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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Jan 30. 2024

삶의 시작과 끝이라는 사필귀정의 오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죽고 싶다면

 나는 아기를 낳고 싶은 의지를 가진 여자를 만나면 죽고 싶어 진다. (남자가 아기를 낳고 싶은 의지는 관심 없다. 거의 99퍼센트의 확률이라 믿는 편이다.) 정확한 마음은 과거에 나를 낳고 싶었던 엄마를 말리고 싶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지금이라도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걸 막고 싶은 것 같다. 나는 본인의 의지가 아닌 채로 오롯이 부모의 의지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지구상에 태어나는 세상의 이치를 거부한다. 싫다. 그래서 죽고 싶다. 부모가 되지 않으면 좋을 성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조차도 아기를 낳고 싶은 욕구를 가지며 나 같은, 나 처럼 마음이 아픈, 더 아플지도 모르는 아이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싫다.

 그래서 친구들이 결혼적령기에 맞춰 아이를 갖고 싶은 욕구를 드러낼 때면 최선을 다해 반대의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그들이 아기를 안 낳고 싶어 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싶어 진다. 불쾌하다. 나를 낳은 엄마를 보는 것처럼. 그걸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느껴지는 해결책은 죽음이다. 이 잘못을 원점으로 돌리고 싶어 죽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살고 싶다.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온 게 아깝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잘 조절되는 기분이 좋다. 사랑하는 여자랑 행복하게 연애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싶고 같이 살고 싶고 좋아하는 직업으로 돈 많이 벌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다. 이사 가는 집을 예쁘게 꾸며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올해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일하려면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살고 싶다.

나는 죽고 싶으면서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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