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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Feb 11. 2023

상담일지: 제목조차 쓸 수 없는 아픔

2023.01.20~

2023.01.20

2023.02.01

2023.02.04

2023.02.08

2023.02.10


대략 3주간의 기간 동안 무려 5회의 심리치료 회기를 가졌다. 큰 시험을 치르고 그동안 억눌렀던 외로움은 내 심리 에너지를 바닥까지 끌고 내려갔다. 인지조자 하지 못했던 외로움은 스스로 큰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은 뿌듯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무희망감에 가득 찬 채 뼈가 시린 외로움에 사무쳐 죽고 싶은 자살충동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험이 끝나 핫하디 핫한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고 나니, 15년간 잠자던, 아니 잠자는 척하며 가끔씩만 플래시백으로 나를 괴롭히던 학교폭력 트라우마가 기억의 수면 위로 용솟음질을 쳤다. 한번 솟구쳐 오른 기억은 나의 삶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며,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만들어낸다. 내 뇌는 보호받지 못한 채 물건이 훔쳐지고, 싫어하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고, 내 소중한 물건이 온 교실의 아이들의 공용품이 되어 나뒹굴어다니다 결국에 그 소중함을 포기하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 온몸이 굳고 눈앞이 하얘지던 그날의 13살로 돌아간다.

그날의 고통을 다시 겪느니 차라리 죽으리라.

옥상에 가서 떨어져 죽을까. 아무도 없는 산속 별장에 들어가 번개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먹어 의식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 볼까. 어떻게 하면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고,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고 확실하게 이 세상을 등질 수 있을까 상상을 한다. 상상은 가득하지만 실천할 용기는 여전히 없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 이내 부정적 생각을 하는 뇌의 부지런함 마저 부질없게 느껴져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시험끝난 후 매일을 보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자살충동은 처음이라, 내 자신이 흉기가 된 느낌이 무서웠다. 그래서 1년 넘도록 병원에 가지 않고 사설 상담센터에서 인지행동치료만 받다가 2023.02.03 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도 시작했다.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가 도와주니 숨통이 트이며 몸이 편안해진다. 진작에 다닐 걸 그랬다.


2023.02.10 회기의 상담을 하기 전, 깨어난 괴롭힘의 기억에서 비롯된 악에 받친 분노는 내 신체과 정신을 사로잡았다. 그 분노를 어떻게 표출할지도 모르고 공격성을 억누르며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더니 결국에 그 분노는 자연스레 내 자신을 향했다. 평생 이것만은 하지 않고 치료해내리라 다짐했던 자해의 유혹에 져버리고 커터칼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아주 짧게 손바닥 한귀퉁이에 곧고 선홍빛이 도는 줄을 그어보았다. 송글송글 맺히는 피를 보니 분노에 치중되어 있던 내 주의는 흩뜨러지고 불안정했던 정서는 몇시간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해진 척을 한다. 치가 떨리는 분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한시라도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미봉책이었다.


상담세션에서 다룬 내용들은 다시 복기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러워 상담일지를 쓰기를 포기한다. 10일 날의 회기는 20분이 넘도록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두들겨 패면서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화냈다.

화내는 20-30분 동안 목이 쉬어라 악을 쓰고 발을 구르고 주먹을 때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모든 순간에 선생님은 내가 안전한 상담 중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선생님, 혼내주세요. 저 괴롭힌 아이들 혼내주세요. 제발요. 제 편이 되어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저를 보호해 줄 부모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열 번, 수십 번 말했다.

“학교 가기 싫어요.”

“학교 가기 싫어요.”

“학교 가기 싫어요.”

“친구들이 저 괴롭혀요.”

“학교 가기 싫어요.”

...

돌이켜 그 당시로 돌아간 내 모습을 곱씹어보니 도대체 어떻게 그 6학년을 버텼는지 의아할 정도로 공포와 불안, 분노와 외로움, 슬픔과 고독감을 점철된 그 아이가 미치도록 불쌍하고 안쓰럽다.


드라마를 보며 동은이에게 깊이 공감한 치유받지 못한 13살의 내가 깨어나니 죽음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이 나를 덮친다.

역시나 오늘도 깨닫는 사실.

삶은 고통 그 자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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