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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Apr 23. 2022

흑백이던 나의 내면이 수채화로 물들기까지

심리상담이 만들어낸 소중한 균열과 변화

내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고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찾다


나에게 맞는 상담을 찾기 전,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기를 좋아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머릿속 바위를 조약돌 크기로 무게를 줄여주었고, 가슴속 이리저리 엉켜 끝을 모르겠는 어지러운 낙서를 곱게 풀어 한 줄로 만들어주었다. 대학교 글쓰기 교양 과목에서 두 페이지짜리 수필을 쓸 때의 몰입감과 해방감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글쓰기를 언제나 하고 싶었지만 선뜻 타자를 치고 펜을 들기에는 너무나 큰 장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장벽의 존재는 느끼고는 있지만 그게 왜 있는지,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하게 글쓰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으로 내 자신을 속인 채 수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던 중, 친구가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친구가 다이어리를 꾸미고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며 괜히 멋있어 보여 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다. 며칠 후 나도 시도해보고자 아이패드에 다이어리 템플릿을 내려받고 예쁜 글씨체와 스티커들을 모아 일기 쓰기를 준비하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하루 끝에 일기를 쓰려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펜을 들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는데 그 순간 나에게 불쾌감과 언짢음이 몰려들었다. 편안함보다 외로움이 더 긴 시간들과 자랑스러움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휩싸인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렇다. 이유를 모르겠던 장벽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사소한 것에도 자기 반향이 습관이며, 실수를 실패로 단정 짓고, 무겁고 거대한 트라우마 기억을 통합하지 못한 나에게 하루를 돌아보며 내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이 버거웠다. 내 기억과 경험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나에게 그저 스스로를 우울의 항아리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고 갇히기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라 일컬어지는 일기 쓰기마저 두려움의 대상이다 보니 자발적으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서 쓴 다는 것은 거의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상담은 무언가를 표현할 언어를 찾고 글을  내려갈 자유를 선사해주었다. 상담의 핵심은 '언어'이다.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입에서 터져 나온 언어, 말로 소통하며  시간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과정에서 온전한 나의 기억,  당시의 나의 생각과 감정을 보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보게 되었고, 기꺼이 나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담자에게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찾아야만 한다. 언어를 찾는 과정은 보기에 건실한 어른이 되어있는 나의 마음 , 자라지 못한 아이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내가 보아주지 않는 세월 동안  아이는 어둠 속에 웅크려 앉아 세상의 모진 말과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이 언제 다시 도래할까 경계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듬기보다는 나약한 아이가 너무나 싫어서 쏘아붙이고 매몰차게 내세우고 싶었다.  내면에 살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어 괴로워했다. 상담 장면에서  아이를 안개  눈이 아닌 또렷한 형상을 바라보고 감정을 느끼며 언어로 표현하고 안쓰러움을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과정의 부정, 괴로움, 안쓰러움, 분노, 냉소, 슬픔을 언어로 묘사와 비유로 풀어내면서 무던히도 애썼던  같다. 그렇게 사용했던 언어들은 어딘가 기록해두지는 않았지만  안에서 나온 것들이기에 다시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다채로운 표현들을 끌어내 , 세상에 나온 표현들을 정성스레 귀담아 , 내가  발을 내디딜 때의 두려움과 공포를 견디게 도와줄 지지자가 필요했던 듯하다. 그렇게 내디딘  발은 두발이 되고, 두발이 세발 되어,  감정을 어떻게 자유롭게 풀어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할  있게 되었다.


수많은 변화 속 여전히 긴 치료의 과정 속에 있지만, 이전 여정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긍정적 변화에 이 행복감을 오늘도 글 한 줄 표현하며 나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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