 감소한 듯 쳐져 있다.


‘아, 이게 지금 몸상태이고 놀 때는 무리하는 거구나.‘


한강을 향해 달릴 때도 한강을 오른편에 두고 달릴 때도 차가 막히지 않는다.

다행이다.


차가 막히면 아이가 안 좋아한다.


그렇게 또 다시 아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들으며 강변을 따라 달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행이다.

한 번도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놓치지 않고 헤매지 않고 한강을 두 번 건너지 않고 도착했다.

강변로나 올림픽대로를 타다가 출구를 놓쳐 한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 유턴을 한 적이 가끔 있었는데.


대학교 ’베프‘의 신혼집이 근처라 내가 미혼일 때 가끔 만나러 왔던 동네.

대학교 후배이자 친구라고 부르는 외과의사가 인턴생활을 했던 병원이다.


또 브런치작가가 된 후로는 류귀복 작가님이 근무하는 병원이 되었다.

‘성당이 있는 병원‘


응급실 유리문들 사이로 보이는 깜깜한 로비.

어둠 속에 흐릿하게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특별한 신성을 느껴지지 않는 대상이다.

예수를 낳은 모체이다.



응급실에는 두 명의 어르신들이 있었을 뿐 대기도 길지 않았다.

은평성모병원에서 전원신청을 했을 거라고 얘기하자 이름을 묻는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아이의 상태는 특별히 악화되지 않았다.

어제 낮, 어제 밤, 오늘 오후, 오늘 밤, 안정적인 low다.


힘은 없지만 걸을 수 있고.

힘이 없지만 보채지 않고.

안아달라고 하지만 너무 오래 안고 있으면 아빠 허리 아프니깐 아빠 다리에 앉아 기다릴 수 있는 배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


아이들은 왜 앉아서 안는 것과 서서 안는 것을 구분하는 걸까?

첫째도 종종 아플 땐 서서 안아달라고 한다.




응급실에서의 기다리는 동안 아빠에게 꼭 들러붙어서 안겨 있던 지은이.


‘덥지 않아?’ 하고 물으니 춥단다.


고열 중에 시원한 저녁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나 보다.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먼저 엑스레이를 찍어야 된단다.


“지은아, 먼저 뼈 사진 찍을꺼야. 동화책에서 물렁이가 뼈가 없었지? 지은이는 단단한 뼈가 있잖아?

저기에 들어가서 팔을 벌리고 찰칵 찍으면 되는 거야. 하나도 아픈 거 아니야”


보호자에게는 납 방호복을 입혀주었다. 한 쪽 손은 다른 분이 잡고, 한 손은 내가.


‘삐-


다 됐다.


“엄청 빠르지? 안 아팠지?”


-응. 이제 뼈 사진 나와?



그리고 잠시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해서 자리를 옮겼다.

이건 안 아플 수가 없는 거다.


“지은아, 지난 번에 예방접종 맞을 때 안 울고 따끔 잘 참았지?”

-응. 하나도 안 울었지?


“이번에도 좀 따끔할꺼야. 지은이가 힘을 주고 막 세게 움직이면 더 아플 수 있으니깐, 따끔해도 참아야지 안 아파. 할 수 있지?“

-…..



다행히 간호사 선생님은 나이가 많지 않은 여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왠지 젊은 여선생님들에게 좀 더 긴장을 쉽게 푸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혈관 좀 찾아볼게요, 아버님께서 아이 손 잘 잡아주세요.’

-네


내 팔뚝의 혈관을 보여주며 지은이에게 설명한다.

’지은아, 이게 아빠 핏줄 이거든? 눌러봐. 아빠는 손도 크고 핏줄도 크지?

지은이 손은 작지? 그래서 지은이는 핏줄도 작아서 잘 안 보여.

근데 핏줄이 잘 보여야 선생님이 안 아프게 빨리 끝낼 수 있다. 여기 위에 고무줄을 묶으면 핏줄이 잘 보여서 하는거야‘


’아버님, 아이 손 잘 잡아주세요‘

-네.


아이도 잘 다루고 미리 긴장해서 세게 잡아 아프게 하지 않는 디테일이 있다.

실력이 느껴지는 손길이다.

‘지은아, 우와.. 선생님이 엄청 잘한다. 한 번에 찾았어. 천천히 들어가는 게 안 아픈거야~

따끔하지? 근데 예방주사 보다 안 아프지?‘


씩씩하다.

울지 않고 참고 있다.


가장 최근 예방주사 때는 꾹 참고 울지도 않았던 씩씩한 지은이는 작은 병 2개를 채울 때까지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 세 개 정도의 넓이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손의 가느다란 혈관에 꽂힌 바늘에서 나오는 피로 채혈병이 차오르는 속도는 너무 느렸다.


지은이는 울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해. 왜 안 끝나?‘

-지은이 잘 하고 있어. 조금만 참자.

여기 병에 지은이 피를 가지고 가서 의사선생님들이 지은이가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고쳐줘야하는 지 알 수 있어. 이걸 하면 지은이가 안 아프게 될꺼야’


세병째.

이젠 설명이 안 통한다.


‘지은아, 우리 저번에 찍은 사진 볼까?’

아이가 잠시 정신이 팔리는 동안 마지막 병이 채워졌다.


그리고 꽂혀있는 그 주사바늘로 지은이에게 처음으로 링거가 달렸다.


다시 응급실 병상으로 돌아간 우리.


얼마나 기다렸을까.

병원의 하얀침대가 맘에 안들었는지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무릎에 앉아 가슴에 기대고 숨을 쌔근대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유모차에 앉혀달라고 했다. 유모차를 가져올 생각을 해낸 스스로가 대견하다.


병실로 올라가나 했더니 이번엔 심전도 검사이다.

다행히 아픈 검사는 아니다.


‘지은아, 여기에서는 지은이 심장소리를 듣는 곳이야. 하나도 안 아파~’

심전도 체크를 위해 붙이는 스티커에 관심이 가나보다.


담당선생님은 센스있게 아이에게 여분의 스티커를 두 개 주었고 아이는 선생님이 준비하는 동안 척척 스티커를 붙이고 선을 연결하셨다.



응급실 도착 후, 2시간 내 혈액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마쳤다.


졸려하는 아이는 이제 체력을 소진했는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입원 수속을 하는 데스크로 가라고 한다.

지금은 5인실 밖에 없어 5인실로 들어가는데 몇 인실로 가겠냐고 묻는다.



예전에 할머니, 외할머니 병간호를 한다고 병원에서 몇 일 잤던 적이 있다.

환자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들락날락 거리고 불을 켜는 의료진의 방문이 늘 잠을 설치게 했고, 그걸 힘들어 하셨던 기억이 났다.

잘 자야 빨리 나을 것 같은데 서너시간에 한 번 씩 체온을 잰다고 깨우고 밝게 하니 간병인도 그런 패턴의 수면으로는 건강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격을 보니 1인실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2인실은 괜찮을 것 같았다.


입원수속은 생각보다 느렸다.

다시 응급실 병상으로 기다렸다.

아이는 유모차에 아빠가 병상에 엎드려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묘한 그림이다.

아이를 오래 안고 있었기 때문에 허리가 아플까 해서 미리 예방책을 쓴 거다.

몇 일 있을 지 모르는데 내가 환자가 되면 안되니.


 

그래도 이제 치료 받을 곳에 생겼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졸리다며 유모차에 눕혀달라는 지은이의 바람대로 해준 후, 나도 몸이 좀 가벼워졌다.


핸드폰을 보니 카톡이 알림이 많이 쌓여있다.

아이가 다니는 교회의 영아부에서도 지은이의 상황이 공유되어 여러 사람들이 기도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 가정의 육아지원병력인 부모님은 주말에 서울에 안 계시고 경기도에 계신다.

오늘 밤은 아내가 혼자 둘을 봐야한다.


11층으로 이동해 화장실 앞 침대로 안내를 받았다.

고를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이다.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문이 열리고 밝아지는 것 외에도 화장실 불빛이 잠을 방해할 거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치료 받을 수 있는 침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렇게 해열제가 있는 수액과 포도당5% 생리식염수를 달고 아이와 병원에서 첫 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핸드폰 충전기는 잊었고 가방을 살펴보니 아이 옷은 4일치 준비해준 가방에 나의 여벌의 옷은 없었다.

속옷만 잔뜩 있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아, 내 옷은 내가 챙겼어야했네.’


잠든 아이가 깨서 날 찾는다고 울면 다른 4개 침상의 환자에게 큰 민폐다.

씻는 걸 가감히 포기한다.


이제서야 검색을 할 여유가 생겼다.


카와사키 병이라니 일본어 자료가 더 많지 않을까- 란 생각에 일본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1967년에 의사 카와사키 선생님이 발견을 했구나. 근데 아직까지 원인은 모르는구나.

전신의 혈관염…’


6개의 항목이 모두 해당된다.

고열, 눈꼽없는 흰자 충혈. 딸기같은 혀. …“


완치가능여부를 검색 해보고 나서야 한국어로 치료비를 검색한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평균입원기간까지 검색을 해보고 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 모바일 웹브라우저의 탭에서 옛 글이 열려 있었다.

살펴보니 왠 댓글이 또 남겨져있다.

내 글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던 작가님이 이번엔 내가 쓴 댓글을 지워달란다.


이 와중에 신경쓰고 싶지 않은 내용이지만, 괜히 마음이 불편하니 댓글을 일부 수정했다.

언론통제 내지는 검열 당하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와 반발심에 삭제는 하고 싶지 않아진다.

어차피 원래 내렸을 글인데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그 사람이 내 사정을 알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잠이나 자자.

아이의 몸은 조금 덜 뜨거워진 기분이 든다.


자면서 자꾸 옆에 내가 있는 지 확인을 한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잠 잘 때의 거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여기서도 한 뼘 남짓 거리를 두고 잠이 들었다.


2시간 정도 잤을까.

간호사가 체온을 재러 왔을 때 깼다



D+7 SAT : 입원 2일차


밤에 체온이 오랜 만에 37도 대로 내려갔다.

아이의 몸이 시원하게 느껴진 게 너무 오랜 만이다.


아이는 주사바늘이 꽂힌 손을 불편해 했지만 소아과병동에선 아이에게 ‘장갑’ 같은 걸 씌우고 테이프로 잘 감아주었다. 아이도 아프지 않은 듯 의식하지 않게 됐다.


오전 회진시간인 9시에는 나이 많으신 남자 선생님이 간호사 한 명을 동반하고 왔다.


예상치 못한 반말로 나에게 설명한다.

마치 내가 자기 학생인 것처럼 가르치는 교수의 어조이다.


‘일단 면역글로불린을 시작하고, 그 다음에 아스피린을 줄 건데…’


구글로 예습한 내용이라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치료제는 면역 글로불린 이라는 약품이다.

은평성모병원에서 소아과 응급실 선생님은 ’아주 천천히 소량을 오래동안 맞아야 하는 주사‘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약품은 아스피린처럼 상비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어디서 공급 받아야 하는 건지, 아직 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토요일 오전이 지나가고 12시 30분 쯤이 되서야 링거에 글로불린 이라는 이름이 적힌 유리병이 걸렸다.



자, 이제부터가 본방인가.



아직도 눈물은 뜬끔없이 치고 올라오려 했다.


아이가 ‘언니 보고 싶어’ 라고 했을 때.

‘집에 가고 싶어’ 라고 할 때.


그리고 ‘집에 언제가?’ 라고 할 때.



거짓말을 극도로 하기 싫어하는 나는 아이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로 한 거짓말을 다른 거짓말을 하게 하고, 그런 과정 중에서 아이의 신뢰를 잃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거짓말로 한 상황을 빨리 모면하게 되어봤자, 그럼 점점 쓸 수 있는 패/카드가 줄어드는 게 되는 것 같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육아는 멀리 보고 지금의 수고를 감내하는 컨셉을 일관성하게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육아를 시작한지 1500일이 넘는 기간동안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기억이 없다.

선의의 거짓말 포함이다.

놀이터에서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망태할아버지’ 카드를 쓰기 보다는 실재하는 ‘모기 카드’를 썼다.

집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한 일들도 실제 사례를 이야기 했다.



‘아직 몰라. 선생님이 가은이 검사해보고 알려주실 수 있어.’


지은이는 ‘집에 가고 싶어’를 계속 외치며 울기 시작했다.

몇 분을 울었을까?


다행히 ‘안아줘’로 바뀌었다.

아이를 서서 안고 달랜다.


‘졸리지?’


반복모드의 문구가 ‘졸려’로 바뀐다.


‘졸려’ 를 외치며 운다.


면역 글로불린이 똑.똑.똑 떨어진다.

다행히 아빠의 눈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장난감도 책도 없는 5인실 병상의 하얀 커튼 안에서 분위기를 달리 해줄 수 있는 건 분홍색 이불 뿐이었다.

분홍색 이불을 덮는대신 요처럼 바닥에 깔으니 조금 낫다.


사실 동화책 몇 권을 챙길 생각도 했지만 응급실에서 이동이 힘들 것 같아서 포기했다.

차에 넣어둔다 한들 아이를 낯선 곳에 두고 간호사선생님에게 맡기고 ’차에 좀 다녀올게요‘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란 걸 예상했으니.

 

이젠 ’유모차 탈래‘로 바뀌었다.


그래, 유모차는 어디에서도 똑같으니 그 편이 마음이 편해지겠지.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병실을 나섰다.

그러고보니 병실 번호는 114.


뭘 물어보면 가르쳐추는 번호이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은 건 없다.



우리 병실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론 응급실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으로는 엘레베이터 홀과 어린이병동 원무과가 있는 출입구이다.


그래, 입원기간 동안 오른쪽으로 가는 일 없이 왼쪽으로 가는 것만해도 감사한 거다.


주말이라 그런지 간호사들만 보였다.


반대편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니, 연두색과 노란색, 쿠셔닝이 있는 작은 섬 같은 소파와 바닥, 나무모양이 있었다.


아이가 말한다.


’나무 같아.‘


-내려서 놀을래?


’아니야.‘


아이들이 대여섯명은 둥글게 앉을 수 있는 귀여운 원형의 소파.  그 가운데 ’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낮아서 앉는 사람이 불편할 각도이다. 앉으면 기대는 대신 거북목이 된다.



창밖에는 장례식장 주차장, 다목적 농구장, 테니스장, 축구장이 보였다.

응급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도 보였다.


’우리 차도 보이네‘


아이는 반응이 없다.


’유모차 밀어줘‘


유모차를 밀고 걸으며 노래를 한다.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아이는 낯선 공간에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건지 잠이 들락말락 하며 자지 않으려 했다.


아침 식사도 거의 하지 않으려 했다.

배변활동이 없는 세번째 날이다.

배가 안 고플만도 하다.

포도당이 주사액으로 들어가니 왠지 배고픔도 잘 안 느껴질 것 같았다.



오후에 지은이 고모, 즉 내 동생이 병원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어제 면회는 불가능한데 출입구에서 물건을 받는 건 가능하다고 안내 받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중 호비의 여동생 하나 인형을 부탁했는데 하나가 꼬질꼬질하다며 덤으로 새 ‘미니마우스’를 사왔다. 우리 아이들은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에는 관심이 없는데.


지은이 고모는 떠 먹는 요거트도 사왔다.

병원에서 정장제나 유산균을 처방받기 전에 시중제품으로도 유산균을 투입하는 건 가능하다.

다행히 유당불내증 같은 건 없다.


스티커 책도 사왔다.

졸려하던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유모차에서 침대로 옮겨 앉아 저녁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한참을 스티커를 떼었다 붙였다 하며 시간이 흘렀다.


‘아빠, 이건 무슨 핑이야?’


책 제목을 보니 아랫집 초등학교 1학년 언니가 좋아하는 ‘캐치 티니핑’이 아니라, 무슨 꼬마 마녀이다.


‘이건 티니핑은 아니야. 꼬미라고 써있네?’


-아니야, 티니핑이야. 이건 무슨 티니핑이야?


’음, 티니핑 아닌데. 여기에 ㅇㅇ꼬미, ㅁㅁ꼬미 라고 써있어.‘


-아닌데..티니핑 같은데…



동생의 수고 덕분에 아이의 입원환경이 조금 더 나아졌다.

그렇게 병실에서의 낮시간이 지나가고, 아이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었다.



아이가 잠에서 깼을 때, 저녁 식사는 이미 병상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밥이다‘


왠지 동화책 대사인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며 오른손을 뻗는다.

하지만 주사 바늘이 꽂혀 있는 손이니 수저가 안 잡힌다.


’오른손은 장갑을 끼고 있으니깐 왼손으로 먹어야겠네. ‘


반대편으로 수저를 쥐어주니 밥을 먹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아빠가 먹여줘‘


한 숫가락 먹더니 맘에 드는 반찬이 없는지 안 먹겠단다.

집에서 나오는 찐 당근, 애호박, 야채 등 다 잘 먹는 아이인데, 제대로 요리된 병원 식사는 맛이 없단다.


그래. 익숙한게 맛있는 거지.

어른들은 이렇게 이런 저런 맛을 추가해서 먹어야 맛있다고 생각한단다.


그나마 애호박이 간이 싱거운지 그건 왼손 손가락으로 몇 개 집어 먹는다.


그러고보니 지은이는 스스로 먹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돌도 안 되서 떠먹여주는 숫가락을 뺐어서 직접 먹겠다고 하며 옷과 식탁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광경을 버틴 결과, 언니보다 훨씬 일찍 혼자서 먹기 시작했다.

부작용이 있다면 만2세가 되어서도 숫가락을 보조도구로 손가락을 주 도구로 사용해서 음식을 집어 먹는다는 것.


손으로 자유롭게 집어먹는 게 식사의 중요한 일부인 것처럼 꼭 손으로 집어 먹으려했다.



그렇게 얼마 먹지 않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하다가 다시 스티커 책을 집어 들었다.


‘더 먹어야지-

그럼 고모가 사온 요거트 먹을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요거트를 하나 먹고, 열지 않은 것도 먹고 싶어한다.

요거트를 반 개 더 먹고나서는 다른 건 먹지 않겠다고 한다.


약을 타서 먹인다.


“약도 잘 먹고 밥도 잘 먹어야 다 낫고 집에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소아놀이터로 향한 지은이와 나.



‘아빠, 문어 같아’

응? 다리가 두 개 밖에 없는데 왜 문어 같아?


‘문어 같아’


피아노를 조금 치고, 창가를 따라 두 서번 걷고 나니 다리가 아프단다.


다시 유모차를 타고 병동 복도를 걷다가 병실로 들어갔다.


책은 아직 없다.

유모차를 밀며 노래를 불러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내가 아이가 아기일 때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너의 환…’


이 소절을 못 넘어가고 ‘반짝 반짝 작은 별이다’


널 지켜주고 계신 게 맞는건지 아직 모르겠어서일까.

괜히 또 눈물이 나려한다.



그렇게 잠든 아이를 조심스레 침대에 옮기는 걸 성공한다.


다행히 입원 전 2주간 집의 철봉과 놀이터의 구름사다리를 활용해서 코어근육을 단련하고 있었다.

몸상태는 괜찮다.


아이를 눕혔다고 나도 졸음이 몰려오진 않는다.

아직 긴장상태이다.


22시 쯤 지은이를 침대에 눕혔는데 23시 반 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1차 치료제인 글로불린 수액을 떼어갔다.


PHASE 1은 이상반응 없이 잘 이루어졌나보다.

12시 20분 쯤 시작할 때 약 11시간 걸릴 거라고 했는데, 정말 밤 열 한시이다.


신데렐라는 아직 30분 더 놀 수 있는 시간.

내가 신데렐라는 아니지만 카와사키병에 대해 조금 더 검색해보았다.


카와사키는 일본어니깐 일본어 자료에 기대를 걸었는데 ‘원인 불명이었던 카와사키병의 원인’을 알았다는 소아과의사의 칼럼 제목이 보인다.

출처: https://f-clinic.jp/column/112


소아과의 카와사키병 환아들을 그 전에 항생제를 먹은 아이들과 아닌 아이들로 나눠서 비교했더니 항생제를 먹은 아이들의 발병률이 10배 높았다고 했다. 그리고 항생제가 장내미생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면역시스템이 이상 작동하게 하는 것일 가능성을 대두하며 본인과 다른 동료의사들과 발표한 영어논문의 링크도 함께 게재했다.

참고자료: https://pubmed.ncbi.nlm.nih.gov/32306442/ 




그러고보니 ‘원인불명’은 원인 없음이 아니다.

지은이의 경과를 되돌아봤다.


일요일 밤 D+1,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D+4까지 고열이 있었지만 카와사키병의 예후인 손발의 붉음, 충혈, 딸기혀, BCG부위 등의 발적은 처방약인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와 항히스타민 계열 약을 복용한 후였다.


물론 가능성에 불과하다.

이건 인과관계라고 주장하기도 상관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애매하다.

아직까진 시간 상의 흐름이 그랬다는 거다.


하지만 흥미로운 가설이다.


장내 미생물과 우리 몸의 관계는 아직까지 의학계가 파악했다고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가설과 주장 사이에서 논의 되고 있다.


산업구조상 제약회사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의료계에서 ‘카와사키 병의 원인은 항생제’라는 주장을 쉽게 받아드릴 수 없을 거다.


잠든 아이 옆에서 카와사키 병의 발병원인을 생각하게 된 걸 보니, 나름대로 긴장이 풀렸나보다.


원인은 모르지만 다행히 치료방법은 존재했고, 지금까지는 치료가 유효한 것 같았다.


회진시 교수님의 안내와 달리 아스피린 복용도 동시에 진행했다.

돌아보면 동시 진행했을 때 거부반응이 있었다면 글로불린에 대한 불응인지, 아스피린에 대한 건지 구분하기 애매했던 게 아닐까 싶지만 임상적 통계에 기반한 리스크 분석을 했을 거다.


한국 대증치료 수준은 선진국 수준이다.


핸드폰을 보는 대신 킨들을 켰다.

역시 영상은 잠을 깨우고 문자는 읽다보면 잠이 찾아온다.




D+8 SUN: 입원 3일차


새벽에 한 번 간호사의 체온측정이 있었다.

아직 37도 중반대이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밤에 잠을 잘 못자다 보니 잘 일어나지 못한다.

원래는 해가 뜨면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달려나가던 지은이는 없다.

집에서는 주로 6시 30분에서 7시 사이, 늦어도 7시 반까지는 일어난다.


병상이 특별히 불편하진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 끼어서 자는 건 익숙해진지 오래.

오히려 한 명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은 어쩌면 더 ’쉬운‘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여유롭게 잠든 둘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던가?

다음 달이면 만 3세가 될 만 2세 지은이의 얼굴.

9월1일의 지은이의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고 마지막일 거다.

내일은 9월 2일의 지은이.


나름대로 아이들과의 하루 하루 소중하게 여긴다고 월급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우선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병상에 함께 누워서야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며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 느끼고 있다.


열이 난지 5일 째가 되던 지난 목요일 밤 하루 종일 옆에서 누워있을 때도 느꼈지만, 단 둘이 병원에 있으니 더 잘 보인다.


집에서는 ’어떻게 하면 저녁에 아이들이 잠이 쉽게 들 수 있을까?‘ 라는 걸 우선으로 저녁이 되면 간접조명으로 바꾸고 색온도가 높은 하얀 빛 대신 노란 빛으로 바꿨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런 게 없다.

하얀 형광등이다.

그래야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야 피부 색깔도 제대로 알 수 있다.


‘어쩌면 저녁에 하얀 불로 봤으면 아이의 충혈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침 밥을 안 먹겠다고 해서 일단 자리에 내려두고 소아과 놀이터로 유모차를 밀었다.

내 비상식량으로 챙겨온 아몬드와 캐슈넛이 담겨 있는 지퍼백을 챙겼다.


병동에는 병실용 유모차가 여러개 배치 되어 있는데 다행히 그걸 써야된다는 강요는 없었다.

덕분에 지은이의 유일한 익숙한 ’공간‘이 되어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에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날씨가 흐리다.

지난 번에 왔을 땐 햇빛 때문에 덥다고 했는데 오히려 다행인지 모르겠다.


비상식량으로 지퍼백에 담아온 아몬드와 캐슈넛.


그러고보니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찾는 게 우유와 아몬드, 캐슈넛, 호두 였는데 …


병원에서 아침밥상이 나오니 평소대로 줄 생각을 못했다.

반성.



글로불린 주사는 끝났고 나머지는 고용량 아스피린이다.

원래 개발목적 외의 부차적 효과인 혈관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십여년 전에 이미 읽었던 기억이 있다.

멀쩡한 사람도 하루에 한 개 먹으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던가.



지은이가 묻는다.

“오늘 교회 안가?”


일요일은 원래 아이들의 예배로 교회를 가는 날이다.


“오늘은 병원에서 있어야 돼.”


아이를 창문 쪽으로 올려주고 창밖을 보며 햇빛을 쬔다.

유리창이 자외선을 차단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비타민 D 합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놀이터의 그네 주위 봉이나 보도블록의 경계를 위태위태하게 걷는 걸 좋아한다.

첫째도 그랬고 둘째도 그렇다.


병원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창가 쪽 라디에이터 위에서 이 쪽에서 저쪽 까지 걷겠단다.


한손으로 아이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링거거치대를 끌면서 걷자니 불안하다.


“지은아. 지금 먹고 있는 약은 아스피린이거든? 그걸 먹고 있을 때 다치면 피가 잘 안 멈출 수 있어. 그래서 조심해야 해”


-응


비틀비틀하며 계속 걷는다.

바닥으로 떨어질 수 없도록 바짝붙어서 걷는다.


그렇게 반대편 피아노 까지 걷더니 주저 앉는다.


”다리 아파. 앉을래“


그러고보니 요즘 들어 부쩍 다리 아프다는 소리를 많이 했다.


이어서 말한다.

“키가 크고 있어서 그래“


아빠가 하던 말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럴거야.“




가은이는 피아노 옆에 라디에이터에 앉아서 나는 프로포즈 하듯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한쪽 발로 패달을 밟고 피아노를 친다.


외우는 악보가 없어서 즉흥곡이다.

밝은 다장조의 C키로 시작하지만 F코드로 손이 가고 Am를 거쳐 Em으로 가니 밝지 않다.


왜 멜로디도 짠해지는 걸까.


”나는 이거 누르고 아빠는 저거 눌러”

30초가 못 되어 아이가 가장 낮은 건반을 누르며 말한다.


어떤 건반을 누르라는 건지 모르겠다.

가장 높은 건반부터 하나씩 내려온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


배가 고파진 걸까?


”지은아, 우유랑 견과류 먹을까?”


지은이를 안고 놀이터 가운데 있는 푹신한 섬에 앉는다.

11층 소아놀이터에서


견과류가 있는 지퍼백을 열었다.


“캐슈넛”


캐슈넛을 골라먹기 시작한다.


”아몬드도 몸에 좋아. 우유는 병실에 있으니깐 침대로 가서 먹을까?“


와그작 소리를 내며 지은이가 대답한다.

”응. 스티커 책 할래“



그렇게 9시가 넘어 식은 밥이 기다리는 침상으로 돌아갔다.



곧 회진시간.


의사가 아닌 ’이사‘라는 이름표를 단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다.


혈액검사는 괜찮고 심장초음파 검사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가능해서 화요일에 할 예정이란다.




지은이는 약을 씩씩하게 잘 먹었다.

사탕으로 꼬실 필요도 없었고 쥬스를 같이 마실 필요도 없었다.


조심스레 가루가 된 약을 작은 통에 담고 물과 함께 흔든다.

가루와 물이 섞인 맛있을리가 없는 물약이지만 ’매워‘라고 말하고 또 꿀꺽 먹는다.


“지은이 약 잘 먹네”


지은이가 징징대며 말한다.

“매워…”


우선 물병으로 한 모금 마시고,

작은 약통에 물을 채워주니 입안으로 뿌려 마신다.

아주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아이에겐 즐겁고 재밌다.

그렇게 먹기 싫은 쓴 약을 먹은 후에도 금새 장난감거리를 찾았다.


여느 집에서 사용하는 ‘약 먹고 사탕 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소아 놀이터에서도 눈이 좀 부어보였는데

병실로 돌아와보니 얼굴이 전체적으로 많이 부어보였다.

손도 그렇고.


간호사에게 얘기하니 주사바늘 부위를 눌러보더니 많이 부었다며 간호사실로 오란다.


그렇게 오른손에 꽂혀 있던 바늘을 빼고 뽀로로 스티커가 붙었다.


문제는 다음.


다시 새 바늘을 꽂아야하는데 이미 울음보가 터졌다.


“우와, 지은이 뽀로로 스티커가 생겼네. 간호사 선생님이 오른손으로 밥먹을 수 있게 해줬네.

 오른손으로 밥 먹는게 더 좋지?”


“오른손으로 밥 먹는 게 좋아? 왼손으로 먹는게 좋아?”


-오른손


“그럼 잘 됐네. 그치?”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집에 빨리 가려면 지은이가 다 나아야해.

빨리 나으려면 수액을 달고 있어야 한데.

알았지?”


응급실에서 간호사의 손놀림보다 좀 둔하다.

혈관을 찾는데 준비 시간도 짧았다 싶었는데 주사바늘을 꽂는 각도도 너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아야야’ 하며 운다.

다행히 아이가 우는 건 익숙한지 조급해 하지 않는다.

두번째 시도만에 주사바늘은 지은이의 혈관에 잘 꽂혓다.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데 일단 다리에 앉혀 팔을 고정했었어야 하니 그럴 수 없었다.

능숙하게 테이핑을 한 후, 다시 핑크색 부목 ’장갑‘을 대주고 다시 테이핑을 마무리한다.


“이제 끝”

”우와, 지은이 엄청 잘 참았네.“


안아주며 말한다.

안아주니 금방 울음이 그쳤다.

바늘로 인한 통증도 잊혀졌나보다.


”지은이가 잘 참아서 빨리 나을꺼야. 다 나으면 집에 갈 수 있어”


앗. 집….


집에 언제가 -

집에 가고 싶어 -

언니 보고 싶어 -


다시 울음이 시작된다.



씩씩해보이지만  ‘언니 보고 싶어’와 ‘언제 집에 가?’가 나온다.


좀 졸린가?

졸릴 때 뭔가 맘에 안들면 울음이 오래간다.

병실에서 잠을 오래 자는 것 같으면서도 역시 수면의 질이 별로인가보다.


한참을 안아주고 나니, 안고 있는게 불편한지 눕겠단다.

누워서 지은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다독인다.

아기 때 하던 것처럼.


그래, 아픈 거 잊고 싶을 땐, 잠이 도움이 되지.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작은 별들이 많은 광경을 본 지가 언제더라..

신혼여행 때 갔던 섬에서 본 거 말고 없든가..



돌 무렾, 지은이는 젖물고 자는 습관이 들어서 늘 아내 옆에서 잤다.

2022년 봄, 코로나19에 걸린 후 생긴 습관이다.

그리고 그 해 봄에 우리 가족은 한국을 떠나 아내의 고향에서 약 한달을 보낸적이 있다.

마침 10년근속휴가를 10일 받았고, 연차를 15일 더해 오랜기간 부모님을 봽지 못한 아내의 집으로 가서 지냈다. 그전까지는 코로나19로 사실상 국경이 봉쇄되어 불가능했다.


그렇게 아빠와 24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이 새 환경에 적응되었다 싶었을 3주차에 아빠의 수면교육이 시작되었고, 엄마가 샤워하고 있던 어느 날 밤에 아빠의 점점 느려지는 ‘반짝반짝 작은 별’은 아이가 엄마의 도움없이 자는 걸 성공시켰었다.

아빠의 육아무용담의 하이라이트이다.



지은이를 재우고나니 나도 노곤해져 눈을 감았다.


그러게.

집에 언제 갈 수 있지?

침대 머리 맡의 카드에는 퇴원예정일이 9월 3일이라고 적혀 있는데.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정확한 게 아니라 루틴으로 적혀있는 거라고 했었다.

초음파 검사가 화요일이니 일단 그 날까진 있어야 할 거고.

빠르면 수요일인가.





늦은 오후가 되어 일어나보니 지은이의 몸이 부쩍 시원해졌다.

이렇게 ’열기‘가 없는 지은이의 몸은 7일만이다.

글로불린과 아스피린이 잘 들었나보다.


그렇게 또 다시 저녁 식사가 왔는데도 지은이는 잠을 계속 잤다.

지은이 옆에서 계속 누워있는 것도 이젠 한계.


침대 옆에 서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짐을 정리했다.

냉장고가 시원하지 않다.

혹시 이거 고장난 건가?


입원 3일차가 되어서야 간호사에게 냉장고가 혹시 꺼져 있는 지 물어본다.

”혹시 퇴원하면 꺼놓는 프로토콜이 있나요?“


내가 싸온 우유와 동생이 가져온 요거트, 그리고 아내가 싸준 과일이 들어있었는데.

아무래도 과일은 버려야곘다.


이런… 아깝다.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해서 다음에 먹이려고 아껴뒀는데.


조금 후, 수리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이 왔다.


냉장고를 이리 저리 만지더니 뒤에 연결된 코드를 뺐다 다시 꽂았다.


웅-


그제서야 실내 배경음의 기본인  냉장고 소음이 들린다.


아. 그렇네. 왠지 조용하다 싶었다.



시계를 보니 곧 7시이다.

오후에 시작된 낮잠이 세시간 반을 넘겼다.



아이들은 새로 생긴 아이템은 한동안 안고 잤다.

새로 생긴 거라면 인형이 아니라 머리끈도 책도 상관없다.

불편해보일 것 같은데 그걸 꼭 쥐고 잠이 든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이 사다준 핑크퐁 스티커북을 옆에 세워두고 잠결에 여러번 찾았다.


기저귀를 확인하니 쉬가 꽤 찼다.

이젠 깨어도 괜찮을 것 같으니 기저귀를 갈았다.


그제서야 기지개를 키며 게슴츠레 눈을 뜨는 지은이


”언니, 어디갔어?“


아무래도 꿈에서 언니랑 신나게 놀고 있었나보다.


”꿈 꿨어?“


고개를 돌리며 선물 받은 스티커북을 확인한다.


“아니야. 옆에 있었는데…”


아, 또 울컥한다.


“꿈 꿨나보다. 언니랑 재밌게 놀았어?”


-언니랑 가족놀이 했는데 어디갔지?


아, 안되는데, ’집에 가고 싶어‘로 넘어가면 또 한동안 울텐데.


아이의 주의를 밥으로 둘리자.


”지은아, 자는 동안 저녁 밥이 왔는데 밥 먹을까?“


-밥밥밥, 맛있는 밥~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면서 일어나 앉는다.



잘 자고 일어나면 밥이 먹고 싶을까 했는데 아니다.


하루 봉인 되어 있던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보려 하다가 잘 안된다.


배가 고프지 않다며 식사를 거부했다.


두부 먹을까?

가은이 두부 좋아하잖아.


늘 ”부두 맛있어“ 하며 두부를 부두로 발음 하는 지은이.


’따라해봐. 두.부.‘

-두.부


띄어서 읽으면 ’두.부‘가 나온다.


’두부‘


-부두. 캬하하하


일부러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는 그렇게 부두 부두 부두를 연발 하고 나서 신나서 웃었는데.


오늘은 두부도 안 먹는다고 한다.


운동량도 엄청 줄었고 목요일부터 배변이 없었으니 4일째라 배가 안 고프다는 게 이해가 된다.

포도당 수액을 맞고 있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드러누우려 하는 지은이를 멈춘다.


“유모차 타고 놀이터 갈까?”


-놀이터는 집에 있잖아. 여기 놀이터 없어-


“저기, 연두색 나무 있는데. 피아노 있는데. 거기 갈까?

걸어서 갈래?”


-유모차 탈래



소아놀이터에 가는 길에 창 밖이 어두워진 걸 발견하고 묻는다.


“벌써 밤이야?”


-지은이가 낮잠을 많이 잤어. 밤이야.


“아빠, 저거 문어 같아.”


-어디가? 저거 파인애플 그린 거 아닌가?


“저기 삐쭉 삐죽 한 거… ”


아, 내 눈엔 머리카락을 그린 것 같은 파인애플인지 뭔지 모를 얼굴 위의 그게 문어발처럼 보이는 건가?

“아빠는 어디가 문어 같은 지 모르겠어”


소아놀이터로 들어가니 다른 어린이 하나가 아빠와 있었다.


아이가 피아노를 아무렇게나 누르고 있다.


지은이는 병원에서 처음보는 또래 아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 언니인가? 친구인가?”


창 밖을 보러 가다가 멈춰서서 관심을 보이지만 다가가진 않는다.


아빠 대 아빠의 대화가 시작된다.

“몇 살이에요?”

-세 살이에요.


”어, 지은아. 지은이랑 친구인가봐“

“21년 생인가요? ”

-네.


그런데 이쪽 아빠도 저쪽 아빠도 소셜스킬이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스몰토크’는 이어지지 않는다.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하고 물으면 왠지 감당 못할 답변을 들을 것 같고, 아이들끼리 좀 놀면 병원생활 적응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쉽다.



저쪽 아이도 관심을 보이지만 선뜻 지은이에게 다가와 말을 붙이진 않는다.

아빠도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그러고보니 이 아이 지은이 언니 사야와 비슷한 인상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두 사람이 피아노 반대편으로 걷고 창문 밖을 보다가 자리를 비운다.

그제서야 지은이가 걸어다닌다.


”우유 먹을래?“

-응


”캐슈넛도 줄까?“

-먹을래.


연두색 나무 모형(?) 아래 앉아 우유를 먹는다.


그래, 우유라도 마셔야지.

와그작 와그작.


그렇게 소아놀이터에서 먹고 조금 놀고 다시 병실로 돌아가니 병실은 꽤 시끄러웠다.


지은이 옆 병상의 외국 아이가 핸드폰을 틀어놓고 뭔가를 보는 것 같다.

아이를 간호하던 아버지도 자기 볼 걸 보는 지 소리가 두 가지 이다.


병상 주위를 둘러싼 커튼을 치웠다.

답답한 것보단 프라이버시 포기가 낫다.

아이도 그 편을 선호했다.


밥은 됐고, 두부라도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간장이 뿌려져 있는 두부가 왠지 맘에 안드나보다.

시금치를 먹여본다.


집에서는 야채도 엄청 잘 먹는데…


”매워“


짜다는 말이다.


바로 뱉는다.


”그럼 낫또 먹고 요거트 먹을까?“


아, 동생이 낫또도 사왔었다.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야 처음 들어본 음식인데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심지어 좋아했다.

냉장고에서 스스로 꺼내 먹을 정도로.


”낫또. 먹을래“


떠 먹여주려하니 숫가락을 뺏어 들고 말한다.

”내가 먹을거야“


잘 안된다.

하필 아이 식사에 딸려나온 숫가락이 아동용이 아니었다.


한 두번 하다가 잘 안되니 말한다.

”아빠가 먹여줘“


낫또는 잘 먹네.

금새 한 팩을 다 먹고 이젠 요거트 차례이다.


설탕이 안 들어간 것도 잘 먹는 지은이이지만 동생이 사온 플레인 요거트는 꽤 달다.

단맛에 길들여지면 다른 맛들은 ‘맛이 없다’로 인식되기 쉬운 것 같아 이유식 기간 떄도 최대한 단음식을 나중에 소개시켜줬었다.


결과는 대성공.

다른 집 아이들이 싫어하는 모든 야채를 맛있게 먹는 지은이.

당근, 브로콜리, 가지, 청경채, 온갖 버섯류 까지.


그러고보니 반찬 중에 버섯이 있다.


”버섯 두 개만 먹고 요거트 먹을까?“


입에 넣어주니 한 번 씹고 뱉는다.


”매워“


그치. 짜겠지.

결국 이건 또 내 밥이 되겠구나.


”그럼 고모가 사온 바나나 먹을까?“


요거트만 먹으면 왠지 부족하다.


동생이 사온 바나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작은 바나나.

아마 안 먹어본 품종일 거다.


껍질을 까서 건내주니 냄새를 맡아보고 맛이 없다고 한다.


응? 냄새로 아는 거야?


한 입 먹어보니 익숙한 바나나의 맛이 아니라 묘한 상큼한 맛이 있다.


결국 아빠의 비상식량 아몬드, 캐슈넛과 요거트, 샤인머스켓, 우유로 저녁을 떼운 지은이.

그래도


”약 잘 먹어야 빨리 나을 거야.“


-약 먹어야 빨리 낫지?


”그렇지. “


-빨리 나아야 집에 가지?


”어“


아, 설마 또 울려나.


”약 먹고 물 넣어줘“


휴, 다행이다.


작은 약통에 100밀리그램의 아스피린 분말을 타서 먹인다.

가스터 정이라고 위액분비를 억제하는 약도 같이.



약은 늘 더하기의 느낌이다.

치료에 필요한 약 하나.

효능과 함께 부작용이 있는 게 대부분이라 그런 부작용에 대응하는 약도 추가된다.


항생제를 먹으면 소화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걸 아니깐 유산균을 넣고…



그렇게 겨우 식사 후 약도 먹고 나니 이젠 스티커북으로 좀 놀다가 잘 시간이 되어간다.

병원에서 나온 밥이 아까우니 먹어야지.

지은이가 스티커북의 스티커를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며 중얼거리며 노는 것에 말대꾸를 해주며 밥을 먹는다.

보호자 식사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밖에서 먹을 땐 그러면 모자라서 늘 3인분 이상을 시켰는데.

아직은 식사량이 돌아오지 않았다.


먼저 내보내야 또 공간이 생길텐데.

오늘 들어간 낫또가 지은이 장 속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바라며 미생물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화이또’


한 젓가락에 한통의 반찬을 전부 입으로 옮겨넣는다.

밥도 식은 국의 건더기도.

두부도 버섯도 시금치도 다 아빠 몫.


남이 차려준 밥의 소중함은 육아하며 알게 된 건데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으니 감사히 잘 먹어야지.



”지은아, 아빠 밥 저기에 치우고 올게. 일어나면 안 돼.“

-응


지은이는 스티커북에서 고개를 들고 자리를 비우려는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한다.


입원할 때 낙상에 대한 주의를 할 때, ‘사망’이란 단어도 언급할 정도이다.

조심해야지.


입원기간을 그런 걸로 늘릴 수 없지.


다행히 지은이는 위험한 것에 대한 구분을 할 줄 아는 편이고 조심스럽다.


빠른 걸음으로 오십보 쯤 되는 거리를 후다닥 다녀온다.


아이는 아직도 열심히 스티커를 떼었다 붙였다 하며 놀고 있다.



”양치하고 자야지?“


아내는 구내염이 있으면 치약 대신 소금물로 양치를 하는 게 좋다고 했던 걸 기억했는지 치약대신 죽염이 담긴 통과 칫솔을 싸줬다. 근데 이번에는 구내염이 아닌데…


농도조절이 어렵다보니 맵단다. (짜다는 말이다)


꾹 참고 양치를 시키고 여러 번 헹구고 다시 노는 시간.


9시 반이 되어 소등시간이 되고 불을 껐는데도 옆 병상은 소란스럽다.

병실에는 영상시청과 통화는 이어폰으로 하라고 써있지만, 아픈 외국인 아이와 그 외국인 아빠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나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지은이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면서 다른 사람들의 잠을 방해한 적 있으니.



다시 드러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졸려지길 기다렸다.

어두워지면 졸려지는 지은이.

나를 등지고 스티커북을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한 손만 뒤로 뻗어 내가 있는지 만진다.

아빠를 찾는 지은이 손에 내 손을 뻗어 잡아준다. 불편한 지 손은 다시 앞으로 간다.

나는 손을 뻗어 등을 토닥토닥 해준다.


어느덧 스티커북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어 얼굴을 보니 지은이의 예쁜 눈이 감겨 있다.

그렇게 9월의 첫 날을 병원에서 시작한 우리 부녀는 서로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다.




D+9: MON 입원 4일차



드디어 평일이다.


원래 응급실을 안 가려고 노력했다.

예방접종은 언제나 금요일을 피했다.

만일을 대비해서이다.


병원에서 인턴근무를 하던 친구들에게 들은 당직표와 관련된 내용이 미친 영향도 있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평일 근무 시간에 찾아가는 게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긴 누가 일부러 응급실을 선택해서 가겠나.

급하니깐 가지.


어떤 상황에서는 부모의 마음이 급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나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의료조치’가 큰 차이가 없을 때도 있다. 경우에 따라 기다리며 경과를 지켜봐야하기도 하고, 같은 상황이 재현되야 정밀진단이 가능하기도 하다.


지은이는 병원에서는 유독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옆에 아빠가 없어지니 왼쪽으로 드러누웠다 오른쪽으로 드러누웠다 하며 뒹굴거리며 잔다.


‘지은이도 아빠와 같이 자느라 불편한 구석이 있었겠구나…’


링거 호스가 감기면 다시 풀어주며 지은이를 향해 서서 스트레칭을 하고 킨들을 읽는다.



오늘은 의사선생님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지은이가 내가 옆에 없는 걸 알고 “아빠-! 어디갔어?” 하며 눈을 뜬다.


깨자마자 밥을 먹이는 건 식욕도 없고 배도 안 고플 것 같으니 먼저 놀이터행을 택했다.


우유와 견과류를 챙겨서 이동해서 햇볕이 드는 소아놀이터에서 조금 걷고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어제 했던 내용과 같다.

그래도 매일 새로운 걸 이야기 하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재잘거린다.



창가를 따라 걷고 피아노를 치고 ‘쿠션나무’ 아래 앉는다.


“우유 먹을래?”


평소 아침의 패턴이다.


우유를 마시고, 견과류를 먹는다.

그 다음은 삶은 계란.


오늘은 계란이 없으니 일단 이렇게.


다행히 식욕은 있나보다.


그렇게 소아놀이터에서 놀다보니 회진시간이 되어 자리로 돌아갔다.


병상 위에 차려진 아침 밥상 앞에 앉아 조금씩 먹고 놀고 하다보니 토요일이 오셨던 머리가 흰 중년의 의사선생님께서 오셨다. 이번엔 뒤에 여러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함께이다. 드라마에서 종종 봤었던 장면.



혈액검사 결과에 대해 염증수치를 상세히 얘기해주신다.

입원시 3.9에서 3.0까지 낮아졌다고.


“다 떨어지는 거 보고 퇴원하는 건 아니고 내려가는 추세를 보고 결정할 거에요”


내일 초음파검사 해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테니 기다려보란다.


결국 오늘도 지은이의 질문에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없게 되었다.


별 상황 없으면 퇴원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적인 말을 해주신다.


초음파 예약이 오후이니 빨라야 수요일 퇴원.



그렇게 우루루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나간다.


아이와 남은 식사를 하며 이야기한다.


“내일 검사 하나 더 하고 나면 언제 갈 수 있는 지 알려주실 거래.

지은이가 약도 잘 먹고 검사도 잘 받아서 잘 치료 되고 있데.

그런데 내일 오후 예약이니깐, 내일 하루는 더 병원에서 자야 할 것 같아.”


-집에 언제가..?  


눈물이 또 시작되기 전이다.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 오실 때 아이패드 가져다 달라고 했어. 장난감이랑.

아이패드 오면 집에서처럼 하루에 2 편 보여줄게.”


-호비 보고 싶어.


“응, 있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오시면 보여줄게. 밥 다 먹고 기다리자”



그렇게 오전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낫또, 요거트, 삶은 계란들이 공수되었다.


면회가 불가능한 시기라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게 두었다.


재잘재잘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이야기 한다.



아이가 잃은 일상을 조금씩이라고 회복시켜줘야 입원생활 중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장난감들을 부탁했다.

그렇게 평소에 안고자는 인형인 호비의 동생 하나도 병실로 왔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야채와 과일들도 병원으로 오게 됐다.


잘 때 읽어주는 책들도 네 권 확보되었다.


십여분 넘게 출입문에서 지은이와 이야기를 하시던 부모님이 가시기 전에 함께 기도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책이랑 장난감도 가져다 주셨어~ 침대에 가서 놀까?”

-좋아


신나하는 모습에 마음이 좀 놓인다.


지은이는 내가 평소에 읽어준 적이 없는 ‘하마의 방귀’라는 책을 먼저 골랐다.

낮잠을 자던 하마가 뀐 방귀에 벌, 코끼리, 고양이, 생쥐, 코뿔소가 피해를 보는(?) 이야기이다.

짧은 책이지만 이게 그렇게 재미있나보다.


염증수치는 3.9에서 3.0이 되었는데 참고치(정상범주)가 0.0~0.5이니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혈액검사 수치가 정상화 되면 돌아가는 게 아니라 감소추세를 보고 퇴원을 결정한다고 했다.


내일 심장초음파를 봐야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책을 보며 쉬다가 식전 운동 겸 다시 소아놀이터를 가자고 하니 흔쾌히 가겠단다.


소아놀이터엔 사람이 늘 없었다.

지난 번에 만난 아이 말고 아직 까지 만난 사람은 없다.


아이와 소꿉놀이를 하다가 드디어 아이패드를 열었다.


오랜 만에 집에서 보던 콘텐츠를 하나 보고, 큰 화면으로 엄마와 언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이제 막 서는 걸 연습하는 돌도 안된 막내가 화면에 들어온다.


다행히 아빠를 알아본다.

지은이와 첫째 사야는 아빠가 점심을 먹고 온다거나 회식을 하고 오면 모르는 척을 했는데…

짜식….의리 있네.


지은이도 언니가 보이니 반가운가보다.

엄마와 언니를 보고 반가워하지만 아직 말을 하진 않는다.


아이들이 확실히 아직 영상통화를 어색해한다. 기계에게 말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


집에 있는 사야는 엄마와 할머니와 만든 것을 자랑한다.

지은이는 고모가 사준 스티커북을 보여주며 나도 이거 있다고 자랑하니 사야도 집에서 고모가 사줬다며 스티커북을 가지고 화면으로 나타난다.


서로 자랑을 한참하다가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않더니 지은이 언니 사야는 어딘가로 달려가 버린다.

남은 건 아직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막내.


“오~ 우워~“ 하며 화면을 가르키는 막내.


그래, 너도 둘째 누나랑 아빠가 보고 싶었구나.


코끝이 괜히 찡하다.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놀이터에서 놀았다.


그러다가 창밖을 보고 서있던 지은이가 갑자기 외친다.


”아빠, 응*가 나올 것 같아.“


드디어!! 병원에 온지 4일만에 배변활동이 정상화 되는 건가?

낫또와 요거트의 유산균들이 드디어 임무에 착수한 것인가?

아, 그러고보니 병원의 정장제와 유산균도 1회 투입되었구나.


후다닥 안고 병실의 화장실로 가고 싶지만 링거가 달린 바퀴달린 녀석과 함께 이동해야 한다.

일단 함께 온 유모차는 포기하고 화장실로 향한다.


휴업기간에 비해 적은 량이었지만 일단 성공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나와야할 응*’가 나왔을 때의 안도감.


병상에는 호비의 동생 하나와 내 동생이 사온 미니마우스, 그리고 네 권의 알록달록한 책들이 자리를 잡았다.


월요일은 그렇게 조금 더 일상과 가까워진 모습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또 다시 긴 낮잠과 늦은 점심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졸리니 올라온 짜증에 또 다시 ‘집에 언제가? 집에 갈래‘의 울음이 짧게 있었지만, 금방 사그라들고 잠이 들었다.


’지은아, 아빠도 궁금해.  우리 언제 집으로 가지?‘




D+10 TUE 입원 5일차.


드디어 심장초음파가 있는 날이다.

이 달갑지 않은 일본이름을 가진 병이 소중한 지은이의 심혈관에 피해를 입히고 갔는지 알 수 있는 날이다.

심전도 검사는 괜찮았었는데, 역시 확실히 해두는 게 좋다.


처음 해보는 검사라 괜히 또 겁이 나서 울까봐 심장초음파가 어떤 건지 열심히 예습시켜준다.


“지은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엄마 아빠가 지은이가 잘 있나 심장소리 들어볼려고 초음파 검사 했었어”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었어?-


알면서 또 묻는다.


“어, 엄마 뱃 속에서 오래 있다가 나왔지-“

-엄마도 초음파 했어?


“어. 하나도 아픈 거 아니야. 미끌미끌한 젤을 바르고 문질 문질하면서 소리를 듣는거야.

모기 물릴 때 발라주는 알로에 같은 거를 뿌리고. 좀 차가울 수도 있는데, 아픈 건 아니야.”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따끔한 것도 아니고. 뾰쪽한 것도 아니야.”

-나 예방주사 맞을 때도 안 울었지? 잘했지?


“그치. 지은이는 씩씩하니깐 이것도 잘할 수 있을 꺼야.

심장소리를 들으면 (두근 두근: 심장소리를 흉내낸다) 지은이가 언제 집에 갈 수 있는 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실 수 있데“


-집에 가고 싶어

“응. 아빠도 가고 싶어. 이 검사 잘 마치고 약도 잘 먹고 하면 금방 갈 수 있을 지도 몰라.

언제 갈 수 있는지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실꺼야. ”


-언니보고 싶어

“응. 오늘 하루 더 자고 나면, 내일 집에 갈 수 있을 지, 의사선생님이 가르쳐주실 꺼야”



오전 회진은 월요일 회진과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여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말씀해주신다.

나도 여러 가지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차분함을 전해주는 목소리의 소유자는 처음이었다. 영어 문장의 비유 중 옷감/원단의 표현을 빌리자면 ‘벨벳’과 같은 ‘스무스’함이겠다.

소아과에 최적화된 목소리인걸까?


’오늘 오후 예약된 초음파 결과가 이상이 없으면 내일 퇴원가능할 거에요‘


퇴원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시니 갑자기 이 분이 미인인건지, 좋은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각이 주관적이 된 건지 헷갈려진다. 퇴원, 귀가의 날을 전하는 천사의 목소리가 남긴 차분함이 왠지 조금 남아 있던 긴장감을 지워주었다.



’천사의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 평온한 오전의 일상이 흘러간다.

왠지 낮잠을 자고 가면 심장초음파가 더 ’좋게‘ 나올 거라는 망상에 낮잠을 유도해보지만 책을 여러 권 읽어도 졸린듯 졸린듯 하다가 안 잔다.


그렇게 어느덧 초음파 예약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심장초음파실로 이동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소아병동을 벗어나니 또 이 곳 저 곳 궁금한 게 많아지는 지은이는 쉴새 없이 재잘거린다.


”저건 나무야? 물고기야?  저건 엄마네?”


-응? 엄마?


조선시대 화풍으로 그려진 성모마리아인가보다.


11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의 심장초음파실로 향했다.


소아과여서 그런지 역시 여선생님이시다.

초음파실이어서 그런지 역시 좀 어둡다.


아이가 누워야 하는 침대 쪽에는 모니터가 달려 있었다.

아이 옆에 앉으려하니 아버지도 올라가서 같이 누워야 좋단다.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며.


그렇게 아이 옆에 누워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아빠가 얘기해줬던 거 기억하지? 아픈 거 아니야”


다행히 선생님도 경험이 많으신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아빠의 설명에 신빙성을 더해주신다.


지은이가 아까 들었던 내용을 이야기한다.

”내가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이거 했었지?“

-어. 소리가 날 꺼야.


선생님이 정정해주신다.

“아, 여기선 소리는 안 들려드려요.”


’앗…‘


“지은아, 여기서 소리는 안 들린데. “


선생님은 보조모니터를 켜주신다.


<놓지마 정신줄> 란 만화영화가 나오고 있다.

들어본 적은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몰라 원활한 검사를 위해 그냥 둘까 잠시 고민을 한다.


지은이는 갑자기 말 없이 멍하니 화면을 바라본다.


’그래, 이런 걸 원해서 틀으시느 거겠지‘.


2-3분 보고 있자니 이건 만2세가 볼 내용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세가 불편하지만 핸드폰을 꺼내 우리 사진을 보는 게 낫겠다.


“모니터 꺼주셔도 될 것 같아요.“


우리 사진을 보며 그렇게 심장초음파 검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자세를 바꿔 돌려누워서 또 보고.


드디어 심장초음파가 끝났다.

흉부에 뿌려진 젤을 닦으며 결과를 얘기해신다.


”내일 담당선생님께서 상세히 설명해주실 거긴 한데, 지금 보기로는 문제가 없어보이네요.“


관상동맥의 상황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저 말에 이미 다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내일 퇴원할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물으려다 깨닫는다.


’아, 이 분이 정하는 게 아니지…’


아무튼 수요일에 집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더 올라간 거다.



그렇게 다시 병상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고 엄마와 잠시 영상 통화를 하고 나서 초음파를 위해 늦춰진 낮잠을 잤다.


조금 자고 먼저 일어나 지은이가 자는 동안 옆 환자 체온측정으로 찾아온 간호사선생님께 묻는다.


“혹시 저희 퇴원일정을 알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안 알려주셨나요? 내일 퇴원하실 것 같은데요?


그러고보니 몇 시간 전에 퇴원예정서를 주면서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미리 신청하라하기도 했다. 그런데 확정된 건 아니란 토도 달았잖아요?


음.

정확한 표현을 중시하는 어문계열(복수전공)의 이성파 남성으로서 뭔가 석연치 않다.


’같은데요? 같은데요…? 같은데요…..?‘


거기다대고 다시 물어보긴 뭐하니 자리로 돌아간다.


지은이의 퇴원소식을 기다리는 가족 단톡방에 이 ’퇴원할 것 같은‘ 소식을 전한다.

또 지은이를 위해 같이 기도해준 친구부부 단톡방에도.


’내일 퇴원할 것 같데요‘


누구 하나 ’같데요‘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심장초음파도 괜찮고, 혈액검사 수치도 감소추세이고, 몸 어디에도 카와사키병의 재발의 힌트는 없다.


가장 신경쓰이는 건 눈과 얼굴의 붓기.


’저 수액병을 떼어내면 더 잘 움직이고 잘 먹고 잘 싸고 회복 속도가 빨라질텐데…’



돌아와서 다시 킨들을 읽다가 일어난다.

지은이가 자는 동안 아이물병과 내 물병에 물을 받으러 배선실로 간다.


배선실이란 단어의 한자가 궁금하지만 찾아볼 여력은 없었다.


물을 떠오며 돌아오는 길에 다시 간호사실에 들러 물어본다.


‘혹시 수액은 언제 뗄 수 있을까요?’


옆에 앉아있던 오늘 처음보는 간호사가 혀를 차며 대답한다.

‘아직 멀었을 껄요? 퇴원할 때 뗄 수 있어요’



수액은 왜 달고 있어야 하는거지?

밥도 물도 잘먹는데 굳이?


”아, 애 붓기가 신경쓰여서요.“

-손이 너무 붓거나 주사바늘 꽂은 곳이 붓지 않으면 아마 안 뺄 거에요. 선생님께 말씀드려볼게요.“


“네.”


‘그래, 병원 프로토콜이 있겠지. 굳이 여기서 모든 걸 내 맘대로 최적화 할 수 없지. 또 다른 검사가 필요할 때 바늘을 꽂는 것도 힘들테니..’


낮잠을 자는동안 체온을 재러 온 간호사.


정상체온으로 내려갔던 아이의 체온이 다시 올라갔다.

고막으로 재는 체온이 계속 37도 후반대가 나오니 겨드랑이 밑에서 재는 걸 한다.


처음 겨드랑이 체온계를 만난 지은이는 뭐가 무서운지 운다.

바늘도 아닌데 겨드랑이에 체온계가 끼워진(?) 것만으로 울다가 안아서 달래니 괜찮아진다.


그렇게 또 다시 저녁 밥이 온 후에야 잠에서 완전히 깬 지은이와 또 소아놀이터를 들렀다가 유모차로 병실복도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


배가 고플 때 먹여야 먹는다.


식판 위의 흰 쌀밥에는 관심을 조금 보이고 고기도 조금 먹다가 만다.

결국 비장의 무기 낫또와 과일과 요거트로 전향한다.


오늘 따라 식사태도가 불량하다.

먹다가 자꾸 드러눕는다.


하지만 환자를 혼낼 수는 없는 일.


“밥 잘 멀고 약도 잘 먹어야 빨리 낫고 집에 갈 수 있을꺼야”


‘아, 이건 협박인가…‘


약간의 죄책감이 들려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아스피린이 들어가서 혈관을 지켜줘야 한다.

약 이름도 ’아스피린 프로텍트‘ 이다.



그 날 밤 지은이가 잠든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조용히 빨리. 최소한 소음과 최고의 속도로.


개운하다.

퇴원의 가능성만큼이다.

몸이 홀가분해진다.


침대에 돌아와 지은이 발쪽으로 아이패드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내일이면 퇴원을 하고 그럼 이렇게 침대 위에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겠지?

영화나 한 편 보고 잘까…? ‘


올봄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자격을 얻은 후,  영화를 보고 싶은 걸 쭉 참아왔으니 꽤나 큰 유혹이다.


영화 한 편의 여유.


나의 선택은 지난 4개월간 늘 ’그럴 여유가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자‘ 였다.

결국 아이패드를 접고, 킨들을 들고 눕는다.


영화는 나중에.



D+11 입원 6차 


퇴원할 것 “같은” 날이다.

여전히 새벽의 간호사의 체온측정이 있었고, 처음으로 체온을 재고 있는 순간에서야 눈을 떴다.

긴장이 풀린 걸까  그만큼 피로가 쌓인 걸까.

그 전 날까지만 해도 병상 앞에 ‘후레쉬’ 불빛에 먼저 반응하고 눈을 떠서 체온측정을 도왔다.

귓가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아이를 다독이며 안심시켰다.


여전히 체온이 높다.

이상하다며 또 다시 겨드랑이 체온을 쟀다.


다시 잠이 들어 아침이 되니 식사시간이다.

지은이는 여전히 아침에 못 일어나는 이상패턴 중이다.


간호사실에 물었다.

오늘 퇴원하라는 안내가 있었는지.


’아, 얘기 못 들으셨어요? 10시까지 퇴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세요‘


아, 이 분도 천사네.



일어나서 물을 먹이고 다시 소아놀이터행.

햇빛을 쬐며 고모가 사다준 티니핑 보리차를 준다.


그 보리차가 그렇게 맛있는지  일요일부터 입에 달고 있다.

’수액 안 달아도 탈수 위험 없다니깐요…‘



아버지께서 퇴원을 ’맞이하러‘ 오고 싶다는 걸 말렸다.

공수받은 물품이 많긴하지만 잘 정리하면 나 혼자도 충분하다.

굳이 노년에게 장거리 운행의 부담을 지워줄 필요가 없다.



소아놀이터에 오는 동안 간호사실(?) 카운터에 있는 ’프라하의 아기예수님‘ 상을 지난다.


“아빠 저거 뭐야?”


설명하기 아주 힘든 물건이다.


왠 백인 유아가 왕관을 쓰고 있는데 그 밑에 ’프라하의 아기예수‘라고 써 있다.


예수는 유대인이니 백인은 아니고, 이스라엘에 살았으니 프라하에는 간 적이 없을텐데… 그리고 왕관에 왕실복장을 입고 있는 아기 예수는 역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

“프라하의 아기예수님  이라고 써있네? ”


-예수님이야 ? 망토입어?


끄응.


대답해주기 좋아하는 아빠가 피하고 싶은 질문을 드디어 만났다.


”그런가봐“


‘애당초 지은이가 다니는 개신교 교회의 개념으로는 저건 아마 ‘우상’조각일텐데…’ 아직 ‘우상’이 뭔지 못 배웠을테니 이건 아직 설명불가이다.



유모차를 밀고 유리상자 안에 담겨있는 조각상을 지나려는 찰나, 회색 복장의 수녀님과 마주쳤다.


인자하게 웃으시며 아이에게 말을 건다.


“이름이 뭐에요?”


음. 천주교신자인 직장동료 사내변호사와 동갑내기와 친했던 시기가 있어 천주교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지만 수녀님과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라 어색하다.


짧은 대화가 오가고 병실을 향해 가려 헤어지는 인사를 한다.


“자주 봐요”


…네?

-자주 봬면 안되죠. 오늘 퇴원할 건데


나도 모르게 맞받아친다.

유머로 가장한 시니컬함이 돋아난다.




수녀님이 당황하신다.


”아, 그렇죠. 퇴원하셔야죠“


조금 미안하지만 ”네“ 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 만나야 하는 수녀님을 자주 본다니…


악담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인삿말이겠다.


’새로 오셨나……‘


‘안 볼거다. 뭐.’



병실에 돌아와 남은 짐정리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며 회진을 기다렸다.


오늘은 다른 선생님이 오셨다.


카와사키병의 증상들이 돌아온 게 없다는 걸 설명하고 입원시와 어제 눈 사진을 찍은 걸 보여주며 충혈 상태를 대조할 수 있게 해드렸다.

퇴원하겠다는 아빠의 의지.


의사 선생님께서는 퇴원에 대한 확정을 이야기 해주시고, 앞으로 아스피린을 계속 먹어야한다는 것과 혹시 발열이 있을 경우, 응급실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같은데요“로 끝나지 않는 퇴원소식에 정보입력이 잘 되지 않는다.


어떤 메모도 하지 않고 안내를 들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는 모두 미인인 걸로.



드디어 퇴원이다.


”지은아. 선생님이 퇴원해도 된데”

-집에 가세요!‘ 했어?


아이에게 나중에 있을 퇴원 소식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고 했던 표현이다.


”지은이가 안 아프면 이제 병원에서 더 자고 싶어도 못자. 안 아픈 사람은 병원에서 나가야해.

지은이가 ‘더 자고 갈래요’ 해도 의사 선생님이 ‘안돼요. 집에 가세요!’ 할 거야“


”응. 이제 짐 싸서 집에 갈 거야“

-우와 신난다!!


밥상에서 음식을 먹으며 쫑알댄다.



재발가능성이 있다는 걸 숙지하고 있으니 100% 안심이나 안도감이 드는 건 아니다.

일단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서 편안한 환경에 있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장갑도 벗어?“

-응


드디어 주사바늘을 뽑을 수 있는 날이다.

지은이는 주사 바늘을 뽑을 때, 생각보다 많이 울었다.

지혈을 위해 주사바늘이 꽂혀있던 곳을 누르고 있는 게 너무 아팠나보다.

뽀로로 스티커가 붙여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통증을 이기기엔 뽀로로는 무력했다.



유모차 아래 가방을 하나 넣고, 큰 가방을 메고, 가벼운 잡동사니들을 담은 커다란 장바구니로 비닐백.

부모님과 소통이 잘 되지 않고 병원으로 지은이 퇴원을 돕겠다고 온 동생에게 가벼운 장바구니를 넘기니 남은 원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치료비를 내며 생각보다 싼 금액에 놀라고 1층으로 내려가 처음으로 발급해본 의무기록사본을 받고 마지막에 주차비용 정산이 남았다.


뭐가 그리 복잡한 지 한참을 설명하며 두 개의 영수증을 끊어주었다.


그렇게 다시 한강을 따라 집으로 달려 가는 길은 입원하러 오던 밤길과 대조적이었다.


우선 차가 많았고, 평온한 내 심경에 돌을 잘 던지는 여동생이 옆에 앉아 있었고, 아프지 않은 내 딸이 운전선 뒤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두 자매는 처음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있다가 ’상봉‘했고,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쫑알거림으로 서로를 환영했다. 지은이 입원 기간 동안 상주하며 육아를 도와주신 어머니도 계셨다.


다행히 센티멘털한 눈물은 없었다.



첫째를 안아주고, 막내를 안아주고, 식탁 위의 음식을 향해 달려가는 둘째를 저지 하고 손을 씻게 하려 하니 반전의 소식이 우리를 맞이한다.


”오늘 2시까지 단수래“


빨아야 하는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샤워를 하고 싶었는데, 머리를 감고 싶었는데, 2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


역시 인생의 곳곳엔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2일 이상 머리를 못 감았다. 그게 5일이니 2시간 더 기다릴 수 있다.


이제 집에 가서 쉴 수 있게 되신 어머니는 동생과 나가신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안아준다.


”고생 많았어.“


아내가 섭섭했다는 듯 말한다.

 

”나는 이제야 안아주네? 애들만 안아주고“


그렇네.

우리 집 ’큰 애기‘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난 네 명을 돌봐야 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며.


지은이는 놀이터로 나가 신나게 그네를 탔다.

퇴원 당일 오후에도, 그 다음 날에도.

수요일 퇴원, 금요일 밤에 열이 잠깐 오르긴 했지만 다음 날 아침에 괜찮아졌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pilogue : 퇴원 후 D+6



퇴원 후 프로토콜 중에는 열이 나면 응급실로 와야한다고 했다.

몇 도 였더라…


퇴원 소식이 기뻐서 그 수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을 해봤다.

한국소아과협회 자료에서는 37.5도 이상이라고 나오고 미국과 영국 자료를 보니 38도이다.



그런데 어제 시작된 지은이의 열이 38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은 아니다.

퇴원 후 2일차 밤에도 아이가 뜨거워 체온을 재어보니 38.3도가 됐던 때도 있었다.

아내가 나를 배려해준다고 부서 회식에 참석을 하고 오라고 했던 날이다.


그렇게 오후에 출근을 하고 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8시에 집으로 와보니 아이는 자고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7시반에 벌써 재웠단다. 낮잠 패싱의 힘이다.


방이 너무 더워서 그런 것 같아 에어컨을 켜고 시간이 지나 아침에 다시 재어보니 결국 37도 초반으로 내려갔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계속 상승추세가 이어지는 중.


결국 휴가를 내고 오전부터 아이의 상태를 보며 체온을 봤다.


24시간이 지났지만 37.7도에서 하향세를 보이지 않고 38.3도까지 간 채 꺽이질 않았다.


응급실에 가야한다.




지난 입원 때 너무 경황없이 갔던 걸 교휸삼아 이번엔 출장모드이다.

캐리어를 꺼내 아이옷, 기저귀, 내가 갈아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담아 나온다.


3시에 출발했으면 좀 나았을텐데, 5시까지 기다리다 출발하게 되었다.



이번엔 울컥하지 않는다.

겪어본 일이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대기 중에 아이의 머리를 만져보니 시원하다.


응? 이제 내려가는 추세인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소아과에 들어가 묻는다.

”혹시 체온 좀 잴 수 있을까요? “


38.7도.


더 올랐다.


그저 에어컨 바람에 이마가 시원해진 거 였다.




아, 서울성모병원은 너무 멀다.

예상소요 시간 1시간 15분..


가면서 더 늘어나겠지?


응급상황이라면 거기까지 가는 게 옳은 선택일까?


문득 퇴원을 앞두고 병실 복도에서 만났던 수녀님의 말이 떠오른다.

“자주 봐요”

…….


싫은데요.

또 보는건가요?….


첫째를 출산한 세브란스 병원을 검색해보니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갈등.

가방에 지은이의 의무기록사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병원이 바뀌면 아마 다시 검사해야하는 것들과 절차가 더 늘어나는 것도 있을 거다.

성모병원에서 인턴을 한 친구에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가는 걸 이야기하니 같은 의견이다.

결국 아무리 막혀도 서울성모병원까지 가는 게 효율적이다.


가자.


아이는 그 때처럼 ’졸려’ 와 ‘호비 틀어줘’를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

이번엔 ‘집에 가고 싶어. 집에 언제가?’ 가 울음과 함께 추가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우는 아이를 뒤에 태우고 다시 한강변을 달리는 러시아워.


도착하니 7시이다.


다행히 다른 반응들은 없다.


증상은 열이 있다는 것과 배가 아프다는 것.


10일만에 돌아온 응급실.

얼마되지 않아 익숙하다.

이번엔 깔끔하게 캐리어가 있고 캐리어 손잡이에 꽂히는 출근용 가방도 있다.

내 등엔 땀이 나지 않고 아이를 앉아도 가방의 무게는 별개이다.

이번엔 마스크도 철저히 챙겨왔다.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가니 온도를 재어보고 말한다.

“38.7도네요? 39도도 안 넘는데 오셨네요?”


-카와사키병 퇴원 후 38도 넘으면 오라고 들었는데요?



복통을 얘기하고 아픈 부위를 듣더니 말한다.


‘장염배네. 엑스레이 찍고 다시 볼게요.‘



10여일만에 세번째 엑스레이.

나도 다시 또 방호복을 입는다.


이번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찍는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 의사선생님과 만난다.


“엑스레이보면 장염이네요. 여기 여기 여기 ..

토는 안했어요? 서너번 했어도 안 이상한데?


“토 많이 해서 온 아이도 얘보다 엑스레이가 얘보다 안 심했어요”


지은이가 좀 튼튼하긴 하죠.

“39.5도 40도 되어도 잘 먹고 잘 먹는 애긴 해요”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그러니깐 카와사키병 재발의심이 되서 오신 거죠?


-네, 글로불린 불응성이면 다시 스테로이드랑 같이 투여할 수 있을 거라고 알고 있어요”


“글로불린 불응성이면 ….2일 내로 알 수 있을텐데. 그건 아닐 것 같아요. 그거 검사 위해 아이 피 뽑는 건 아이가 힘들 것 같고”


’팔로우업 검사가 언제죠?


-모레요.


교수님께 전화를 하는 듯 하다.

“일단 장염 약 처방해드릴테니 나가서 기다리세요”



지은이는 차에서 좀 자서 그런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배가 고프다며 바나나를 먹고 비상식량이었던 뽀로로 까까를 열심히 먹는다.


응급실에서 제일 멀쩡한 애.


마침 엑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는 도중 실려온 어린 여자아이는 수혈팩과 형사와 함께 왔었다.


지은이가 필요한 환자들의 병상을 뺐으면 안된다.


그런데 조금 불안하다.

왜 카와사키병 퇴원환자가 38도가 넘으면 응급실로 오는 걸 모르지?

혹시 뭔가를 놓치는 건 아닐까? ‘


에버노트에 저장해둔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퇴원 후 관리 자료를 다시본다.

38도 맞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퇴원지침 -웹페이지


입원의 각오로 왔다가 약만 받아 가자니 조금 불안하다.

의사선생님이 잘 몰라서 응급상황의 가능성을 배제한 건 아닐까?


약을 가져다준 간호사에게 묻는다.


”혹시 가기 전에 의사선생님 다시 봽고 뭐 여쭤볼 수 있을까요?


-지금 자리 비우신 것 같은데 말씀 해놓을께요.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의사선생님.

배도 고프다.

지은이도 졸리단다.


“병원에서 안 자도 된데. 좋지?”

-응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른 증상은 없으니.


그저 장염이면 나도 좋다.


차에서 잠든 아이를 침대로 옮긴다.


입에 자일리톨 스톤을 넣어주니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다.


양치를 위해 깨우긴 그렇고 오늘은 이렇게 하자.


다음 날 아침 체온 37.2.


약도 못 먹였는데 내려갔네.


다행이다.




퇴원 후 D+8: THU

혈액검사가 있는 날이다.


담당의사선생님을 봽기 전 2시간 정도 일찍 와야 했지만 비 오는 목요일.

그것도 추석연휴를 앞둔 주말의 목요일이어서 인지 차가 유난히 막혔다.


진료를 위해서는 2시간 일찍 도착해서 혈액검사를 한 후 결과가 나와야 담당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눈물의 채혈 후, 병원 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기다렸다.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 류귀복 작가님의 근무장소인 4층도 둘러보고 1층의 수족관 겸 액자 (?)을 보며 이야기 하다가. 그리고 마지막엔 지하 1층에서 앉아서 쉬며 바나나를 먹는 등 긴장감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 시간 반정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아. 그 차분한 목소리의 천사선생님이시다.


‘혈액검사는 깨끗하네요. “


-염증수치가 3.9, 3.0에서 퇴원했는데 지금 어떤가요?


”0.2대네요.“

집에 가기 전에 출력해서 받아온 의무기록사본



휴, 정상범주이다.


"다음엔 38.3도가 3일 동안 유지 되면 그 때 응급실 오는 걸로 알고 계시면 되요"


-지난 번에 38도 넘어서 응급실로 왔는데 의사선생님이 38도인데 왜 왔냐고 하시더라구요. 원래 오는 게 맞죠?


"그 선생님이 잘 몰라서 그래요"


- 아스피린 먹을 때 이부프로텐 계열 해열제 먹으면 안되는 것도 맞죠?


"네, 맞아요."


그렇게 추석연휴를 좀 더 불안감 없이 보낼 수 있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나와 지은이는 집으로 향했다.


비가 내렸지만 괜찮았다.

지은이는 '뽀로로 까까'를 손에 들고 눈물 없이 귀가했고, 나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즐거운 저녁이었다.



이제 남은 건 연휴 후 금요일의 심장초음파검사.


장염 때문인지 어제는 구토도 두 번하긴 했지만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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