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아웃랜더>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든,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와 미래를 제한 없이 점프하든,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든 그 자체로 재미있는 소재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세 편이나 제작, 방영될 예정이다. 그중 가을 시즌부터 제작되어 나름 쏠쏠한 반응을 얻고 있는 <타임리스>는 시간여행과 추격전, 그리고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과정 속에서 과거의 작은 변화가 미래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모습을 그린다. 이 선택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캐릭터들이 있는 세상을 거칠게 흔든다.
사립 연구소에서 만든 타임머신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탈취된다. 가르시아 플린이라는 전직 정보부 요원은 총을 앞세우고 연구소에 잠입했고, 타임머신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가르시아 플린을 제거하기 위해서 내기 전에 제거하기 위해 팀이 꾸려진다.
루시. 역사학자이며 대학교수이지만 정년 보장 임용을 받지 못했다. 역사학자인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렸고 여동생과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만 몰두한다.
와이엇. 델타 포스 출신의 군인. 아내 제시카가 살해당했지만, 그녀를 죽인 범인을 잡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당시 임무 완수에 실패한 작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루퍼스. 타임머신을 만든 메이슨 인더스트리의 프로그래머이자 타임머신 파일럿 훈련을 받은 두 사람 중 한 명. 가정 형편은 좋지 않지만 머리가 좋았고, 코너 메이슨의 후원으로 MIT를 졸업할 수 있었다.
급조된 팀은 테러리스트 가르시아 플린과 그 일당을 찾기 위해 시간 여행을 벌인다. 가르시아 플린이 역사적 사건을 바꾸려고 하면 이를 막아 역사가 그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지금까지 역사가 제대로 보존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역사가 지금과 비슷하게 유지되도록 하도 있다.
처음에는 방송사에서 많이 밀어주는 신작인가 보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임리스>가 편성된 월요일 밤 10시는 그 채널 1위 시청률을 기록하는 <더 보이스> 다음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있던 드라마들은 다들 시청률과 팬 베이스를 탄탄하게 다진 후 다른 시간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주로 액션 스릴러 드라마를 편성했었다. 제임스 스페이더의 <블랙리스트>가 그렇고, 제이미 프레슬리가 주연을 맡은 <블라인드스팟>도 그렇다.
<타임리스>는 이 드라마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 현상에 대한 음모가 있고, 이를 탐색해가는 과정은 맞지만 스릴러처럼 긴장감 있진 않고, 두 작품에서처럼 총소리가 끊임없거나 자동차가 쾅쾅 부딪히는 소리 큰 액션도 없다. 대신 루시, 와이엇, 루퍼스 세 사람이 그 시대에 스며들어가기 위해 옷을 입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느낌은 아기자기한 코스프레를 보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허투루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시기의 사건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역사를 최소한으로 흔들기 위한 장치를 쓴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도 결국 드라마는, 특히 오랜 시간 동안 가야 하는 미드의 경우 캐릭터 구축이 가장 큰 숙제다. 그 점에서 <타임리스>는 내가 보는 다른 드라마들보다 캐릭터 구축의 속도가 늦은 편이다. 그렇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던 루시, 와이엇, 루퍼스가 팀으로서 결속력을 갖춰가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에 관여된 모두가 서로를 속인다. 직접 시간여행을 하는 세 사람, 이들을 조종하는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단체 "리튼하우스", 리튼하우스를 없애고 역사를 다시 쓰려는 가르시아 플린, 그리고 뒤늦게 이 모든 일의 원인을 파헤치려는 정부 측 요원까지. 누가 진짜 적인지 알아내는 과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본격적으로 서로를 물고 무는 게임에 돌입하기에는 다소 늦은 게 아닌가 싶지만, 장기전으로 가는 걸 계산하고 만들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사실 6화에서 포기할까 생각했었는데, 아까워서 보기 시작한 7화에서 이 드라마에 후킹 됐고, 8편부터는 다시 각잡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혹시나 이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포기한 분들께, 2배속으로라도 좋으니 6편까지 보고 7편부터 정속 주행하길 추천한다.
p.s. 다른 드라마를 보면서 눈여겨봤던 두 배우, 애비게일 스펜서와 맷 랜터가 이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만났다. 재야의 연기 고수들은 다 모인 <렉티파이>에서 애비게일 스펜서는 그중 가장 빛났다. 맷 랜터는 <커맨더 인 치프>에서 고등학생으로 출연했었는데, 10여 년 후에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되어서 나타났다. 이 두 사람이 한 드라마에서 만난 것도 좋은데! 두 사람의 캐릭터인 루시와 와이엇 사이의 러브라인이... 냄새가 나네...
