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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Lucifer

본즈 2.0을 DC 코믹스에서 찾은 Fox

by 겨울달

트위터를 하면 이게 안 좋아... 어느 순간 영업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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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코믹스 산하 버티고 코믹스의 <루시퍼>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루시퍼>. 하지만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과 매 에피소드 후반 반짝이는 DC코믹스&워너브라더스 로고가 아니라면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비슷한 데가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실제 제작진들도 루시퍼의 캐릭터를 가져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이러면 굳이 코믹스를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가 뭐죠? 판권료 아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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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왕 루시퍼 모닝스타는 은퇴했다 (응?). 지옥의 억겁의 삶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지옥을 떠나 LA에 정착했다. 왜 하필 LA냐고? 거기가 촬영지니까요. LA에서 그는 유명 클럽을 운영하며 LA의 방탕한 삶과 젊음(과 때때로 쓰리썸)을 만끽하며 살아간다. 그녀, 클로이 데커가 나타나기 전까지.



LA 경찰 형사인 클로이가 살인사건 수사를 위해 루시퍼를 찾아왔을 때, 루시퍼는 그 얼굴이 너무 익숙해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라 물어본다.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한 클로이. (나중에서야 그녀가 어릴 적 배우 일을 잠깐 했고, 그때 비급 영화에서 토플리스로 열연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다.) 그저 매력적인 여성이 총을 들고 배지를 찼다는 사실 때문에 그녀에게 끌린 루시퍼. 하지만 곧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의 능력, 즉 사람이 저 마음속 깊이 숨겨둔 욕망을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의 매력에 혹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어막을 허물어뜨리게 만드는 능력이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LA 최고의 매력남의 작업이 씨도 안 먹히는 사람. 도전할 만한 상대다!

그래서 루시퍼는 어떻게든 그녀와 함께 있으려 한다. 그녀의 사건 현장에 먼저 나타나 형사 노릇을 하기도 하고, 귀찮아하는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건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 그녀의 (쪼그맣고 귀찮은) 어린 딸과, 클로이의 주위를 맴돌며 루시퍼를 경계하는 그녀의 전남편까지 참아낸다.

클로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루시퍼는 자신이 변해감을 느낀다. 악마의 본성인 사악함이 사라진다. 천사의 본성인 엄정함도 사라진다. 그가 사람에게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호감이든, 분노이든. 그리고 클로이와 함께 있을 때는 불로불사를 자신한 그의 몸뚱이가 쉽게 상처를 입는다. 결국 그에게 클로이는 가까이하고 싶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거참오리지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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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들어본 이야기. 너무 많이 본 것 같은 드라마. <블루문특급>부터 시작된 주인공이 연인이 "될까 말까(Will they, won't they?)"가 드디어 천사와 악마까지 만난 것인가. 천국과 지옥과 지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크리티컬한 변수가 얘네 둘이 자냐 안 자냐라니 이건 너무 웃긴 거지... "침대 앞으로 돌진!"을 막으려고 만들어놓은 갖가지 설정을 다 봤지만, "권능과불로불사vs평생의사랑"을 붙이다니... 코믹스 덕후들은 '내 루시퍼가 망했다'며 드러누울 것 같지만 드라마 팬들, 커플 쉬퍼들은 가슴 설레서 잠도 못 이룰 것 같다.


대신 이런 설정은 굉장히 오래갈 수 있다. 선배 시리즈인 <본즈>만 봐도 그렇다. 내가 부스와 브레넌이 서로 친구가 되고, 커플이 되고, 아기를 낳고, 결혼하고, 또 아기를 낳는 스토리까지 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12년 동안 로맨스 드라마가 가족드라마가 되어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싶다. 흥미로운 살인사건, 각자 개성이 잡혀가는 조연 캐릭터, 그리고 주연 캐릭터 둘의 생사가 달린 밀당쩌는 로맨스까지. Fox는 내년에 마지막 시즌을 방영할 <본즈>의 대체재를 드디어 찾아냈구나 싶다.


수사물의 탈을 쓴 로맨틱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해서 이런 드라마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장르(...)의 약점들이 벌써부터 보일까 봐 걱정이긴 하다. 반복과 점진적인 전개가 병행되는 드라마에서는 전개의 완급이 중요한데, 이걸 조절 못하면 드라마와 팬덤이 함께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커플 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커플이 되고 나서 풀어낼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에 드라마의 흥망이 달렸다. 아직 2시즌 방영 중이고, 난 이제 겨우 1시즌을 다 봤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둘의 러브라인을 잘 풀어가느냐가 이 드라마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앞으로 궁금해서 생각날 때 한 번씩 몰아서 볼 것 같다. 다만 같은 포맷이 자꾸 반복되는 게 벌써부터 지루해진다. 그래서 1시즌 볼 때도 9편에서 쉬고, 11편에서 쉬고, 12편에서 쉬고... 그러면서 겨우겨우 다 달렸다. 그렇게 쭈욱 달리지 못한 건 <루시퍼>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몇 년간 이런 내용들을 꾸준히 보면서 이런 이야기에 익숙해진 내 탓이다. 일단 2시즌에 트리시아 헬퍼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헬퍼느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2시즌을 곧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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