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0
나에게 공부는 척박한 10대 청소년기 시절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 생존을 위한 최선이자 유일한 수단이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다른 여러 가지 생존 방식을 찔러보고 붙잡아 보았지만, 언제나 실패했었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뭐든지 잘 해내는 아이가 되었지만, 토하도록 울어대며 다치고 말썽을 피우는 동생의 주의력 끌기를 이길 수 없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지만 애착 손상이 심하고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지지시켜주는 단단한 부모 같은 존재가 없어 학교에서는 언제나 불안했고, 그 불안함은 모든 인간관계를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몰아넣었다.
그런 내가 중학교 2학년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성적이 오를수록 엄마의 관심과 칭찬이 늘어가는 것을 보고 더더욱 공부를 잘 해내고 싶었다. 성적이 좋으니 또래에게는 인정받고 사이좋은 우정을 쌓을 수는 없어도 선생님의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친척들도 나를 보면 알아서 공부 잘한다고 칭찬했고, 스무 살이
되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좋은 대학에 붙고 나니 내가 굳이 내 대학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나를 보며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부를 잘하려면 고립되어야 했고 공부를 하기 위해 고립되면 친구들과 상호작용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이 나를 지켜주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상당기간을 공부를 잘하는 사람, 성적이 좋은 사람, 좋은 대학과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공부만을 바라보며 지냈었다.
그렇게 외롭고 황량하지만 이를 갈며 붙잡았던 목표를 이루고 평화롭고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내가 사용했던 생존전략은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나를 종종 괴롭힌다. 나보다 잘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적용하는 사람을 보며 질투가 나고 얼른 그 사람보다 우월함을 입증하려 든다. 이런 나의 질투과 조급함, 불안함이 과거, 내 삶의 역사에 각인된 지각임을 연결하는 작업을 이 날 상담을 통해서 진행했다.
질투와 조급함이 몰려올 때, 잠깐 멈춰 이 충동성이 과거의 역사의 지각과 관련된 스위치가 켜졌음을 인지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고 그동안 정서를 다스리며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다.
짤막하게 별개의 또 다른 주제도 다루었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게 있을까 궁금했는데
선생님께서 세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1. 나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2.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딱 정해놓을 수 없다. 사람의 상태는 시시각각 변하며 오늘과 내일이 다르기 때문에.
3. 하지만 정말정말 안맞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거절에 민감하고 과도하게 거절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릴 적부터 한계 설정을 해주는 부모가 없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거절을 당할 때면 나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날 따라다니곤 했는데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억울하고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고통의 얼굴을 볼 수 있어진 것 같아 속 시원한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이런 내가 거절을 당해도 아프지 않은, 내 마음속에 들어와 언제나 내 편인 선생님과 친구들이 생기고 나서 그들의 거절이 내 전체에 대한 거부가 아닌 내가 제안한 것에 대한 단순한 의사표현임을 점점 배워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일의 내가 더 나은 사람, 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